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11

등록 2003.12.04 10:59수정 2003.12.0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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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원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산동성 황하 유역에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열두살 때 신조 鳳을 보았고 오늘은 또 神龍(신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1


오늘도 청년은 강가에 앉아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출과 더불어 시작될 어떤 조화를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벌써 열흘째였으나 청년은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딱 한번 변화가 시도되긴 했다. 해가 연무에 걸려 연분홍으로 바뀌었는데도 무슨 까닭인지 다시 제 얼굴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청년은 지금 신용(神龍)을 기다리고 있었다. 옛 선조 태호 복희도 이른 아침 소머리 강에서 그 신용을 보았다고 했다. 신용이 해를 쫓자 해는 붉은 색에서 주황색 노란색 푸른 색 등 열두 번 그 색깔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신용의 긴 몸이 세 번씩 끊어지고 또 세 번씩 이어지면서 자리 괘도를 보였다고 했다.

'그것은 환위추리 되면서 묘하게도 삼극을 품고 있어 변화가 무궁하였다'
청년은 괘도역법에 대한 강론을 들은 이후부터 이렇듯 신용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그는 삼신일체, 상존의 유법이라거나, 전체의 변화가 그 근본이라는 교화스승의 해법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청년은 강론 화된 해법보다는 그 변화의 과
정과 경이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움직이면서 조화를 부리는그 신비가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불쑥 태양이 떠올랐다. 청년은 해를 주시했다. 조금도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기만 했다. 마침내 해가 바닥을 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하늘 호수로 헤어가기 시작하는데도 주위에서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기색도 없었다.

청년은 눈길을 내려 강을 바라보았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무 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오직 엷은 물안개만이 정지된 듯 덮여있을 뿐 작은 물이랑도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다시 해를 쳐다보았다. 태무심하게 홀로 떠 있을 뿐이었다. 하긴 신용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해가 저 혼자 변하거나 조화를 부려줄 리도 없었다. 청년은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 공손히 아뢰었다.
'신용님, 내일 다시 오겠으니 그땐 꼭 소인에게도 현신해주십시오.'

청년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막 몸을 돌릴 때였다. 저만치 위쪽에서 어떤 물체가 보였다. 괴상하게 생긴 큰 짐승이었다. 그 우람한 짐승이 풀숲을 헤치고 나오더니 곧장 물가로 걸어갔다. 짐승은 아무 것도 안중에 없는 듯했고 그저 긴 목을 늘어뜨려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등이 두 개로 솟아 있고 목이 긴데다 몸집에 비해 그 머리는 터무니없이 작은, 청년으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해괴한 짐승이었다.


'이 신성한 곳에 웬 망측한 짐승인가?'
모습도 이상한데다 털마저 거무칙칙해 몹시 흉물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저 불길한 짐승 때문에 여태 신용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청년의 뇌리로 퍼뜩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래, 저놈부터 멀리 쫓아버려야 한다!'

그러나 맨손이었다. 활도 단도도 집에 두고 왔다. 신성한 시간이라 무기를 지니지 않았던 것인데 뜻밖에도 괴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맨손으로라도 쫓아야 한다! 청년은 벽력같이 소리를 치며 짐승을 향해 달려갔다.
"저리 가지 못해!"
그때 수풀을 헤치고 웬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 짐승을 방해하지 마시오!"

심한 방언이었음에도 목소리에 위엄이 있었다. 청년은 우뚝 멈춰 서서 사나이를 살펴보았다. 허리띠도 없는 긴 옷에다 목에 무명을 두른 것이 이 지방사람 같지 않았다. 청년이 물어보았다.
"이 짐승은 손님 것입니까?"
"그렇소. 그 녀석은 며칠째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오."
"미안합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지옥에서 온 놈인가 했습니다."

"지옥? 하긴 그만큼이나 까마득한 곳에서 왔으니까…."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짐승은 오래오래 물을 마셨다.
'지옥만큼 까마득한 곳이라구? 그런 곳에 사는 짐승들은 다 저렇게 이상하게 생겼나?'
청년이 짐승의 뒤태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할 때 그 짐승은 물을 다 마셨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태연하게 걸어 다시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사나이도 급히 짐승의 뒤를 따랐다. 청년도 등을 돌리다가 다시 멈추어 섰다. 사나이가 '이만 가겠다'거나 '가보라'는 등의 인사말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싶어졌다.

청년도 그들의 뒤를 따라 수풀로 들어갔다. 수풀 안에는 몇 개의 자루와 막대기에 꿴 함이 놓여 있었다. 짐승이 그 옆에서 다리를 접고 앉자 사나이가 짐승의 등에 짐을 올리기 시작했다.
"짐을 싣는 짐승이로군요."
청년이 자기 기척도 알릴 겸해서 그렇게 입을 열었다. 사나이는 들은 척도 않고 짐만 실었다.

짐을 다 싣고 나자 짐승이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생긴 것에 비해 성미는 온순한 모양이었다. 사나이가 엉덩이를 툭툭 쳐주자 짐승이 걸음을 떼놓기 시작했다.
"난 지금 도성 안으로 가야하는데 길을 좀 일러줄 수 있소?"
사나이가 불쑥 길 안내를 요청했다.
"예, 저도 거기에 삽니다."

청년이 앞서서 수풀을 빠져나왔다. 강변은 수풀과 자갈밭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자갈밭을 벗어나면 곧 한길이었다. 그들은 한길로 들어섰다. 짐승도 자갈밭보다는 걷기가 편했던지 소리 없이 걸었다. 그때 사나이가 은근한 목소리로 청년에게 물어왔다.

"아까 강가에서 무얼 하고 있었소? 아직 이른 시간인데."
"예, 신용을 만날까 해서 매일 아침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질문이라 청년은 그만 솔직히 대답하고 말았다.
"신용이라면 해와 더불어 괘를 보였다는?"
"옳습니다."
"그건 까마득한 옛날 어떤 선조께 보았다는 것 아니오?"
"예, 성스러운 소머리(송화강) 강에서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긴 황하 강이잖소?"
"우리 환족이 영토를 넓혀서 여기까지 내려왔으니 황하라고 해서 아주 다른 강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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