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가 3일 밤낮을 춤추던 곳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32)-대둔산 태고사

등록 2003.12.26 08:11수정 2003.12.2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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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겨울산사를 찾아가는 길엔 남다른 준비와 조심성이 요구된다.

겨울산사를 찾아가는 길엔 남다른 준비와 조심성이 요구된다. ⓒ 임윤수

겨울 산사를 찾아가는 길은 별다른 마음과 준비를 요구한다. 찾아가는 산사가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동토(凍土)의 계절이니 만큼 조심스런 발걸음에 북풍설한(北風雪寒)쯤 막아 줄 따뜻한 복장 그리고 짧은 햇살을 극복할 여유 있는 마음은 공양물 만큼이나 필수적이다.

다른 계절에도 신중해야하지만 음기가 강한 겨울엔 행동도 음적으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낙상(落傷)을 당해 성치 않은 몸으로 산사를 찾게 되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


언제 내린 눈인지 응달엔 허연 눈들이 그대로 있다. 그냥 감상만 하는 풍경이라면 갈색 낙엽만 수북하게 있는 것보다 덜 단조롭고 색채의 대비가 뚜렷해 '보기 좋다' 할 수 있으나 걸어서 지나야 할 때는 그렇지 않다.

가파른 비탈길에 차곡차곡 다져진 눈길은 평지의 얼음길 못지않게 미끄럽다. 게으름을 피느라 그랬는지 아니면 소유의 자동차가 4륜 구동인 것을 과신하고 싶었는지 맨질맨질한 산길을 윙윙거리며 올라온 차들이 내려갈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끙끙거린다.

a 일주문을 대신 할 듯 한 석문을 지나야만 태고사엘 갈수 있다. 바위에 써진 <石門>이란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한다.

일주문을 대신 할 듯 한 석문을 지나야만 태고사엘 갈수 있다. 바위에 써진 <石門>이란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한다. ⓒ 임윤수

한 번 미끄러지기라도 시작하면 까마득한 저 아래서 처참한 꼬락서니로 발견될 테니 그 끔찍함을 연상하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듯 했다. 순간 교만함과 게으름을 책망하며 다음부터는 걷는 수고쯤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탈 게으름과 과신하지 않겠다는 겸손함을 깨우침으로 얻었다.

태고사를 찾아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었으나 절에서 200m여 정도 아래까지는 차 한 대쯤 다닐 넓이에 시멘트로 포장까지 되어 있으니 꽤나 좋은 편이다. 그러나 겨울엔 포장도 소용없고 넓이도 필요 없다. 그냥 반들반들한 빙판이 전부기 때문이다.

다져진 눈들이 꽁꽁 얼어붙은, 얼었다 녹다를 반복하며 두툼한 얼음이 되어버린 산비탈 겨울 길을 걷거나 운전해 본 사람은 그 아슬아슬함이 어떤 것인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방향이 틀어지고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몸도 차도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멈추어야 하는데 대책 없이 그냥 "어~ 어~" 하다 쿵하고 넘어지거나 나뒹구는 게 보통이다. 하물며 차를 운전하다 내리막길에서 그런 미끄럼을 타게되면 온몸이 젖도록 땀이 나는 것은 물론 아찔하기까지 하다. 그냥 관세음보살을 찾거나 운 좋게 커다란 피해 없이 멈추어 서기만을 바랄 뿐이다.

a 석문을 들어서면 그때서야 태고사 전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석문을 들어서면 그때서야 태고사 전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 임윤수

태고사를 찾아가는 길이 그랬다. 가파른 비탈길에 쌓인 눈이 다져지고, 얼었다 녹다를 반복하여 빙판을 이루어 조금이라도 방심하였다가는 나뒹굴기 십상인 그런 길, 4륜구동형 지프차라 해도 미끄럼을 타면 속수무책인 그런 길이였다.


'큰 두메의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대둔산은 전북과 충남 두 도에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시에 두 도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한 절경의 산이다. 맥을 따진다면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이 호남의 만경평야에 이르기 직전에 불끈 솟은 암산(巖山)이다.

대둔산 낙조대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전국을 순례하며 불교를 전파하고 고행의 구도를 하던 원효대사는 이곳 태고사 절터를 발견하고는 너무도 기뻐 3일 밤낮에 걸쳐 춤을 추었다는 설화가 있을 만큼 절경이다.

"첩첩 쌓인 푸른 산은 부처님의 도량이며 맑은 하늘 흰 구름은 부처님의 발자취고 대자연의 고요함은 부처님의 마음"이라 하더니 태고사 자리가 딱 그렇다. 주변의 기암과 산세가 도량의 신장들처럼 우뚝하고 발아래 펼쳐지는 구릉들이 사시사철 흰 구름을 대신한 부처님 흔적 같다. 적막하리 만큼 고요한 주변은 마음에 일고 있던 모든 번뇌를 잠재울듯하다.

a 석문을 지났어도 침목 계단을 올라야 경내로 들어설 수 있다.

석문을 지났어도 침목 계단을 올라야 경내로 들어설 수 있다. ⓒ 임윤수

만해 한용운이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명승지를 말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니 한국 12승지의 하나이며 호남 제1의 성지란 말이 조금도 손색없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고사를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나야 하는 석문(石門)이 있다. 대개의 절들이 갖추고 있는 일주문과 사천왕문 그리고 불이문의 역할을 한꺼번에 다 할 듯 웅장한 바위틈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이 문은 한 사람이 드나들기엔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적당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며 시작되는 진입로는 50cm 정도로 길이를 맞춘 폐침목을 가지런하게 엮어놓아 깔끔한 계단으로 되어있다.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침목(枕木)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절벽처럼 코앞을 가로막는 암벽을 만나게 된다. 그 암벽 사이로 문처럼 생긴 틈이 있으니 그게 바로 석문이다. 암벽에는 음각(陰刻)되어 붉은 색이 칠해진 '石門'이란 글씨가 있는데 우암 송시열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그때서야 태고사 전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태고사를 정점으로 병풍처럼 빙 둘러진 산세와 기암들은 태고사를 외호하기 위해 도열한 신장인 듯하다. 이쯤 되면 산세의 기이함과 오묘함에 불자가 아니더라도 저절로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게 된다.

a 기암들이 대웅전을 외호하듯 산을 두르고 있다. 이 자리쯤에서 원효대사가 춤을 추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기암들이 대웅전을 외호하듯 산을 두르고 있다. 이 자리쯤에서 원효대사가 춤을 추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 임윤수

가파른 경사지라 협소하기만 한 경내를 넓히느라 높게 쌓은 대리석 축대는 단순한 축대가 아니라 기도하며 수행할 수 있는 생활 공간이다. 축대 곳곳에 문이 달려있고 그 문으로 출입하는 스님들이 있는 것으로 봐 그곳은 방으로, 자투리 공간조차도 수행공간으로 활용한 알뜰함이 엿보인다.

계단을 올라서면 법당의 정갈함에 감탄이 절로 난다. <太古寺>란 편액을 달고 있는 대웅전 우측엔 극락전과 관음전이 있다. 좌측으론 지장전과 산신각이 있지만 산신각은 공양간 내부에 있는 작은 문을 들어서야 볼 수 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관음전 우측, 암릉에는 범종각이 불사중이다. 암릉을 기반으로 웅장하게 들어서고 있는 범종각이 완공되면 울려 퍼질 종소리가 대둔산의 또 다른 명물이 될게 분명하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낙조대에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듣게되는 범종소리는 귓전에 머물지 않고 가슴부터 영혼까지 울려댈 게 틀림없으니 그 황홀감을 빨리 맛보고 싶었다.

a 굽어보는 산하가 평온해 보인다.

굽어보는 산하가 평온해 보인다. ⓒ 임윤수

법당에 들려 참배하고 경내 전각을 둘러보다 보면 올라왔던 쪽으로 눈길이 간다. 대개의 산들이 그렇지만 태고사에서 바라보는 산하는 유달리 깨끗하고 아름답다. 탁 트인 전망이 가슴을 후련하게 하고 고물고물 한 산세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눈길을 조금씩 당기다 보면 다시금 눈길이 멈추는 곳이 있으니 바로 촛대바위다.

석문 위쪽으로 우뚝 솟은 바위가 있으니 바로 그 바위가 촛대바위다. 법당자리가 부처님 모셔진 단상이라면 이 바위는 분명 그 앞에 밝혀진 촛대형상이다. 하늘대는 촛불처럼 바위 꼭대기엔 세월의 풍상을 느끼게 하는 발가벗은 고목이 하나 있다.

산세의 기이함과 오묘함에 취해 두 눈 지그시 감으니 태고사에 전해지고 있는 원효대사의 기행적 전설이 현몽처럼 떠오른다. 태고사에서 수행했던 원효대사는 불심도 깊고 교리도 밝았지만 역술 또한 조예가 깊었다.

a 석문 위에 우뚝 솟은 촛대바위엔 풍상의 세월을 느끼게 하는 발가벗은 고목이 있다.

석문 위에 우뚝 솟은 촛대바위엔 풍상의 세월을 느끼게 하는 발가벗은 고목이 있다. ⓒ 임윤수

그런 원효대사가 어느 날 밤 별자리를 보니 중국의 한 절에 불상사가 날 것이라는 괘가 나왔다. 무엇보다도 중생구제를 제일로 생각하던 대사는 깊은 생각 끝에 불상사에 대한 방술(防術)로 널판지에 '척판구중(擲板救衆)' 즉, '널판을 던져 사람들을 구한다'고 적어 중국 쪽으로 날렸다고 한다.

이때 중국에 있는 한 절에서는 나이 어린 동승이 해우소에 앉아 변을 보며 우연히 하늘을 보다 커다란 황금덩어리가 절 쪽을 향해서 날아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른다. 갑작스런 동승의 괴성에 놀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모두 밖으로 뛰어나오니 그 순간에 절 뒤에 있는 산이 무너지며 절을 덮쳐버렸다.

결국 동승의 괴성이 모든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이다. 때아닌 날벼락에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이 안정을 찾고 그 동승에게 괴성을 지른 연유를 묻자 날아온 황금덩어리 이야기를 하였다.

사람들이 동승이 말하는 대로 황금이 떨어진 곳으로 가보니 황금은 없고 널빤지에 '동방의 원효가 널을 던져서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한다.

a 왠지 따스함이 녹아있을 것 같은 공간이다. 숙박을 하며 기도를 하면 이곳에서 머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왠지 따스함이 녹아있을 것 같은 공간이다. 숙박을 하며 기도를 하면 이곳에서 머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임윤수

태고사를 찾으면 절경의 산세와 기암 그리고 절의 단아함에 감탄하게 되지만 이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고승 도천스님이 주석 해 있다는 사실이다. 세수 백수를 바라보는 도천스님은 삶 자체가 설법이며 또 설법 자체가 실천이다.

귓전을 맴돌다 허허하게 사라지는 백 마디 법문보다 더 가슴에 남는 그런 법문을 몸으로 실천하며 수십 년 동안 구도의 길을 걷고 계시는 큰스님이다.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낫고 한번 실천하는 것이 백 번 보는 것 보다 낫다(百聞不如一見 百見不如一行)'는 진리를 실천으로 법문 하듯 보여주고 있다.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도천 스님은 당신 스스로가 "나는 도인이 아니라 머슴이요"라고 말할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고 실천으로 법문을 대신하신 분이다.

도천스님은 1962년부터 6·25때 불에 타 폐허가 된 태고사 터에 움막을 짓고 나물죽을 끓여먹으며 40여 년 간 머슴처럼 일하여 오늘의 태고사를 손수 일궈낸 장본인이다. 그러니 태고사 석축에 들어간 돌 하나 기와 한 장이 스님의 땀이며 법문이다.

a 전각들이 정갈하다. 처마의 고드름과 연기 솟는 굴뚝에서 산사의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전각들이 정갈하다. 처마의 고드름과 연기 솟는 굴뚝에서 산사의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 임윤수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백장청규(百丈淸規)의 성성한 삶은 할아버지 은사인 수월 스님으로부터 시작되어 도천스님이 그 맥을 계승, 실천하면서 수도의 한 방법으로 굳건히 자리잡은 듯 싶다.

도인이지만 머슴처럼 일하며 살아온 스님에게 있어 나이란 숫자에 불과할 뿐 별다른 의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인격 최고의 결정체인 정신이 몸뚱이의 노예가 돼 온갖 헛된 짓 다하다 패가망신하는 반면 도천스님은 법력을 높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데 몸뚱이의 주인답게 잘 부린 듯하다.

범인(凡人)들처럼 몸뚱이에 얽매이지 않고, 그 몸뚱이를 법력을 높이고 수행하는 데 백분 활용하였으니, 도천 스님의 법력이 높아지고 도인의 경지에 이른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당연한 일이리라.

쉬운 듯 하지만 쉽지 않은 것, 고귀한 정신이 몸뚱이의 노예가 되지 않는 그런 삶을 수십 년 동안 실천하고 보여주셨으니 그 자체가 도인의 삶이며 실천적 법문이다. 원효대사가 그 터를 발견하고 3일 밤낮을 춤출 정도로 뛰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머슴인 듯 하지만 여느 스님보다 큰스님인 도천 스님이 계시기에 태고사는 꼭 한 번 찾아 볼 호남 제1의 성지다.

a 올 봄 봉암사에서 있었던 서암스님의 영결식에 참석한 도천 큰스님이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계신다.

올 봄 봉암사에서 있었던 서암스님의 영결식에 참석한 도천 큰스님이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계신다. ⓒ 임윤수

수백 년 전 진묵대사가 태고사를 보고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하여 산을 베개삼고 누어 있으니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강물은 술동이로다"라고 했다는 말이 실감나도록, 이 곳의 절경은 더 없이 아름답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원효대사의 덩실춤이 보이는 듯 하니 환희심이 절로난다. 한기에 웅크린 내 어깨조차 절로 들썩거리니 산사 찾은 기쁨이 온몸을 감고 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추위에 덜덜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승속의 냉정함으로 일갈하던 묘법스님이 점심공양도 챙겨주고 목장갑도 한 켤레 건네주신다. 물 닿으면 물에 젖고 바람도 술술 들어올 장갑이지만 심장을 감싸주듯 따뜻하기만 하다. 많은 신도들의 보시물로 허한 속 채워 속 든든하니 하산길이 여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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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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