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출연한 사위, 장모님 가슴 무너지다

"장모님 걱정 마세요"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등록 2004.01.05 08:46수정 2004.01.1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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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처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 처형이세요? 별일 없으시죠?"
"예, 동생 있나요?"

처형 목소리에 맥이 쏙 빠져 있었습니다. 평소 환하게 웃던 그런 처형이 아니었습니다. 처형과 통화를 마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처갓집에 무슨 일 있어?"
"텔레비전 보고 다들 기분이 좀 그런가 봐."
"왜?"
"우리가 그렇게까지 어렵게 살고 있는 줄 몰랐다네…."

우리 식구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처갓집 식구들이 그걸 보았던 것입니다. 적게 벌어먹고 살아가는 얘기였는데 처갓집 식구들은 아주 고통스럽게 시청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처갓집에서도 우리 부부가 적게 벌어먹고 살면서도 별탈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돈벌이가 괜찮았던 아파트 시절보다 더 편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겼습니다. 헌데 텔레비전에 공개한 통장이 문제였습니다.

화면에 전재산인 백육십 몇 만원이 찍혀 나갔고 거기에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이 돈이면 3개월 정도를 먹고 사느니, 생활비 천 원이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다느니, 푼수처럼 주절댔으니 처갓집 식구들이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아무리 적게 벌어먹고 산다 해도 그 정도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마음이 여린 처형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눈물을 글썽였고 장모님과 처남은 그날 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처갓집 식구들에게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깜박했다. 처갓집 식구들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당신에게도 좀 미안하고."
"에이그, 별 게 다 미안하네. 나는 괜찮은데 다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동안 없이 살아도 고통스럽게 살았다고 느끼지 않았고 그렇다고 남한테 손 내밀어 본적도 없잖아. 단 한푼도 빚지지 않고 그냥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처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던 날, 나는 모가지가 비틀어진 풍뎅이 마냥 마당을 빙빙 돌고 있다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거참, 앞으로 처갓집 식구들 어떻게 보지?"
"어떻게 보긴 뭘 어떻게 봐, 알아서들 판단해야지 뭐. 다들 우리 보다 돈 많은 부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보다 괴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잖아…."
"그래두 그게 아니잖어…."
"걱정하지 마, 시간이 다 해결해 주니까.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데 누가 뭘 어떻게 하겠어."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걱정이 태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속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머뭇거리며 내게 물어 왔던 질문에 대해 이제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적게 벌어먹고 사는 것에 대해 송형은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과연 송형의 아내 또한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물으면 "그럴 것이다" 혹은 "그렇다"라고 대답해 놓고도 내심 불안했습니다. 아내 역시 "그렇다"라고 대답하곤 했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내 또한 나름대로 적게 벌어 행복한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장모님 걱정 마세요"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됩니다. 많이 벌어 힘들게 사는 것보다 적게 벌어 사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뱃속 편한 일인지를 좀 더 시간을 두고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내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의 생활 방식을 다들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베이비> 2004년 신년호에 송고한 것을 다시 손 본 원고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베이비> 2004년 신년호에 송고한 것을 다시 손 본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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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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