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아픈 사연을 담고 있는 '며느리밑씻개'

내게로 다가온 꽃들(14)

등록 2004.01.09 05:35수정 2004.01.0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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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은 좀 짓궂은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산야 여기저기서 흔히 자라는 가시 돋친 한해살이풀, 작고 발그레한 상기된 처녀의 볼처럼 예쁘고 작은 꽃을 간직하고 있는 풀입니다. 그런데 이름이 '며느리밑씻개'라니요?

꽃의 이름마다 사연이 있지만 특별히 '며느리'라는 이름이 들어간 꽃은 고부간의 갈등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며느리들의 아픔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궁핍했던 시절 모진 시집살이를 견뎌내야 했던 며느리들의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꽃을 보면서 왜곡된 고부간의 갈등관계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꽃은 일설에 의하면 며느리를 벌주기 위해 화장지 대신 이 풀을 쓰도록 하고 시아버지가 이 풀을 화장실 옆에 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니 시아버지나 시어머니 모두 며느리에게 압제자였던 셈이지요.

서로 사랑하며 돌보아주며 살아야할 관계들임에도 이렇게 왜곡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시대, 어쩌면 지금도 그런 삶이 강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에 대한 반발로 반대의 경우도 있는지 모르겠구요.

김민수
황대권님의 <야생초편지>에 '며느리밑씻개'에 관한 이야기가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시어미가 밭을 매다가 갑자기 뒤가 마려워 밭두렁 근처에 주저앉아 일을 보았것다. 일을 마치고 뒷마무리를 하려고 옆에 뻗어 나 있는 애호박잎을 덥석 잡아 뜯었는데, 아얏! 하고 따가워서 손을 펴 보니 이와 같이 생긴 놈이 호박잎과 함께 잡힌 게야. 뒤처리를 다 끝낸 시어머니가 속으로 끙얼거리며 하는 말이 "저놈의 풀이 꼴보기 싫은 며느리년 똥 눌 때에나 걸려들지 하필이면…."해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읍 상리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네그려.'<야생초편지>(pp.33-34)

김민수
며느리에 관련된 속담들을 찾아보니 참으로 많은데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들보다는 고부간의 갈등을 선동하는 듯한 부정적인 내용들이 많습니다.

'며느리라는 이름이 붙으면 내 자식도 밉다.'
'가을볕에는 딸을 쪼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쪼인다.'
'배 썩은 것은 딸을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
'죽 먹은 설거지는 딸 시키고, 비빔 그릇 설거지는 며느리 시킨다.'
'딸의 시앗(첩)은 바늘방석에 앉히고, 며느리 시앗(첩)은 꽃방석에 앉힌다.'
'며느리 시앗은 열도 귀엽고, 자기 시앗은 하나도 밉다.'
'흉이 없으면 며느리 다리가 희단다.'
'굿하고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다.'


가을볕보다 봄볕에 살이 많이 타고 거칠어지니 며느리를 쪼인다거나, 며느리의 첩은 열이라도 귀여워 꽃방석에 앉힌다는 속담까지 읽다보면 며느리는 단지 손을 잇는 씨받이 내지는 말하는 동물 정도밖에 취급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김민수
작은 가시들을 잔뜩 품고 있는 저 작은 줄기가 살갗에 닿으면 다 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 빼낸 줄 알고 며칠 있다가 따끔하거나 간지러워서 보면 살에 박힌 작은 가시 때문에 여린 피부가 덧나있는 것을 볼 때도 있으니 어쩌면 그리 반가운 꽃이 아닐 수도 있고, 잡초로 취급을 당할 수도 있는 꽃입니다.


그런데 사실 잡초라든지, 쓸모가 없다든지 하는 모든 구분들은 인간중심 분류법에 불과한 것이죠. 산야에 피어있는 이름 없는 들풀조차 그들 처지에서는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인 것이죠.

김민수
지난 여름 새벽 산책길을 가장 재미있고 신나게 해 준 꽃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작은 며느리밑씻개였습니다. 흔한 꽃이었지만 작아서 그냥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쳤던 꽃, 그런데 작기 때문에 이제는 더욱 더 아름답게 다가오고, 천대받는 꽃이요, 며느리의 아픈 사연을 담고 있는 꽃이니 더욱 더 사랑해 주고, 보듬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막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햇살에 비친 발그레한 모습은 참으로 예쁘고 싱싱했습니다.

'야, 이런 며느리 얻었으면 딱 좋겠다.'

아주 작은 꽃이지만 볼수록 예쁘고, 자기를 지키기 위한 가시도 가지고 있어 조금은 콧대가 높고 도도한 것 같으면서도 그저 그렇게 수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꽃으로 나에게는 다가왔습니다.

김민수
작은 꽃들이 언제 필까, 언제나 앙다문 입술 같은 작은 꽃망울에 환한 웃음이 필까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쉽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끔씩, 그것도 한두 개씩 잠시 피었다가 지었습니다.

어쩌면 궁핍했던 시절, 아무리 고된 시집살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가뭄에 콩 나듯 웃을 수 있는 기쁜 일이야 없었겠는가 생각도 들고, 그렇게 기쁜 일이 있어도 소리내어 활짝 웃지 못하는 수줍은 듯한 모습에서 아련한 아픔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김민수
이름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이름을 알지 못할 때는 보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이름일까 수많은 상상을 하는데 이름을 알고, 그 꽃의 이름이 붙은 내력을 알고 나면 그만 상상력이 막혀버리는 것 같습니다.

꼬마들이 글자를 익히기 전 동화책을 보면 그림을 보면서 온갖 상상을 다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림을 보면서 나름대로 동화를 구성하는 것이죠. 그런데 글자를 익히면서부터는 상상력보다는 글자라는 틀에 갇히게 된다고 합니다. 글자를 너무 빨리 깨우치는 것이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기에 조금 글자를 늦게 깨우친다고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김민수
잘 몰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대다수 꽃을 시인들이 아름다운 시로, 애절한 시로 표현했는데 이 꽃을 소재로 한 시를 읽어본 기억도 없고, 딱히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핑계 삼아 시를 한 편 지어 봅니다.

상기된 꽃몽우리 그 작은 마음들마다
애절한 어릴 적 추억 가득히 담았는가
따스한 햇살 같은 그리운 나의 어머니

재 넘어 연지곤지 꽃마차 타고 온 날
어머닌 삼 년 삼 년 참아야 할 것들을
자그만 처녀가슴에 그리 깊이 새겼소

고향생각 눈물 질 때 돋아나던 작은 아픔
나조차 놀랄 만큼 총총히도 맺었구나
날 스쳐 지날 때에 나도 같이 데려가소

<김민수 詩 / 며느리밑씻개>

덧붙이는 글 | 이선희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주중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주말은 돋보기 들고 들에 나아가 꽃 관찰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화폭에 담아 응접실에 걸어놓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색연필로 들꽃을 그린 지 4년째입니다. 예쁜 카드(현재 3집까지 나왔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꽃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카드를 팔아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은 총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으며, 이 기사를 통해 나오는 원고료와 관련 수익금은 전액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기사까지의 기금] 260,000원

덧붙이는 글 이선희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주중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주말은 돋보기 들고 들에 나아가 꽃 관찰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화폭에 담아 응접실에 걸어놓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색연필로 들꽃을 그린 지 4년째입니다. 예쁜 카드(현재 3집까지 나왔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꽃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카드를 팔아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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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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