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40

등록 2004.02.03 15:15수정 2004.02.0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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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앞 건물을 지나쳐 뒤쪽 건물로 향했다. 그곳은 횃불이 세 개, 그러니까 양 끝과 가운데에 걸려 있어서 건물 안의 물품들이 아주 잘 보였다. 벽은 낮은 목책이 가로질러 있고 그 안엔 토기와 요즘 유행하는 도기가 쌓여 있는가 하면 둥근 토기 솥, 고리가 달린 쇠솥, 각종농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기도 했다.

그 세 채의 긴 건물 중에서 앞과 뒤쪽에는 소호 국에서 생산되는 물품이 진열되었고(주-사마르칸트: 유적지에서 대만 학자 서량지와 Robert J.B,Raid Wood의 발굴에 의해 신농시-'소호'-년대 3219-2765 BC의 교역품이 수없이 많이 출토되었다.) 가운데 건물에는 다른 나라에서 사들인 수입품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 수입품들은 주로 청동제품으로, 본국으로 보내지거나 혹은 금을 사들일 때, 그 대상국이 원하는 선호에 따라 이용할 수 있었다.


재상이 야장 방에서 칼을 만들 때에도 거기 보관되어 있던 청동을 이용했으며 그것으로도 부족해 다른 나라 가게까지 도리를 하다시피 했다.
노인이 그 건물에서 다시 뒤쪽으로 돌아가더니 어느 목책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도 그런 건물에서 잠을 자는가, 에인이 막 그런 생각을 할 때 노인이 문을 열었고 먼저 보인 것은 사람이 아닌 말이었다. 뜻밖이었다. 또 거기엔 사람은 없고 오직 말 한 마리만 서 있을 뿐이었다.

"자, 이놈이 장군님의 말이오."
별읍 장이 말했다. 말이 먼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큰 눈으로 에인을 바라보았다. 다시 별읍장이 재촉했다.
"어서 인사를 하십시오."
"인사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합니까?"
에인이 물어보았다.
"만져 주시면 되지요."

에인이 살펴보니 그 말은 다른 말과 생김새가 달랐다. 여태 자기가 봐온 말들은 긴 꼬리에 탐스러운 갈기까지 있었으나 이 말은 갈기는커녕 아예 꼬리조차 없었다. 머리도 이상했고 귀도 터무니없이 작았다.

"왜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에인이 선뜻 다가가지 않자 노인이 물었다.
"어째 말이 좀 이상하게 생겼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껄껄거리고 웃었다. 아버지도 따라 웃었다. 노인이 슬며시 웃음을 거두고 물었다.
"왜요? 이 말이 별종이라 싶으십니까?"
"예, 죄송스럽습니다만 제 눈엔 그렇게 보입니다."

"장군께서 그렇게 보신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이 놈은 정말로 별종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별종이라면 왜 저에게…."
"하다면 장군께서는 혈한마에 대해서는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오."
"그럼 천리마는 어떻습니까?"
에인은 그제서야 귀가 번쩍 뜨였다.


"아, 그럼 이 녀석이 천리마로군요!"
"옳습니다." 승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맨 먼저 들어온 것이 천리마에 대한 전설이었다. 한데 전설에서만 듣던 그 천리마가 자기 앞에 있는 것이었다. 에인의 가슴이 감격으로 둥둥 뛰었다. '그래서 이놈은 처음부터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영리함이나 용기가 사람 못잖다더니 이놈은 벌써….'

그때 별읍장이 말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 녀석은 올해 다섯 살이오. 보통 말들은 일곱 살이 되어야 꾀도가 트이지만 이 종자는 이때 벌써 지혜가 무르익지요. 게다가 이놈은 그 모든 말 중에서도 상체가 가장 두껍고 실했습니다."
"상체가 무거우면 달리기가 둔하지 않을까요?"
"아니오, 상체가 두꺼울수록 오래 달릴 수 있는 것이 이 말의 특징입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또 무슨 특징이 있는지요?"


"이제 진짜 이 말의 특징인데, 장군께서 만약 위급한 일이 생긴다면 두 팔과 다리로 이 녀석의 등을 감고 그 배에 거꾸로 매달리십시오. 그러면 이놈은 활과 창의 속도보다 더 빨리 달려 주인을 보호합니다."

마침내 에인이 다가가 목을 안아보았다. 말은 순하게 안겨왔고 그는 앞다리와 등, 배를 쓰다듬어 나갔다. 기분이 특이했다. 다른 말들은 만져주면 너볏이 긴장을 푸는데 이놈은 자기 살갗을 함께 움직이는 것이었다. 게다가 에인이 그렇게 살을 만지는 동안 녀석은 머리까지 가까이 대고 계속해서 코를 벌름거렸다. 그것은 녀석도 자기 나름으로 주인 될 사람의 동작과 냄새를 익히는 것이었다.

"천리마는 자기 주인이 될 사람을 쉽게 알아차리고 그 즉시 동작과 냄새부터 익힌다더니…."
아버지가 감탄을 했다. 그 말은 대원국 전체에서도 가장 명마였다. 다른 말은 금 반 되면 넉넉히 살 수 있었으나 그 말만은 금을 한 되 반이나 요구했고 그나마 당장 팔고 싶은 마음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별읍장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사흘간이나 머물며 다른 말들을 살펴보았으나 그 녀석만큼 튼튼하고 또 지혜로운 눈을 가진 놈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아, 꼬리 쪽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에인이 말의 꼬리를 만지려고 하자 노인이 화들짝 놀라며 만류했다. 에인은 얼른 손을 뗐다. 그 꼬리는 엄지손가락만큼의 길이에서 뭉툭 잘린 듯했고, 에인은 그것이 태생인지 아니면 잘린 것인지 꼭 확인해봐야 할 것 같은데 노인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찌하여 꼬리는 만지지 못하는지요?"
"그 말은 거기가 가장 예민해요. 처음부터 거길 건드리면 아마 발길질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 익숙해지면 어느 손가락으로 건드리느냐에 따라 그 지시의 뜻을 다 알아차린다고 했습니다."
"아, 그럼 잘라버린 게 아니로군요."
"자르다니요. 그 말은 그것이 특징입니다."

"그럼 제가 먼저 건드리는 법부터 배워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아마 그 부위만은 시간이 좀 필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리마들 역시 자기 주인 될 사람을 시험해보는 기간을 가진답니다. 때문에 자기 주인이 정말로 자기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꼬리뼈 교감을 허락한다니 인내심을 가지고 친숙해지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자, 그럼 상견례도 끝났으니 이제 우리는 그만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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