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범 교수의 빗나간 ‘마르크스 복제’

[주장] 중앙시평 '진보와 개혁을 혼동 말라'를 읽고

등록 2004.02.09 15:22수정 2004.02.09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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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 한국정보통신대 교수가 '현대판 마르크스'라며 엉터리 복제를 해놓았다. 중앙일보 2월 9일자 시평 ‘진보와 개혁을 혼동 말라’에서였다.

나는 오늘(9일) 저녁 방콕을 거쳐 네팔로 간다. 방송학회 세미나 참석을 위해서다. 그래서 1주일에 글 하나를 올려야 하는 의무를 어제(8일) 마치고 홀가분하게 다녀올 참이었다. 곁들여 조선일보가 왜곡하고 있는 네팔의 민주화운동 현장을 파악하기 위한 취재도 할 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각범 교수가 비행기 시간에 쫓기면서 이 글을 쓰게 만든 것이다.

이 교수는 “만약 19세기의 대표적 진보사상가 칼 마르크스가 오늘 이 시점에 살고 있다면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상상력을 풀어놓았다. 그 결과 마르크스는 신물질을 개발하는 노벨상 수상 과학자, 지식정보사회와 세계화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 벤처사업가, 시민운동가(경제정의운동, 식의약품 안전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장애인 보호운동 등 시장경제가 미처 고려할 수 없는 부문의 운동)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19세기와 확연히 다른 물적 기반을 가진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그는 19세기의 진보인 계급론적 저항운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주장한다. 또 계급론적 저항운동을 ‘수구적 진보’로 규정한다.

그가 이렇게 마르크스를 엉터리로 복제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다. 그의 표현대로 마르크스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각범의 마르크스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다.

“그는 물적 기반을 사상의 기반으로 생각하는 학자였다. 19세기 산업사회에서 가치 생산의 기본은 단순 육체노동이었다. 그러므로 상품 가치를 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사회적으로 필수적이며, 평균적인 노동시간이었다.

21세기의 오늘에는 지구적으로 특출나며, 창조적인 지식력이 사회의 중심적 가치를 생산한다. 가치 측정의 기본은 시간으로 잴 수 없는 지식생산물인 아이디어나 특허, 디자인 브랜드 비즈니스 모델 등이다.”



지식정보사회를 강조하는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산업사회와 질적인 구분을 하려든다. 산업사회는 물러갔는가? 정확하게 물어보자. 지식정보사회는 자본주의 경제가 아닌가? 당연히 자본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자본주의다. 그렇다면 19세기건, 21세기건 마르크스의 기본 이론은 유효하다.

사실은 이렇다. 가치는 인간의 노동에 의해 생산되며, 특히 새로운 가치는 잉여노동의 산물이다. 이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전유물이 된다. 그리고 생산물의 가치는 노동력 가치와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 여기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이는 없다. 질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지식생산물도 노동의 산물인 이상 노동시간에 의해 잴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각범은 가치 생산의 기본이 ‘육체노동’에서 ‘지식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이디어나 특허 등 시간으로 잴 수 없는 지식생산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그럴까? 과거에는 없던 지식력과 지식생산물이 육체노동과 그 생산물을 대체하였을까?

내재적 접근을 내세운 이각범 교수는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의 다음 구절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상품이란, 우선 그 속성에 의하여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물체, 즉 우리들 외부의 대상이다. 그러한 욕구의 성질은, 예컨대 위장으로부터 생긴 것이냐 정신적 작용에 의한 것이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우리는 여기서 그 대상이 인간의 욕구를 어떻게 만족시키는가, 직접적으로 생활필수품으로서인가 혹은 간접적으로 생산수단으로인가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육체적 욕구와 더불어 정신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상품이란 그것을 만족시켜주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산물이다. 지식생산물이란 정신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생활필수품일 수도 있고, 생산수단일 수도 있다. 마르크스가 이미 간파한 것을 마치 질적으로 다른 사회의 새로운 현상이나 이론을 발견한 것처럼 하니 우습다.

마르크스에 대한 내재적 접근이 우선적으로 정확해야 진보와 개혁을 혼동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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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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