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그곳은 배신의 땅이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 참가기

등록 2004.02.10 04:32수정 2004.02.1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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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자정이 훌쩍 넘었다. 자정을 넘겨 여의도 차가운 밤바람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은 원통하다 못해 서글펐다. 마음이 너무도 처연하여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안의 국회비준이 무산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으나 별다른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여의도에 취재하러 가지 않았다. 싸우러 갔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며 책장에 놓인 디지털 카메라를 챙길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그냥 두고 갔다. 취재를 포기하겠다는 내 나름의 결연함이었다.

나는 농민회원들과 전세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가는 동안 오늘 하루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 할지 어떨지, 내게 무슨 변고가 생기지는 않을지, 오늘 돌아오기나 할지 정말 아무 것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농민들의 삶 자체가 그렇다고 난 단언한다.

국회의사당 빛바랜 연두색 돔 식 지붕을 눈앞에 두고 경찰과 대치 할 때 나는 보았다. 나는 치를 떨었다.

'저럴 수가 있을까…. 도대체 정부가 국민에게 저럴 수가 있을까. 뭐 이런 놈의 나라가 다 있나'


경찰 폭력은 너무 잔인했다. 쫒기는 시위농민 하나가 경찰이 던진 어른 주먹 두 개 만한 보도블록을 뒷머리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바로 눈 앞에서 날아오는 돌을 보았고 돌에 맞을 때 나던 '퍽!' 하는 둔탁한 소리에 한 사람 죽는구나 싶어 소름이 쫙 끼쳤다.

경찰들은 방패로 사정없이 시위군중의 얼굴과 머리를 내리찍었고, 시위대와 대치할 때도 욕을 하며 손짓으로 한번 붙자는 식으로 시위대를 계속 놀렸다. 한나라당사 맞은편 대열 맨 앞에서는 닭장차 위에 있던 경찰이 바로 밑에 와 있는 시위대를 향해 가래침을 뱉는 걸 봤다. 시위대가 던진 돌과 술병을 닭장차 뒤에 배치된 경찰들이 아주 조직적으로 되집어 던져댔다.


아무런 보호구도 착용 하지 않은 농민들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주로 날아 온 돌에 머리가 푹푹 찍혀 유혈이 낭자했다. TV 화면으로 보던 것과 실제상황은 너무도 달랐다.

아이가 하는 짓을 보면 그 부모의 얼굴과 생활이 엿보이는 법이다. 최말단 공권력의 행패를 보면서 노무현 정권의 실상을 보는 듯했다. 닭장차에 가려 지붕만 겨우 보이는 ‘민의의 전당’ 국회의사당 속에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들이 위엄스레 앉아 있을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치가 떨렸다.

2002년 11월의 기억

 FTA 비준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9일 오후 국회 앞에서 이라크파병안 통과 저지대와 합류해 국회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FTA 비준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9일 오후 국회 앞에서 이라크파병안 통과 저지대와 합류해 국회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처음 우리가 여의도에 도착했을 때 농민집회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이었다. 다른 회원 몇 명과 나는 의사당 앞쪽 소리 나는 곳으로 가 봤다.

농민연대 주최의 집회가 두세 시간이나 진행되는 동안 나는 연단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연사들 중에 단 한 명의 정치인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 만 명의 농민들이 모였는데 민주노동당 외에 다른 정당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곳 여의도 이 자리.

1년 반쯤 전인 2002년 11월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때는 정몽준 후보까지 수행원을 이끌고 왔다. 노무현 후보는 물론이고 권영길 후보도 왔다. 대선을 앞두고 이들은 수 만 명의 농민들 앞에서 기염을 토했다. 나는 기억한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특유의 솔직하고 믿음직한 직설화법으로 농업공약을 내걸었다. 가장 솔깃했던 것이 농업문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이었다.

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을 뿐 아니라 2004년 쌀 재협상 때 관세화 유예를 기필코 관철시키겠다고 하면서 '비교우위론'에 의해 농업이 희생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여 '역시 노무현'이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 것이다.

어떤 보좌관이 귀띔했을까 싶었던 훌륭한(?) 공약 하나가 있었다. 농업통상 협상 때는 농민단체에서 추천하는 전문가를 꼭 포함시키겠다는 약속이었다. 지금은 모두 다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한 순간 우리 귀만 즐겁게 해 준 헛약속들이었다.

농가 소득의 5% 수준인 직불소득을 20%까지 올려 주겠다길래 일본이나 미국은 50%가 넘는데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오늘 노무현 후보가 약속했던 그 수준의 요구를 하는 농민들에게 돌멩이와 방패로 피를 흘리게 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농민의 현안 문제인 한·칠레 협상에 대해 소신을 밝히지도 않았다. 기가 막힌 1년 3개월. 이 세월에 철저히 농락당했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여의도를 배신의 땅이라 이름 짓는다.

땅바닥에 나뒹구는 유인물을 보이는 대로 종류별로 수집을 했다. 나중에 시위가 거칠게 진행될 때도 열심히 주워 모은 유인물을 집에 와서 하나씩 보면서 국민들이 이런 유인물만이라도 제대로 읽어 준다면 지레 국가간 자유무역협정이 불가피하다느니 무역을 해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WTO를 거스를 수 없다느니 하는 소릴 안할 텐데 싶었다.

알만한 사람들마저 농민의 집단이기주의로 보는가 하면 지원금을 대폭 늘이면 농민에 대한 심정적 죄스러움을 덜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생명산업인 농업이 망하면 거래되는 값으로는 도저히 따질 수 없는 가치들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글자나 귀 동냥으로는 실감이 안 날 수도 있겠다 싶어 더 안타깝고 서글펐다.

내가 여전히 서글퍼 하는 것은 사람들이 폭력과 피 흘림에 무감각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언론도 시위대도 정치인도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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