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85

화벽의 주인 (3)

등록 2004.02.11 13:33수정 2004.02.1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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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타인에게 말을 걸지 않던 그가 입을 열었으며, 기원과 도박장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늘 정갈하던 그의 서탁엔 먼지만 수북하게 쌓여만 갔다.

대취할 때까지 술도 마셨고, 기원을 전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보고 받은 구부시는 언짢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의 기분을 이해한다면서 당분간은 무슨 짓을 하든 내버려두라는 명을 내린 바 있었다. 이런 조치가 내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제일호법인 조경지였다.


그는 누구를 차기 성주에 임명할 것인가를 결정하려 할 때 유일하게 무언공자 편을 들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무언공자가 방황하는 이유가 바라던 것이 물거품이 되면서 생긴 상실감 때문이며 그러다 말 테니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조언을 하였던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무언공자가 말이 없던 이유가 음성이 아주 이상해서인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의 음성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지막한 저음인 그의 음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할 만큼 부드러웠고, 타인의 마음을 끄는 힘이 느껴지는 그런 음성이었다.

“핫핫! 여긴가? 호오! 이놈인 모양이군. 좋아, 아주 좋아! 한눈에 봐도 정말 괜찮은 놈이군. 이놈의 이름은 무엇인가?”
“아직 이름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소생은 이놈을 화벽(和璧)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화벽…? 화벽이 무슨 뜻인가? 온화할 화(和)와 둥근 구슬 벽(璧)? 흠 서로 연관이 없는데… 그리고 말 이름으로도 적합하지 않은데 대체 어떤 연유로 이런 이름을 붙였는가?”

“한비자(韓非子)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지요. 전국 시대, 초(楚)나라 사람 변화씨(卞和氏)가 산에 올라…”


이회옥은 전국(戰國)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공자(公子)로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주창한 한비(韓非)와 그 일파의 논저(論著)인 한비자 변화(卞和)편을 인용하고 있었다.


< 전국시대 때, 초나라 사람 변화씨가 산 속에서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고는 이를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왕이 이것을 세공인(細工人)에게 감정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고 하였다. 이에 화가 치솟은 왕은 변화씨를 월형(刖刑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하도록 하였다. 하여 그의 오른쪽 발뒤꿈치가 잘려지고 말았다.

왕이 죽은 뒤 변화씨는 옥돌을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를 잘린 것이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그러안고 궁궐 문 앞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울었다.

이에 문왕이 그 까닭을 묻고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아 본 결과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곧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 명명했다. >


“호오! 그래서 화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그러하옵니다.”

“핫핫! 화벽이라 하지말고 완벽(完璧) 함은 어떤가?”
“완벽 역시 화씨지벽에서 연유된 말이지요. 사기(史記) 인상여열전(傳藺相如列傳)과 십팔사략(十八史略) 조편(趙篇)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조나라 혜문왕이…”

이회옥의 말은 또 다시 이어졌다.

<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화씨지벽이라는 천하명옥(天下名玉)을 가지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어떻게든 그것을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 조나라에 사신을 보내 성(城) 열다섯 개와 맞바꾸자고 제의했다. 이는 혜문왕으로서는 실로 난감한 문제였다.

제의를 거절하면 당장 쳐들어 올 것이고, 화씨지벽을 넘겨주면 그냥 빼앗아버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혜문왕은 중신들을 소집하여 의논했다.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결국 강자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다 하여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혜문왕은 중신들에게 물었다.

“사신으로는 누가 적임자일 것 같은가?”

그러자 대부인 목현(繆賢)이 말했다.

“신의 식객(食客) 중에 지모(智謀)와 담력이 뛰어난 인상여(藺相如)라는 자가 있사온데 그라면 차질 없이 중임을 완수할 것으로 사려(思慮)되옵니다.”

이리하여 사신으로 발탁된 인상여는 소양왕을 알현하고 화씨지벽을 바쳤다. 그것을 손에 들고 살펴보던 소양왕은 거듭 감탄하여 희색이 만면했으나 약속한 열다섯 개 성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인상여는 조용히 말했다.

“전하, 그 화씨지벽에는 흠집이 있사온데 그것을 외신(外臣)에게 주시면 가르쳐 드리겠나이다.”

소양왕이 화씨지벽을 건네주자 인상여는 그것을 손에 든 채 궁궐 기둥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소양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약속하신 열다섯 개 성을 넘겨주실 때까지 이 화씨지벽은 외신이 갖고 있겠나이다. 만약 안 된다고 하시면 화씨지벽은 외신의 머리와 함께 이 기둥에 부딪쳐 깨지고 말 것이옵니다."

화씨지벽이 깨질까 겁이 난 소양왕을 인상여를 일단 숙소로 돌려보냈다. 인상여는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화씨지벽을 부하에게 넘겨주고 서둘러 귀국시켰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소양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당장 인상여를 잡아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를 죽였다가는 신의 없는 편협한 군왕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아 그대로 곱게 돌려보냈다.

이리하여 화씨지벽은 '온전한 구슬[完璧]'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인상여는 그 공으로 상대부(上大夫)에 임명되었다.

이렇듯 화씨지벽으로 인하여 양국 간에 긴장이 조성되었기에 그것을 연성지벽(連城之璧)이라고도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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