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얼음 뗏목 타고 한번 놀아볼까

동네 앞 개울에서 늦겨울을 보내는 아이들의 소란

등록 2004.02.21 11:29수정 2004.02.2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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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나무하러 다니고, 썰매 타고, 비료 부대자루 타고 놀고, 참새 잡던 우린 우수(雨水)가 다가오기 전에 꼭 빠트리지 않았던 재미난 놀이가 있었다. 지나가는 겨울 끝자락을 즐기기 위한 아이들의 마음은 새봄을 맞는 마음 못지 않다.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雨水) 무렵 아이들은 장화를 신고 마을 앞 냇가로 썰매는 집에 두고 창만 들고나선다. 그 땐 마을 위에 저수지도 없고 오염이 덜 된 까닭에 웬만한 추위면 얼음이 얼어 우수 지나 경칩 때나 녹았다.

얼음이 그 만큼 얼고 또 얼어 자꾸 밑으로 파고들어 어떤 곳은 또랑(도랑) 바닥까지 닿을 정도로 두껍게 얼어 있었다.

병용이와 병문이는 대문이 삼각 형태로 우리 집과 마주 하고 있다.

"병문아!"
"병용아!"

부르면 의례 놀러 나가자는 이야기로 알고 아무 때고 튀어나온다.

"야, 병용아. 집에 못쓴 도끼 있지?"
"하믄."
"글면 집에 다시 가서 갖고 와라. 나는 톱 하나 챙겨 올텡께."
"그려."


하얗던 얼음 위는 처음에는 얼음만 얼었다가 자꾸 눈이 내려 다시 쌓여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다. 윗 부분은 얼었다가 녹고 다시 엉겨 오돌토돌 썰매타기엔 썩 좋지 않은 상태로 늦겨울을 보낸다.

그날은 마침 얼음이 풀려 서서히 녹고 있었다. 마침 물이 흐르는 한쪽은 녹아 있다. 발이 움직임에 따라 눈 반 물 반 저벅거리며 신발을 적신다. 급한 마음에 고무신을 신고 나왔지만 장화를 신어야 한다. 먼저 얼음 위에 도끼 날로 한번 세게 내리치니 얼음이 얼굴에 "팍팍" 튀어 오른다.


"야 거시가 안 되겠다. 얼굴에 튀어도 상관없지만 곧 양말이 젖을 것 같애."
"장화 신고 와라."
"금세 댕겨 올텡께 뚫고 있어라잉…."
"이왕 간 김에 성냥도 갖과."

쏜살같이 한 걸음에 달려 장화를 찾는다.

"엄마…."
"응?"
"장화 못 봤는가?"
"말래(마루) 밑에 봐봐라."

평소 있던 자리에 없는 건 필시 백구(白駒)가 안쪽으로 물어간 때문이다. 뒤 안으로 돌아 뒷마루 바닥을 보니 먼지 틈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장화가 들어온다. 닦을 필요도 없이 대충 끼어 신고 집을 나섰다.

"야, 아직도 이것밖에 못 뚫었냐?"
"얼음이 엄청 두껍게 얼어 불었어야."
"요리 줘봐봐."

한 번 두 번 세 번 장작 패듯 도끼질을 해대매 부서진 얼음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린다. 한 번 치고 얼굴을 한번 훔쳐 쓸어 내리고 수 차례 반복한다. 몇 번을 내리쳤는지 모른다. 10여 분 후 움푹 팬 얼음 사이로 물기가 뻐끔뻐끔 올라오는가 싶더니 발바닥 만한 넓이에 얼음 조각이 "퐁" 뜨고 물이 올라왔다.

"야! 뚫렸다."

성호와 병용이, 해섭이, 병문이, 병주, 형근이도 옆에 구멍을 뚫고 있었다. 우리가 그 맑던 시냇가에서 얼음을 뚫었던 이유는 빙어(氷魚) 낚시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다음 작업 과정을 지켜보자.

언제 들고 왔는지 친구들은 톱이 손에 들려 있었다.

"자자. 지금부터 톱질을 하자."
"형근이는 저 쪽을 썰어라."

"쓱쓱"

한 자(尺) 30cm 가웃 두껍게 언 얼음 덩어리는 연신 당기기만 할 뿐 밀어서는 톱이 부러질 염려가 많다. "쓱싹 쓱싹" 소리가 나지 않은 건 어린아이들에게도 얼마간의 이력이 붙어 있었던 때문이다.

한 평(坪 1.8m×1.8m) 쯤 되게 얼음을 나누기 위해 톱질을 해대고 멀찌감치 떨어져 도끼질을 하는 아이들은 얼마 못 가서 배가 고프게 마련이지만 별 방해가 되지 못한다.

"야, 다 됐다. 내가 먼저 탈께."
"야 이 씨벌놈아 글도 내가 먼저 타야제."
"야 색끼들아! 다투지 말고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

"장깸 장깸 포쇼~"
"장깸 장깸 포쇼~"

제일 먼저 타게된 성호는 의기양양하다. 창으로 얼음 덩어리를 살짝 밀치고 후딱 조심히 올라탄다.

"기우뚱 뒤뚱뒤뚱"

"어…어어…."
"얌마 균형을 잘 잡아야지."
"야, 근디 창이 너무 짧아야."
"긍께 뭐 할라고 먼처(먼저) 탄다 그래?"
"안 되겄어야."
"글면 빨랑 내롸."
"야, 한 삐짝(쪽, 방향)으로 밀쳐줘야지."
"시벌놈이 여기서 되냐?"

"어어…."
"퐁당!"
"아악~!"

머리만 빼고 모두 젖고 말았다. 한두 번 빠진 것도 아니었으니 빠져서 허우적거릴 필요도 없다. 그래도 별 소릴 안 한다. 그렇다고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흐레(늪이나 냇가에 이끼와 흙이 뒤섞여 가라앉은 부유물의 사투리) 범벅이 된 성호는 서서히 물 밖으로 걸어 나온다.

"야, 불 좀 피워봐라."

냇가 둑에 말라비틀어진 풀과 키 작은 나무에 불을 붙였다. 일시에 불길이 1m 이상 올라 활활 잘도 탄다.

"야 각자 집으로 가서 작대기나 대 막가지(막대기) 하나씩 들고 와. 해섭아 내꺼도 하나 더 챙겨와라."

잠시 뒤 아이들이 긴 막대기를 두 개 씩 들고 나왔다.

얼음 뗏목 위로 사뿐히 올라탄다. 긴 작대기로 물 속 땅을 짚으니 처음처럼 요동치지 않는다. 위에서 아래나 옆으로 바닥을 힘차게 밀어주자 "슈웅" 배가 대지를 박차듯 미끄러져 나간다.

"야홋~"

마을 앞 담벼락 쪽으로 급하게 밀려간 얼음 뗏목이 부딪히려하면 다시 개울 건너 쪽으로 밀고 서서히 더 넓은 자리로 이동을 한다. 방향을 바꿔가며 긴 막대를 요리조리 움직여 주며 노는 이 즐거움.

"야, 나도 그리 올라갈게."
"안돼 임마! 글다 까파지면(뒤집히면) 어쩔라고 그래…."
"괜찮아야 한 삐짝으로 붙여봐."
"안된당께 그래싼네."
"자 간다."

모래무지가 있는 쪽으로 붙여 정박했다. 병주가 풀쩍 뛰어 오르자 한 번 출렁할 뿐 이내 잠잠해졌다.

"밀어!"
"어어, 병주야 니가 더 무거운께 안쪽으로 들어와야제."
"알았어."

"우리 위쪽으로 올라가서 애들이랑 한판 붙자."
"조용히 가자. 가서 사정없이 부딪혀 불게."

아이들이 몰려 있는 쪽으로 뗏목을 몰아갔다. 우리 움직임을 파악하지 않고 있던 아이들은 일순간 벌어지는 급습에 어쩔 줄 몰라한다.

"야~"
"우우우. 야 색끼들아 덤볏!"
"쾅!"

무지막지한 힘으로 밀려간 얼음 덩어리 위에 탄 병문이와 형근이는 균형을 잃고 벽에 부딪힌다.

"어~"

한 놈은 벽을 간신히 잡고 한 아이는 그만 장화를 신은 채 물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앗따! 개새끼들 온다고 말이나 하고 오지."
"야 새꺄 언넝 나와서 말리기나 해."

그렇게 두 시간 정도 놀고 보니 점심때가 훨씬 지나 있었다. 물에 빠진 아이들은 겉옷을 벗어 둘이서 잡고 물을 짜낸다. 직접 물 속에 빠지지 않았어도 아랫도리가 젖지 않은 아이도 드물었다.

우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 평이 넘게 얼음을 조각 내서 뗏목을 얼마나 탔는지 모른다. 이제 집에 들어가면 어른들에게 꾸중듣는 일만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오늘 봄비마저 내립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절대 따라서 하지 못하게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 때 얼음 탔다가는 큰일 납니다.

덧붙이는 글 오늘 봄비마저 내립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절대 따라서 하지 못하게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 때 얼음 탔다가는 큰일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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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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