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깊이를 간직한 '꽃기린'

내게로 다가온 꽃들(24)

등록 2004.02.27 16:38수정 2004.02.2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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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기린
꽃기린김민수
가시를 품고 있는 꽃은 대체로 예쁩니다. 이런 가시들은 남을 찌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여쁜 자신을 지켜가기 위한 수단입니다. 꽃기린은 쌍떡잎식물로서 다육식물입니다.

다육식물은 사막이나 높은 산 같이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아서 물이 늘 부족합니다. 그러니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지 않는 곳에서 자라면서 줄기나 잎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양의 물을 저장해두며 생존을 하는 식물입니다.


꽃기린의 고향은 마다가스카르(Madagascar)라는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라고 합니다. 그리운 고향을 등지고 먼 나라에 와서 살아가다 보니 원래는 높이 2m 정도까지자라는데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는 화분에서 많이 자라다보니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것도 모자라 고향을 등지고 먼 이국 땅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꽃기린을 보면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이 땅에 온 외국인노동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겹게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의 무게를 더하는 것은 죄입니다. 희망의 빛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삶은 진지합니다. 그 진지한 삶을 가로막는다면 그것이 어찌 사람의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이선희

예쁜 꽃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추운 겨울 날 남산 식물원을 찾았던 이선희 선생님은 오랜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 이 그림을 그리며 이런 생각을 하셨답니다.

'가시가 날카로워 조심조심 바라본다.
꼭 내 마음 한 구석을 바라본 듯 가슴 한 켠이 뜨끔거린다.
이 가시로 타인을 찌른 적이 수도 없이 많을 텐데….
새로 난 가시일수록 더 크고 더 날카로움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입으로 눈으로 흘려낸 가시는 어느 길이만 할까 생각하며
슬며시 이름만큼 앙증맞게 예쁜 꽃을 바라본다.
그리고 지난 과오를 씻으며
미소를 지어 보낸다.'
-2004. 1. 12. 남산 식물원에서 눈 오는 날 이선희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는 꽃들,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내면을 발견하게 합니다. 마음이 아플 때에는 위로해 주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지 못해 흔들릴 때에는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라고 풋풋한 향기로 다가옵니다.

김민수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꽃기린입니다. 5∼6월경에 꺾꽂이를 해서 개체수를 늘려 가는데 다육질의 식물들은 꺾꽂이로도 잘 번식을 합니다. 그만큼 척박한 환경에 적응이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니 고난을 몸소 겪고, 이기는 식물이 바로 다육질의 식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꽃기린은 고난의 깊이를 아는 꽃처럼 보였습니다. 그 고난의 삶을 살아가다 보니 때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시 정도는 품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꽃기린은 가시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내에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을 담고 있습니다.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흰 즙입니다. 눈이나 상처에 닿으면 독성이 있어서 좋지 않다고 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가시가 많은 다육질의 식물 중에서 선인장을 뺄 수가 없죠. 선인장은 이파리 대신에 가시를 두어 증산 작용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증산 작용을 제한해야 조금이라도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양의 물을 지니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자연 조건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신이 배려를 해준 것일까요?

김민수

꽃기린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시 하나쯤은 있어야지요 자신을 지킬 가시는 있어야지요.'

지난 수요일부터 기독교절기로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데 마침 이 꽃의 별명이 '예수님 꽃'이랍니다. 가시면류관과 보혈을 동시에 상징하는 꽃이라는 것이죠.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계절입니다. 그러니 꽃기린의 삶과 예수님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순절은 돌아가는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성서에 의하면 죄는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가야할 길에서 벗어난 삶에서 돌이키는 것, 원래의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 삶의 원형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꽃기린.

고난의 깊이를 간직한 꽃입니다.

고난의 깊이만큼 절망하지 않으면 삶도 그만큼 깊어집니다.

예수가 부활했듯이 고난의 깊이를 알고, 의미를 아는 이들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죽이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선희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주중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주말은 돋보기 들고 들에 나아가 꽃 관찰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화폭에 담아 응접실에 걸어놓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색연필로 들꽃을 그린 지 4년째입니다. 예쁜 카드(현재 3집까지 나왔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꽃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카드를 팔아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은 총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으며, 이 기사를 통해 나오는 원고료와 관련 수익금은 전액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기사까지의 기금] 460,000원

덧붙이는 글 이선희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주중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주말은 돋보기 들고 들에 나아가 꽃 관찰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화폭에 담아 응접실에 걸어놓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색연필로 들꽃을 그린 지 4년째입니다. 예쁜 카드(현재 3집까지 나왔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꽃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카드를 팔아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은 총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으며, 이 기사를 통해 나오는 원고료와 관련 수익금은 전액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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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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