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56

등록 2004.03.15 17:02수정 2004.03.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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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돌아온 사람은 안내선인이었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마을에선 무슨 축제를 지내는 것 같은데 너울을 쓴 여자가 수장에게로 다가가고 의자에 앉은 수장이 그 여자를 맞아들이는 것으로 보아 후취를 맞는 예식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잔치라면 왜 밤에…."
"그야 고장마다 풍습이 다를 수도 있지요."
"하객들은 많았소?"
"크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은장수가 다소 김이 빠진다는 듯 말했다.
"잔치라면 일찍 잠자리로 들 것 같지 않은데요?"

강 장수가 되받아 말했다.
"죽을 운명이 한식경 전이냐, 후냐의 차이겠지."

그때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나머지 정탐꾼이었다. 강 장수가 그에게도 물어보았다.
"그쪽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소?"
"예…."

그러니까 두 선인들은 수장의 집을 정면으로 해서 오른쪽과 왼쪽에서 각각 그 장면을 본 것이었다.

"상세히 말해보시오."
"잔치임에는 분명한 것 같은데 사람들은 웃지도 떠들지도 않았습니다. 더욱이 신부로 보이는 여성의 의상이 거기에 참석한 하객들과도 달랐습니다."
"의상이 다르다면 결혼예복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추측컨대 신부를 타지방에서 사오거나 혹은 훔쳐온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부는 어린 것 같았고 또 몹시 굳어 있었는데 그게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에인이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출정을 개시합시다!"
"아직 잔치가 끝나지 않았는데요?"
은장수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잔치라면 오래 끌지 않을 것이오."


사실 보병을 이끌고 토성 끝으로 가는 데도 시간이 걸릴 터이다. 설령 좀 이르게 도착한다 해도 마을과는 떨어져 있을 테니 먼저 발각되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때를 맞춤에 있어서는 늦는 것보다 이른 것이 유리한 법이다. 강 장수가 아장들에게 말했다.

"아장들은 먼저 군사들 대열부터 지어준 후 기병대로 가시오."

아장들이 군사들을 일으켜 세우고 좌우 군단으로 정렬시켰다. 그 일만 끝나면 그들은 기병이 되어 에인과 합류할 터이고 그 보병군단은 강 장수와 은장수가 지휘할 것이었다.

군단 정렬이 끝나자 대장들은 각자 말을 타고 자기의 군단 앞에 섰다. 보병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자기들을 통솔할 사람은 아장들이 아닌 장수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더 힘이 나는지 저마다 손에 든 칼들을 꼭 움켜쥐었다.

마침내 우군 군단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 장수의 말이 앞장서서 토성의 동쪽으로 향하자 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은 장수도 움직였다. 그는 좌군을 이끌고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보병들이 좌 우군으로 갈라져 나가자 에인이 아장들에게 말했다.

"자, 우리 기병도 이제 출발합시다."

기병들이 말고삐를 잡았다. 95명이었다. 나머지 10명은 마차와 군수품을 지키기 위해 남겨졌다. 책임선인도 마차와 함께 남았다.

에인이 말고삐를 잡고 앞서 걸었다. 기병들도 그 뒤를 따랐다. 에인은 그 기병들을 이끌고 마을 정문으로 쳐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작전은 양 옆과 정면 공격이었다. 선두 기병이 마을의 중심지인 수장의 집을 급습해서 초토화를 시키고 있는 사이, 좌 우군은 양 옆에서 마을을 쓸어오는 것이었다.

그곳 주민은, 특히 남자들은 저마다 거칠고 야만적이어서 끝까지 반항하거나 일단 달아나면 반드시 복수를 해오는 집단이라고 했다. 그래서 에인과 장수들의 작전이 기병들은 수장의 집을, 장수들은 양 옆에서 조여 오는 것으로 함축한 것이었다. 마을 지형이 또한 그러했다. 집들이 토성 아래도 길게 군집해 있었고 그 앞으로는 강이라 마을만 샅샅이 쓸고 오면 한 사람도 빠져나가거나 달아날 수 없다는 계산이었다.

기병들이 토성 가까이로 접근했다. 아까 장수들과 왔던 그 자리였다. 토성 정문은 거기서부터 서북쪽으로 한참 더 올라가야 했다. 에인은 방향을 틀기 전에 잠깐 마을 안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뜬 모양 아주 조용했고, 수장의 집 앞에 걸린 횃불만이 희미하게 어른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비어 있는 적지를 본 순간 에인의 마음이 후끈 달아올랐다. 적들은 모두 침소로 돌아가 잠자리를 펴거나 이미 잠들었을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마음 놓고 개전할 수가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토성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 사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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