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59

등록 2004.03.19 13:59수정 2004.03.1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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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시신은 모두 합쳐 15구였습니다. 그리고 뒤채가 있었습니다."
"뒤채라니요?"
"예, 뒤채가 따로 있었습니다. 거긴 불도 올라붙지 않았습니다."

"뒤채도 살림집이었소?"
"아닙니다. 무기고였습니다. 사병들도 거기에서 기거했던 듯합니다."
"사병들이라니요?"
"수장이 사병들을 거느린 듯합니다."


강 장수의 짐작대로였다. 수장은 항상 집안에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소규모 약탈이나 자신의 목숨을 지켜주는데도 그 사병들이 필요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결혼식이었다. 네 번째로 맞아들이는 새 아내가 어떻게나 겁이 많은지 군인들이라면 질색을 했고 그래서 뒤채에만 머물게 하면서 술과 음식을 듬뿍 주었던 것인데 그만 그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사병들은 주는 대로 받아먹고 일찍이 뻗어버렸고 그래서 지붕에 불이 올라붙고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그밖에는 뭐가 있었소?"
에인이 물었다.

"뒤채 앞에도 넓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구간이 있었는데, 나귀들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에인이 급습할 즈음 취한 것은 수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결혼식을 끝내자마자 신방으로 들어 주안상을 받았다. 그러나 신부는 돌아앉아 참새처럼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그는 신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계속해서 술잔을 비웠다. 그러다가 화가 치밀었고 그래서 불을 휙 끈 다음 신부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 막 신부에게 다가드는 순간,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는 육감으로 알아차렸다. 그것은 불이었다. 괜히 일어나는 그런 불이 아니었다. 그는 재빨리 옷을 입고 새 아내를 꿰찬 후 뒤채로 가 사병들을 깨웠다.


그러나 곤드레가 된 사병들은 얼른 일어나지도 않았다. 적들이 지척에 있는데 고함을 칠 수도 없었다. 그는 칼을 빼 군사들의 손등을 찔렀고 그제서야 군사들은 눈을 떴다.

'네놈들은 어서 집 앞으로 나가서 침략자들을 막아라. 그리고 다섯 놈은 나를 따르라.'
그는 그렇게 사병 다섯과 함께 나귀를 타고 도주한 것이었다. 잠든 세 아내와 아이들은 버려둔 채 새 아내만 데리고 그렇게 달아났다. 그때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용맹한 사병 다섯과 새 아내만 있으면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처음은 작은 마을 하나를 약탈해서 세력을 넓히든가 아니면 사막 곳곳에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을 다시 규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당나귀들까지도 있는 대로 다 끌고 나갔건만 나귀들은 달아나고 그들만 잡힌 것이었다.

마침내 동이 터오고 있었다. 에인은 승자와 패자들을 번갈아보았다. 패자들은 질펀한 물 바닥에 그대로 꿇어앉았고 승자들은 그들을 감시하거나 지켜보고 있었다. 여명조차도 그들 얼굴에 승자와 패자의 낙인을 꾹꾹 찍어대고 있었다.

에인은 고개를 돌려 화톳불 쪽을 살폈다. 안내선인은 거기 있었다. 그는 조용히 안내선인을 불렀다. 이제 전령을 띄워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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