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들이 사는 곳은 아주 작은 초가집이었습니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워졌지만, 남매는 호롱불 하나 켜지않고 컴컴한 방에서 졸면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텅빈 마당에 가끔씩 몰아치는 바람이 사립문을 펄럭이면 어린 여동생은 금방 잠에서 깨어 외치곤 했습니다 .
“앗 , 엄마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아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늦어지자 계집아이는 조금씩 두려워지는 모양입니다. 마당에 누가 몰래 들어와서 방문을 마구마구 흔드는 것 같고, 지붕 위에도 못된 괴물이 올라가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것 같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찔금 찔금 눈물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오빠가 말했습니다 .
“바보 같이, 왜 울고 그래. 엄마 곧 오실 거야.”
“그래도 이렇게 해가 지도록 안 오신 적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안오시지?”
“일이 너무 늦게 끝난 바람이 해가 져서 내일 아침에 오시려나 보지, 해 지면 산에 호랑이들이 나온다는 말 못 들었어? 이렇게 늦게 오시다가 호랑이들한테 잡어먹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호랑이 소리를 들은 여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갑니다. 놀란 여동생을 달래며 오빠가 말했습니다.
“지난 여름에 돌쇠네 집 잔치에 갔을 때, 장마비 때문에 갑자가 강물이 불어서 그날 못 오시고 그 다음날 아침에 오셨었잖아, 기억나지? 우리 막 울고 불고 난리가 아니었는데, 아침에 엄마가 떡 한 바구니 머리에 돌아오셨잖아.”
그때를 떠올리자 여동생 눈가에 살그머니 미소가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말고 기다리자, 알았지?”
그렇게 기다렸지만, 밤이 늦도록 여전히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 누군가 사립문을 여는 소리가 나더니 방문 앞에 살살 두들기는 것이었습니다 .
“엄마 왔다.”
엄마의 옷을 입고 온 호랑이였습니다. 호랑이가 방문에 귀를 귀울이자 꼬마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열려는듯 나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여자아이의 오빠인 듯한 꼬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가 그렸셨잖아, 항상 엄마인지 확인해보고 문을 열어주라고…”
그리고는 문가에 나와앉아 물었습니다.
“누구세요?”
호랑이가 엄마목소리를 흉내내어 말했습니다.
“나다, 엄마다. 얼른 나오렴.”
“거봐, 엄마라잖아, 얼른 문 열어드려.”
여동생이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오빠가 다시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목소리는 그렇게 거칠지 않아요. 도둑이면 얼른 돌아가요, 우리집은 가난해서 훔쳐갈 것도 아무것도 없고, 금방 어머니가 오시면 아저씨 아주 혼날 거에요.”
호랑이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아이구, 이녀석아, 하루종일 너무 일을 많이 해서 목이 쉬어서 그런 걸 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떡하니? 나쁜 녀석 같으니… 콜록 콜록”
정말 목이 쉰 것처럼 거친 기침을 해댔습니다. 그러자 여동생이 말했습니다.
“거봐 오빠, 오빠는 아무것도 모르고….”
호랑이가 귀를 방문에 귀를 대어보자,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닥속닥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사내아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방문을 조금 열어줄테니까 이 문틈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보세요.”
그리고는 방문이 뻬금 열렸습니다, 엄마 옷을 입고 있는 호랑이는 거침 없이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래 얼른 봐라. 이 옷이 누구 옷이니?”
어머니 옷 소매엔 붉은 핏자국이 묻어있었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 그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내아이가 그 팔을 잡아보니, 옷 감촉은 어머니가 입던 옷이 맞고 어머니 냄새도 났습니다. 그런데 손은 까칠까칠한 털이 나있고, 손톱도 날카롭게 자라있었습니다.
오누이는 사스러치게 놀랐습니다.
“우리 어머니 손은 이렇게 털투성이가 아니에요. 이런 손톱도 없구요.”
호랑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습니다.
“아이구, 이 녀석아, 오늘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갑자기 손이 터서 그래. 오늘따라 엄마 속을 왜 이리 썩이니? 들어가면 혼날 줄 알아라.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을테니, 거기서 보면 될 것 아니냐?”
호랑이는 엄마 옷을 입고 있었으므로,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기를 보면 분명 어머니로 알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호랑이는 옆으로 돌아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솥에 물을 붓고 밥 짓는 흉내를 내었습니다. 그릇을 달가닥 거리고 물을 붓고 한동안 소란을 피우고 아궁이에 불도 지폈습니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오누이는 부엌으로 통하는 문을 살그머니 열고는 쳐다보았습니다. 엄마가 밥을 하면 저렇게 시끄럽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옷은 분명 어머니 옷이 맞았습니다. 호랑이가 아궁이에 불을 피우자 순식간 그 옷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옷은 어머니의 옷이 틀림 없었지만, 옷은 찢겨있고 온통 피투성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치마자락 속으로 뼏쳐있는 꼬리하고 엄마의 보자기를 둘러쓰고 있는 호랑이 머리에 달린 큼지막한 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동생이 말했습니다.
“오빠, 호랑이다 호랑이… 저 호랑이가 우리 엄마를 잡아먹은게 분명해……”
동생은 겁에 질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습니다. 오빠는 얼른 동생의 입을 막고는 구석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울지마, 저 호랑이가 금방 우리 방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우리도 잡아먹을지 몰라.”
계집아이는 차마 울지도 못하고, 그냥 눈물만 글썽이면서 거친 호흡만 해댔습니다.
오빠는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저 뒷문 우물가에 미류나무 있지? 오빠가 문을 열면, 냉큼 뛰어서 저 미류나무에 올라가는거다, 거기서 내일아침까지 기다리면 누군가 우릴 도와줄거야.”
여동생은 눈물이 고인 얼굴을 끄덕였습니다. 오누이는 뒷문을 열고 신발도 신지 않은채 미류나무로 올라갔습니다.
부엌에서 그 남매들을 쳐다보고 있던 호랑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부엌을 나와 오누이의 뒤를 따라갔지만, 그 녀석들은 이미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미류나무 근처에 다다간 호랑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아이들을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 아이구, 이놈들아, 내가 그 미류나무에 올라가면 위험하다고 몇 번을 이야기하던? 거기 밑에 우물 있는것 몰라? 그 우물에 빠지면 어쩔려고 그곳엘 올라갔어. 얼른 내려오지 못해?”
오빠가 눈물을 글썽이며 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거짓말 하지마, 우리 엄마 저 산길에 잡아먹었지, 이 나쁜 호랑이 같으니…”
그러면서 미류나무 가지를 한개 꺾어서 호랑이에게로 냉큼 던졌습니다.
호랑이는 미류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아이들을 보자 내심 기뻤습니다. 이제 저 아이들을 잘 꼬득여서 기도만 하게 하면 불쌍한 아이들을 하늘로 이끌어 갈 동아줄이 일월궁전에서 내려올 거고, 그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면 한반도의 호랑이들이 그토록 그리던 소망을 이루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도록 좋았습니다. 보름달마저 휘영청 밝았습니다.
“으흐흐흐…..”
호랑이는 기쁨에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포효소리 같은 그 웃음소리를 들은 동네의 새들은 놀라 하늘로 퍼드득 날아가 버렸고, 그 소리에 잠을 깬 개들이 시끄럽게 짖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는 좀 더 무서운 소리로 아이들을 겁주기 시작했습니다.
“허허허, 그래? 그럼 내가 너희들 있는 곳에 못 올라갈 것 같으냐? 너희들 잡히기만 해봐라, 너희 그 발부터 오도독 씹어먹어주마.”
여동생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오빠는 여동생을 품에 안으면서 말했습니다.
“올라올테면 올라와봐라, 이 멍청한 호랑아!!”
호랑이는 날카로운 발톱은 세우고는 미류나무 줄기를 타고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가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기자 오누이는 금방이라도 심장이 멎을 것처럼 두려웠습니다.성큼 성큼 오르는 호랑이의 발에 밟힌 미류나무의 가지는 부러져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적막한 밤에 그 가지들이 꺾여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는 나무가 아파서 우는 것만 같았습니다.
오누이는 호랑이를 피해 미류나무 위로 더 올라갔지만, 줄기는 갈수록 얇아지고 가지는 약해져 더 이상 지탱할 곳이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면 호랑이에게 잡혀먹이기 전에 떨어져 죽을 것이 분명 했습니다. 더 이상 갈곳이 없는 오누이는 자기도 모르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하느님, 제발 저희를 좀 살려주세요, 저희를 살려주세요.”
오빠가 기도를 시작하자 여동생도 따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아래 호랑이가 우릴 잡아먹으려고 따라오고 있어요. 동아줄이라도 좋아요, 저희를 하늘로 날라줄 제비라도 좋아요, 아무거라도 좋으니 제발 저희를 살려주세요.”
여동생이 흐르는 눈물이 줄줄 흘러 저고리를 적셨습니다.
순간 샛별이 반짝 하더니 아래로 슬슬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반짝이는 별빛은 점점 밑으로 내려오면서 길다랗게 꼬리를 끄는 것이었습니다.
“오빠, 저기 뭔가 내려와.”
“그래, 나도 보인다.”
오누이를 따라오고 있던 호랑이 역시 말로만 듣던 것이 눈 앞에 펼쳐지자 놀란 듯 올라오기를 잠시 멈추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긴 별빛은 오누이의 머리 위까지 내려왔습니다. 저 하늘까지 닿은 그 빛나는 동아줄은 오누이의 허리를 휘어잡고 하늘로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동아줄에 몸이 감긴 오누이가 하늘도 뒤뚱거리며 떠오르자, 바람이 부는듯 나무가 휘청거렸습니다.
호랑이는 정신을 가다듬고는 나무 위로 더 올라가 오누이처럼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저 아래 나쁜 호랑이가 절 쫓아오고 있어요, 제발 저에게도 아무 것이나 보내주세요. 동아줄도 좋고, 참새로 좋아요.”
오누이가 그 동아줄에 감겨 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호랑이가 아무리 기도를 해도 샛별은 반짝이지 않았습니다. 호랑이는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제발 아무것이라도 좀 내려주세요, 썩은 동아줄이라도 좋으니, 제발 나를 저 곳으로 데려다 달라구요.”
그러나 별들 가운데 어두운 구름 속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기어내려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언뜻 뱀 같기도 하고, 지네 같기도 했습니다. 호랑이 머리 위로 내려온 그것도 동아줄이었습니다. 그 동아줄 역시 호랑이의 허리를 휘감아 하늘도 감아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호랑이는 맞은 편 산꼭대기에 앉아 오누이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일월궁전으로 무사히 올라갈 수 있기만을 바라며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하늘 속으로 사라지면 호랑이들을 모아서 새로운 날을 맞을 준비를 할 터였습니다.
오누이를 감싸고 있던 별빛 동아줄이 하늘 속으로 사라지자 그 어두운 하늘을 찢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크허엉!”
산천을 울리는 포효소리와 함께 팔과 다리를 내저으면서 떨어지는 것은, 바로 오누이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던 호랑이였습니다. 그의 피 묻은 옷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아…”
산꼭대기의 호랑이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호랑이가 저 산 아래 수수밭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퍼졌습니다. 그 산에 살고 있던 사람이건 동물이건 호랑이가 떨어져 죽은 곳에는 당분간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자 호랑이의 피가 묻은 그 수수를 뽑아서 떡을 해먹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 떡을 먹는 사람마다 호랑이의 힘을 얻는다는 말도 들렸습니다.
그 아래 있던 수수밭을 온통 피로 물들이며 호랑이가 땅에 떨어져 죽은 자리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길이 생기고 마소가 지나다니고 시장이 들어서고 마을이 생겼습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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