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천심을 읽지 못했던 것 아니겠는가?

여전히 봄은 화사한 웃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등록 2004.03.25 17:53수정 2004.03.2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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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초록빛 들풀이 이슬을 머금고 일어나고 있다.

초록빛 들풀이 이슬을 머금고 일어나고 있다. ⓒ 느릿느릿 박철

꽃샘추위도 물러갔는가. 봄은 봄이로다. 봄비에 푸르러지는 버드나무와 개나리, 목련이 부끄러운 듯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이다. 자연은 못된 사람들이 나라를 온통 벌집 쑤셔놓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새로운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이렇듯 자연은 제 때와 분수를 알아 순리(順理)에 의하여 물 흐르듯 순하고 조용하게 움직이거늘 어찌 인간은 순하지 못하고, 요란하고 힘으로만 몰아붙이고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것인가.

자연은 일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봄이 되면 새 잎을 열고 새 싹을 틔우고, 여름이면 왕성한 생명활동으로 기운을 뻗고, 가을이면 자기가 수고한 만큼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공들여 가꾼 옷을 모두 벗는다. 겨울이 돌아와 칼바람이 쇳소리를 내며 지나가도 자연은 춥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연은 이렇듯 일정한 리듬과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24절기 때가 있으니 그 시간표대로 잘 따르면 사람도 편하고 탈이 없다. 그러나 유독 인간세계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도무지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정직하고 깨끗해야 할 정치판은 온갖 구정물을 뒤집어쓰고 더러움과 역겨움의 대상이 되었으며 가장 믿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인가? 한마디로 힘으로 정치를 맡기 때문이다. 힘으로 우겨다지는 정치는 세상 다스리는 일을 제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변덕이 죽 끓듯 하게 된다.

a 목련이 담배권련처럼 잎을 돌돌 말려 있다. 곧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이다.

목련이 담배권련처럼 잎을 돌돌 말려 있다. 곧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이다. ⓒ 느릿느릿 박철

정치를 덕으로 하지 않고 힘으로 억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게 되었고, 돈이 필요하니 만만한 사람들을 골라 돈을 갈취하는 것이다. 정치가와 자본가의 모종의 결탁이다. 다 자기들대로 잇속이 있으니 그런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가 권력이 되고 그 권력이 세도로 변하면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만다. 정치는 무릇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린다는 말이다. 정치가 권력의 수단이 되고 말았으니 어떻게 하든 국민들의 인심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지난 3월 12일, 국회에서 야당의원 193명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대통령 탄핵사유가 어찌 되었건 간에 야당의원들의 단합에 의해 국회의장이 의사봉 몇 번 두드리면 끝나는 것으로 간단하게 처리될 일이 아니었다. 총만 쏘지 않았지 치열한 격투장을 방불케 했다.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야당의원들은 괴한을 물리치고 마을의 평정을 되찾은 서부활극의 카우보이처럼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한 채 승리감에 고무되어 만세를 불렀다. 얼마나 신났겠는가. 대통령 탄핵 결정을 막지 못한 여당의원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며 급기야는 국회의원 사퇴를 선언하였다.

그런데 그 후로 어찌 되었는가? 하루아침에 탄핵정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역풍을 만나게 되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만세를 부르던 야당의원들은 기가 죽어 떳떳하게 고개를 들지 못할 상황이 되었고, 서로 부등켜 앉고 눈물을 삼켜야했던 여당의원들은 표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정도로 상황은 역전되었다.

a 촛불행렬이 광화문 전체를 뒤 덮고 있다.

촛불행렬이 광화문 전체를 뒤 덮고 있다. ⓒ 뉴스앤조이 신철민

지난 3월 23일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새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전, 박근혜 의원과 한나라당을 향해 독설에 가까운 매서운 비판을 제기했던 전여옥씨가 한나라 대변인이 되어 만나게 된 것이다.

“박근혜 의원을 선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화약을 지고 불속에 뛰어든 격”이라고 비판했던 전여옥씨가 이제는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으며, 앞으로 최선을 다해 박 대표를 열심히 모실 것”이라고 한다. 한 입으로 서로 다른 말을 한 변명치고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어쨌든 예측할 수 없는 3류 정치 코미디가 저녁 9시마다 TV에 방영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거짓말 잘하고 철새처럼 변신을 잘하는 사람으로 통하고 있다. 그 재미없는 코미디를 TV에서는 재밌게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희망적인 일은 국민들이 그들의 저질 코미디에 더 이상 호락호락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탄핵정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외면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소신껏 얄팍한 명분에 끌려 다니지 않고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꿈쩍하지 않고 진실 되게 줏대를 지키는 정치인이 국민들이 지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들로부터 믿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정치는 해야 할 것이요, 세상을 다스리는 정치는 국민들의 신임을 얻어야 하는 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a 탄핵반대. 민주수호

탄핵반대. 민주수호 ⓒ 뉴스앤조이 신철민

지난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는 날,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깊은 우려를 했지만, 거꾸로 민(民)이 주인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견고하게 세우는 계기가 되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 세월을 읽지 못하고 천심과 민심을 읽지 못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여전히 봄은 인간세상을 상관하지 않고 화사한 웃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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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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