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20

신임포교

등록 2004.03.26 17:37수정 2004.03.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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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느닷없이 밀침을 당한 별감은 누가 받아줄 사이도 없이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이에 동료 별감들이 우르르 달려와 백위길을 에워쌌다.


"포졸 주제에 겁이 없구나! 우리가 누군지냐 아느냐?"

"별감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궁궐의 종놈이지 뭐긴 뭐냐? 네 놈들이야 말로 어디서 함부로 포교를 치느냐?"

백위길의 당당함에 별감들은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치다니 느닷없이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백위길이 맞아 쓰러지자 포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별감들과 드잡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만해라! 그만해!"

누군가 내지르는 소리에 별감들이 먼저 물러서기 시작했다. 바로 백위길에게 밀침을 당한 입술 붉은 별감이었다.


"포교와 별감이 기방에서 싸움이 났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찌 되겠느냐? 이만하면 됐다."

뒤늦게 이순보도 포교들을 만류하기 시작했다.


"그래 맞는 소리다! 잘 놀고서 이게 무슨 꼴들이냐! 이만 집으로 가자!"

포교들과 별감들이 서로 노려보며 제각기 갈려가는 순간 입술 붉은 별감이 땅바닥에 쓰러져 코에서 피를 훔쳐내고 있는 백위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나 강석배라고 하네. 강별감이라 부르게나 앞으로 종종 뵙세."

백위길은 강별감의 손을 잡으며 천천히 일어서며 자신을 소개했다.

"포교 백위길이라고 합니다."

"백포교라... 그나저나 쓰러진 동료를 돌보지 않고 그냥 가는 사람들이라니.... 자네의 노력이 아깝구먼."

그제서야 백위길은 이순보를 비롯한 포교들에게 약간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벌써 몇몇 포교들은 더 이상 시끄러운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듯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까는 미안했소이다.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백위길의 사과에 강석배는 개의치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아! 원래 별감들과 포교들이야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지 않나? 그럼 이만 난 가봅세."

강석배는 붉은 옷에 묻은 먼지를 조용히 털어 내며 누런 초립이 행여 구겨졌을 까봐 벗어 한번 살펴보는 여유를 부린 다음에야 약간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는 별감들을 따라 백위길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앞으로 종종 만나자는 말은 무슨 뜻일까? 얼굴이 익었으니 앞으로 두고 보자는 말인가?'

백위길은 기방의 부엌에서 물을 약간 얻어 얼굴을 씻으며 앞으로 포교로서 살아갈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백위길이 물을 쏟아 버리고 기방을 떠나려 할 때쯤 한 쪽에서 남녀 한 쌍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이보게 오월이! 여기서 이리 고생하지 말고 이제 집으로 갑세! 내 이제 술도 끊고 도박도 끊었네."

"그 말을 어찌 믿소이까? 술을 끊으면 도박을 하고 도박을 끊으면 술을 마시니 그 몰골을 보는 여인네의 심정을 진정 알기나 하고 이러시는 것이옵니까?"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아 백위길은 슬며시 말소리가 들라는 쪽으로 다가갔다. 남자는 바로 포장(捕將)인 박춘호이었고 여인은 방금 전까지 기방에서 술상을 나르던 오월이었다.

"지금도 술에 취해 이러는 게 아니옵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시옵소서 주변 사람들의 눈이 두렵사옵니다."

오월이의 말에 박춘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후 몸을 돌리며 말했다.

"거기 누군지 몰래 엿듣지 말고 이리 나오게나. 털을 댄 미투리를 신고 다녀도 그 발소리를 알아듣는 나일세."

박춘호의 말에 백위길은 뜨끔해하며 서서히 앞으로 나섰다.

"허...... 백포교 아닌가? 아직도 안가고 여기서 뭘 하고 있었나?"

박춘호의 눈이 기분 나쁘다는 듯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기에 백위길은 주눅이 들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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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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