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21

신임포교

등록 2004.03.29 17:52수정 2004.03.2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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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로 엿들은 것은 아니옵고...... 술을 깨려 머뭇대다 보니 남아있게 되었사옵니다."

박춘호의 눈은 계속 백위길을 쏘아보고 있었고 그 사이 오월이는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볼일 없으면 가 보게나."

백위길은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백위길로서는 웬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술자리였다.

다음날, 전날 과음에다가 별감들에게 맞은 자리가 쑤셔오는 바람에 포도청에 늦게 등청한 백위길에게 이순보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사람이 정신이 있는 사람인가! 신참 주제에 이리도 늦게 등청하다니! 포도청의 기강을 어찌 알고 하는 수작인가!"

"죄송합니다."


전날 같이 술을 마신 터라 핑계를 대어 보아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백위길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연거푸 할 수밖에 없었다. 포장인 박춘호 역시 백위길을 싸늘한 눈으로 보며 지나쳤다.

"아직 포도청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모양인데 늦게 등청한 벌로 오늘부터 한 달 동안은 집에 갈 수 없네! 그리고 한 달 내내 순라를 돌게나! 그게 싫으면 포도청을 관둬도 좋네!"


백위길로서는 한 번 실수에 처사가 너무 가혹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원래 포도청이라는 곳이 이러려니 여긴 데다가 웬지 모를 오기도 생겨 냉큼 알겠노라 대답했다. 이순보는 그런 백위길을 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어디 네 놈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이순보는 가려는 백위길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네. 포도청 일과가 끝나면 반촌(泮村)에 가서 도둑을 잡아오게."

백위길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냉큼 떠나려는 이순보를 잡고 물어보았다.

"반촌은 어디며 어떤 생김새를 한 도둑을 잡아야 한단 말씀이시옵니까?"

이순일은 버럭 화를 내며 백위길에게 소리쳤다.

"그거야 자네가 스스로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 일은 도둑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니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게! 알겠는가?"

포교의 옷만 갖춰 입었다 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위길로서는 막막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날 하루, 백위길은 포장 박춘호를 따라 죄인 문초를 참관하고 시전 거리를 한바퀴 돌며 이리저리 일을 배우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그래, 이만 수고했으니 퇴청하게나."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파김치가 된 백위길은 박춘호의 말에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이포교께서 한 달 동안은 퇴청하지 말라 일렀사옵니다."

박춘호는 잠시 머리를 갸우뚱거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긴 일을 빨리 가르치겠다면 그도 나쁜 방법은 아닌 듯 하군."

"그리고 박포장님. 반촌이 어디옵니까?"

"반촌? 그 곳에는 왜?"

백위길은 이순일의 말을 떠올리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게…. 누가 반촌에 대한 얘기를 해 궁금해서이옵니다."

박춘호는 얼굴을 찡그리며 얘기해 주었다.

"자네는 한양에 살면서 푸줏간에도 안 가봤는가? 푸줏간을 운영하는 이들이 죄다 반촌민들일세. 경모궁(景慕宮)의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다보면 응란교라는 다리가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반촌이 나온다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 곳에 드나들 때는 평복으로 가도록 하고 자신이 포교라는 말을 해서는 아니되며 행동거지를 조심하게나."

"상것들이 사는 곳에서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니요?"

백위길의 말에 박춘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 젖혔다.

"반촌 어찌 상것들만 사는 곳인가? 그곳에는 앞으로 나라의 고관대작이 될 성균관 유생들이 살고 있다네. 자, 난 이제 가 볼 테이니 수고하시게나."

백위길로서는 박춘호가 묻지 않은 것까지 상세히 알려주어 도움은 되었지만 그래도 막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포교라고 말도 못하는 곳에 가 도둑을 잡아오라는 것인가? 이 포교가 날 까다롭게 시험하는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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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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