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하는 거는 니 뿐이다"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50>밥알꽃

등록 2004.04.12 13:51수정 2004.04.1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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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들이 "밥알꽃"이라고 불렀던 박태기꽃

우리들이 "밥알꽃"이라고 불렀던 박태기꽃 ⓒ 이종찬

내 고향집 싸리 대문 옆에는 밑둥이 어린 아이 다리 만한 박태기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나무는 부모님께서 고향집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어머니께서 기념으로 심은 나무라고 했다. 박태기 나무에 밥알처럼 생긴 박태기꽃이 주렁주렁 매달리듯이 우리집 곳간에도 가을이면 쌀 가마니가 가득 차라는 그런 뜻에서.


당시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처음 결혼을 한 뒤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집에서 50m 남짓 떨어진 그 집, 탱자나무 울타리가 빼곡히 둘러 쳐진 그 집에서 셋방살이를 했다고 하셨다. 그때 큰집에서 분가를 할 때 큰아버지께서 내 준 찹쌀 한말만 달랑 들고 말이다.

그렇게 힘겨운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부모님께서는 뼈 빠지게 일을 한 끝에 결혼 몇 해만에 초가집을 한채 마련했다고 하셨다. 그 초가집, 그러니까 내 고향집은 '쌀밭등'에서 살고 있는 대지주 김씨네 집이었지만 부모님께서는 해마다 보리와 나락타작이 끝나면 보리와 나락 몇 가마니를 집세로 주는 조건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셨다.

비록 초가집이었지만 그 지긋지긋한 셋방살이를 벗어나 처음으로 한 가족이 오손도손 살 수 있는 독립적인 집을 한채 갖게 됐으니, 그 당시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겠는가. 특히 창녕 길곡에서 태어나 외할아버지를 따라 창원에 왔다가 아버지와 결혼을 한 뒤 갖은 고생 끝에 내 집을 마련한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근동때기(근동댁) 집 담벼락에 서 있는 저 밥알나무에서 밥알꽃이 피는 거로 본께네 또 그 지긋지긋한 보릿고개가 시작되는 갑다, 그쟈?"
"근데 올개(올해)는 머슨(무슨) 밥알꽃이 저리도 많이 피노? 올개 보리 농사가 풍년이 들라꼬 그라나?"
"그기 아이고 올개는 아마도 자식 농사가 풍년이 들라꼬 그랄끼다."


a 박태기꽃이 지고 나면 하트 모양의 예쁜 잎이 피어난다

박태기꽃이 지고 나면 하트 모양의 예쁜 잎이 피어난다 ⓒ 이종찬

그랬다. 해마다 이맘때, 우리집 담벼락에 어른 키 두배 만하게 서 있는 박태기나무에서 자주빛 꽃이 매달리기 시작하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꽃이 많이 피느냐, 적게 피느냐에 따라서 그 해 농사의 길흉을 점쳤다. 또한 박태기꽃이 조금 적게 매달리면 그해 곡식 농사, 자식 농사 모두 망친다고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박태기꽃을 '밥알꽃'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들도 내 어머니의 바람처럼 밥알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그해 곡식 농사, 자식 농사 모두 풍년이 들기를 빌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집에 박태기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저마다 꽃가지 하나를 꺾고 싶어 안달을 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박태기꽃을 꺾어 자기 집 곳간에 꽂아두면 그해 곳간이 가득찬다는 일종의 미신 같은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혼기에 찬 우리 마을 처녀 총각들은 봄에 박태기꽃을 꺾으면 그해 가을에 사랑이 이루어진다며 박태기 꽃가지 하나를 꺾어가는 게 소원이었다.


"앗 따가!"
"거 봐라. 그라이 내가 뭐라카더노. 꽃이든 사랑이든 보쌈을 할라카모 안 된다 안 카더나."
"자~알 한다. 고마 내한테 꽃가지로 하나 꺾어달라카모 될 낀데…. 쯧쯧쯧. 헹님은 나중에 색시도 훔치올라꼬 그라제?"


그랬다. 우리집에 박태기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우리 마을에 사는 벌이란 벌들은 모두 떼지어 몰려 들었다. 그 중에는 쏘이면 금세 주먹만한 혹이 부풀어 오르는 왕벌들도 제법 많았다. 그날 그 형님은 우리집을 몇 번 가웃기웃 하더니 몰래 박태기 꽃가지 하나를 꺾으려 했다. 그러다가 그만 왕벌에게 머리를 쏘이고 만 것이었다.

그 형님은 곧바로 상남 시장통에 유일하게 있는 차의원 집으로 직행했다. 그래. 그 형님이 좋아하는 누나는 우리집 앞을 흘러내리는 개울 건너 산수골에 살았다. 나는 소풀을 베러가다가 간혹 그 형님과 누나가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 몇 번 보았다. 하지만 그 누나는 그 형님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a 박태기꽃, 밥튀기꽃, 사랑꽃, 내 어머니의 꽃

박태기꽃, 밥튀기꽃, 사랑꽃, 내 어머니의 꽃 ⓒ 이종찬

그날 나는 소풀을 베러가기 전에 박태기 꽃가지 하나를 꺾었다. 그 형님이 짝사랑하고 있는 산수골에 사는 그 누나한테 전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 그 형님이 오죽 그 누나를 좋아했으면 박태기꽃을 아무도 몰래 꺾으려고 했겠는가. 또한 내가 그렇게 해야만이 그 형님의 벌에 쏘인 상처가 빨리 아물 것만 같았다.

"니, 바지개 안에 있는 그기 뭐꼬?"
"……"
"이거 '사랑꽃' 아이가. 그래. 내 줄라꼬 일부러 꺾어왔제?"
"그…그기 아이라…."
"문디 머스마! 내가 좋으모 좋다꼬 고마(그냥) 말로 하모 되지. 우쨌거나 내 생각하는 거는 니뿐이다. 그라고 나중에 이 꽃이 다 지고 사랑잎이 예쁘게 피어나모 그때도 내 나이만큼 따주라."


그랬다. 그날 나는 하트 모양의 박태기 잎사귀를 보고 '사랑잎'이라고 부르는 그 가시나한테 그만 박태기 꽃가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아니, 그 가시나와 내가 은근히 좋아하는 것처럼 그 누나와 형님도 서로 좋아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다음날 나는 그 누나한테 박태기 꽃가지 하나를 건네줬다. 그 형님이 몸이 아파 나한테 대신 갖다주라고 하더라며. 그러자 그 누나의 볼이 이내 박태기꽃처럼 붉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 누나한테 고맙다는 말 대신 꿀밤만 한 대 맞았다. '머리에 쇠똥도 안 벗겨진' 녀석이 제법 웃긴다는 그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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