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대한민국의 희망을 뽑습니다”

[태우의 뷰파인더 17] 나는 이번 선거에서 이런 기준으로 선거한다

등록 2004.04.13 10:48수정 2004.05.0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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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선거가 코 앞에 다가와 있다. 거리엔 조금이라도 유권자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아양을 떠는 예비 정치가들’이 각종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선관위는 미디어를 통한 선거운동을 장려한다고 하지만, 짧은 문장으로 정리된 ‘선거 유세용 정책’밖에 들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것도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드는 ‘아양용 정책들’이 눈에 거슬린다.


정책에 대해서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미지 정치’는 기세를 부린다. 인자한 인상과 인간적인 접근의 시도는 모두 공염불처럼 느껴진다. 어차피 선거 때 그들을 보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냉소적인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의 정치적 신념의 판단 기준인 정책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준은 그들이 속해있는 당일 수밖에 없다. 현실 정치 안에서 국회의원은 아직까지도 ‘위대한 당론’을 위한 거수기 신세니까. 따라서 그들의 당이 걸어온 길, 그들이 속해있는 당의 지나간 행보가 판단의 기준이라고 나는 이번 선거의 기준을 정했다.

정치인들은 좀처럼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 그들이 입을 벌릴 때마다 썩은 구취가 진동을 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그들의 양치질까지 해주어야 하는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지나간 과거의 잘못은 덮어두고 앞으로 다가올 찬란한 미래의 희망만을 떠벌리고 있는 그들의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김태우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또 외워도 자꾸만 잊어 버리는 인간의 속성을 꼬집는 말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인간은 잊기 때문에 살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신이 망각을 인간에게 선사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뇌는 용량을 초과해버린 하드웨어처럼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긴, 가슴 아픈 순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살다간 아마 화병에 걸려 제 명을 다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영어 선생님은 자꾸 영어단어를 잊는 걸 속상해 하지 말고 잊어버려도 또 외우고, 잊어버려도 또 외우라고 했다. 그래도 신은 인간의 노력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에 외우고, 또 외우면 그 단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거’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과거가 얼마나 추악했는지, 그들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암적 존재였는지, 그들이 한번도 혀를 놀려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그저 잊혀지기 위해 침묵할 뿐이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그들 또한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기다린다. 정치적으로 다시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논리와 시기가 다가오기를. 칠판에 쓰여진 그들의 잘못은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버리고선.

이제 그 지우개의 쥔 손을 우리의 표심으로 막을 때이다. 우리가 말해줄 차례다.

“누가 잊어? 너라면 그걸 잊었겠어? 우린 아직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구”

며칠 전, 어머니가 종교 행사에서 전직 국회의원의 동생을 만났다고 한다. 그 분 말씀이 이랬다. “남자로 태어나면 국회의원 한번 해봐야 하고, 여자로 태어나면 국회의원 아내 한번 해봐야지.” 나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국회의원이 사회적 지위를 드높이기 위한 액세서리인가. 국회의원이 자신의 남자다운 기개를 자랑하는 보증수표인가.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한 마디 따끔하게 해주시지 그랬어요?” 라고 묻자, 어머니는 정확히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기세에 눌려 반박하지 못했다며 분해 하셨다.

김태우
사춘기 시절부터 내가 잃어버린 우산을 합쳐놓으면 거짓말 조금 보태 우산가게를 차려도 될 것이다. 어머니는 새 우산을 사주시면서 내게 늘 다짐을 받으셨다. “이거 꼭 챙겨라.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돼” 하지만 그 건망증이 어디 가겠는가. 나는 늘 우산을 까맣게 잊고선 신나게 놀다가 집 대문 앞에 서서야 우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곤혹스러워 했다.

우리의 일꾼을 뽑는 선거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의 우산’은 우리가 챙기자. 비 오는 날이 오면 금세 우산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고 후회하는 짓은 이제 그만 반복하자.

그리고 외우고 또 외워 우리의 정치를 ‘우리의 단어’로 만들자. 그래서 선거공보우편에 적힌 문구처럼 '대한민국의 희망'을 국회로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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