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33

애향이

등록 2004.04.19 17:40수정 2004.04.1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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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죄송하옵니다. 애향이와 옥향이를 이만 데리고 가봐야겠습니다."

한참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미안한 표정을 잔뜩 지은 윤옥이 들어섰다. 김언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누가 왔는지를 물어보았다.


"예전에 시전 쪽에서 놀던 한량들이옵니다."

그 말을 듣자 김언로는 급히 술잔을 쭉 들이킨 후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보통 양반들이야 조용히 있으면 되지만 한량들하고 마주쳐서 좋을 건 없네. 자네도 어서 갈 채비를 하게."

"예......"

백위길은 술기운에 비틀거리며 옷을 챙겨 입고선 급히 나가는 김언로의 뒤를 쫓아갔다. 백위길은 김언로가 한량들을 기피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물을 틈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얼마쯤 갔을 까? 김언로는 우뚝 멈춰선 채 탄식을 내뱉었다.


"왜 그러시옵니까?"

"아뿔싸! 내 급히 나간다고 통부를 두고 왔네!"


"예?"

"수고롭겠지만 자네가 기방으로 뛰어가 내 통부를 가져다 주지 않겠나? 행수기생에게 부탁하면 알아서 가져다 줄 걸세."

백위길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기방 쪽으로 뛰어갔다. 살짝 열린 문으로 조심스레 들어간 백위길은 요란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방을 지나 윤옥을 찾았지만 쉽게 눈에 띄질 않았다.

'허 낭패로고.'

그때, 어쩔 줄 모르며 이곳저곳을 서성이는 백위길의 어깨를 누군가 턱 하니 짚었다. 백위길이 크게 놀라 뒤돌아보니 바로 그토록 찾았던 별감 강석배였다.

"아니...... 당신이 여기......"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왜 그리 놀라시나 백포교?"

강석배는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백위길을 바라보았다. 백위길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강석배의 얼굴을 보았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가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질 못했다.

"어떤가? 안에서 술이라도 한 잔 하지 않겠나?"

"아니, 난 그저......"

"뭘 망설이나?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이 자네도 술 생각이 나 기방에서 어슬렁대는 모양이구먼. 어서 들어가세."

강석배에게 강제로 끌려 들어가다시피 한 백위길의 눈에 망건을 쓴 두 명의 한량과 상투 바람의 한량 두 명이 각자 기생을 옆에 두고 선 술판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자리에는 애향이가 굳은 표정에 놀란 눈으로 백위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자네가 말한 포교인가?"

얼굴이 옴이 덕지덕지 난 한량의 말에 강석배는 약간 당황해하며 맞노라 대답했다.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말인가?'

백위길이 우두커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자 강석배가 자리를 잡아주며 앉기를 권했고 술잔이 앞에 놓였다.

"요사이 강별감을 찾는다는데 무슨 일인가?"

옴 한량의 말에 백위길은 어찌된 일이냐는 듯 강석배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았으나 그는 별일 아닌 척 그저 술만 홀짝거릴 뿐이었다.

"별일은 아니옵고......"

"별일 아닌 일로 기방에 왔다갔다 거리며 강별감만 기다렸단 말인가? 응?"

옴 한량은 호통을 치듯 언성을 높였고 백위길은 순간적으로 더욱 움츠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편으로 백위길은 자신은 명색이 포교로서 할 일을 할 뿐인데 아무리 양반이라도 너무 강압적이다 싶어 대뜸 큰 소리로 말했다.

"강별감이 도성안에 불온한 자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옵니다. 뭐가 잘 못 되었사옵니까?"

옴 한량은 가만히 백위길을 쳐다보더니 크게 한바탕 웃으며 망건을 쑥 벗어버렸고 머리털이 조금은 보송보송 난 맨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바로 나 같은 자를 보고 그렇게 이르는 것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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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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