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일출봉까지 떠나는 인생질주

쪽빛바다 사이 길에는 삶의 애환이 있다

등록 2004.04.22 16:11수정 2004.04.2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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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꿈꾸는 나에게 마흔의 나이는 무거운 짐이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는 아라비아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아라비아 숫자에 비친 내 모습은 항상 나를 발버둥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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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동분서주하다가도 마음 한 켠에는 무엇인가를 더 채우려는 욕망의 꿈틀거림. 그래서 나는 날마다 길을 떠난다. 서른에 내가 떠난 길이 나와 우리가족을 위해 떠난 길이었다면, 마흔에 떠나는 길은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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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제주시에서 성산 일출봉까지 가는 동쪽 12번 도로를 타고 가노라면 해안도로에 접어든다. 이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뭍과 바다가 있다. 그 뭍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애환이 서려 있고, 바다에는 또 하나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뭍과 바다사이에는 여지없이 길이 나 있고, 그 길에서 일상을 탈출하여 떠나온 사람들의 인생 질주가 다시 시작된다.

이곳이 지구 끝인가 했더니, 이곳에서는 산업사회에서 일어나는 순리와 경쟁이 다시 시작된다. 행원의 어느 작은 바닷가 마을에는 문명의 이기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 한라산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돌아가는 풍차는 하늘에 매달려 선풍기 날개처럼 바람을 일으킨다.

이 바닷바람이 문명의 이기를 주리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풍차와 어우러진 바닷가의 풍경은 꿈과 낭만을 즐기기에는 뭔가 어색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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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도심의 끝을 따라 동북삼거리에 접어드니, 이제 막 비닐하우스의 온기를 뚫고 세상에 얼굴을 내 보이는 어린 모종이 뚫어진 비닐 하우스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흙을 일궈 재화를 창조해 내려는 농부들의 마음을 읽히는 순간이다. 밭고랑마다 하얗게 덮여 있는 비닐 하우스 속에는 열매를 기다리는 이파리들의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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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느긋하게 가기 위해 해안도로를 택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쪽빛 바다에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길은 다시 바다를 가로지른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쪽빛 바다를 한아름 안고 달릴 수 있어서 더욱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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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동북을 지나 김녕 해수욕장을 따라가니 바다를 건져내는 노파의 모습이 보인다. 이 바다는 항상 우리에게 양식을 준다. 미역을 건져내는 노파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 한켠애 찡하게 느껴오는 무엇인가가 꿈틀거린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공생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를 드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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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길을 가다 쉬어갈 수 있는 곳은 항상 우리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세화 철새도래지를 지나 구비 구비 이어지는 길옆에는 누군가가 쌓아 놓은 돌무덤은 무리를 이루었다. 길을 가다가 쌓아 놓은 돌무덤은 바다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처럼,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돌무덤을 따라 바다로 내려가 본다. 한동을 지나 행원 그리고 세화의 바닷가 마을, 이곳에서 보이는 것은 푸른 바다뿐이다.

차에서 내리지 않더라도 창문을 열면 바다 내음이 밀려온다. 그 냄새의 맛을 짭짤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돌무덤을 지나니 '고망 난 돌' 부근에는 전망대가 있었다.

숨을 고르듯, 전망대에 오르니, 보이는 곳은 파란 하늘과 망망대해.그리고 아스라이 떠 있는 일출봉의 모습. 날마다 해가 떠오르는 일출봉의 모습은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멀어져 가는 못다 이룬 꿈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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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일출봉이 가까워지면서 바다와 하늘. 그리고 노랗게 피어있는 유채꽃의 물결이 장관을 이뤘다. 남국의 정취. 차에서 내리기를 몇 번. 도저히 드라이브를 하면서 눈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너무 아쉽다.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바다인지, 굳이 선을 긋는다면 내 마음속 잣대를 가지고 그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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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일출봉 옆에 드러누워 있는 우도는 물 속에 풍덩 빠져 있으면서도 옷이 젖지 않은 묘기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섬은 항상 전설처럼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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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바다 끝을 지키고 있는 야생화가 생명의 끈질김을 예감한다. 낭떠러지를 가까스로 붙잡고 피어있는 야생화는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건만 제 모습을 지키고 있다. 나도 저렇게 우매하게 제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물이 빠져나간 성산 오조리 바닷가는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은 허무함으로 다가온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푸른 물결이 넘실대던 바다는 자연의 섭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빼앗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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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그러나 물이 빠진 오조리 바다는 내가 떠나 온 마흔의 길처럼, 다시 바닷속의 비밀과 생명체를 가득 안고 밀물처럼 몰려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밀물 속에는 문명, 희망. 꿈. 우리들이 일용할 양식을 한아름 안고 다시 오조리 바다를 가득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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