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처럼 피어난 '하얀 찔레꽃'

내게로 다가온 꽃들(47)

등록 2004.05.01 17:11수정 2004.05.0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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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순. 꺾어서 껍질을 벗겨낸 후에 먹으면 아삭한 맛이 납니다.
찔레순. 꺾어서 껍질을 벗겨낸 후에 먹으면 아삭한 맛이 납니다.김민수

하얀 찔레꽃이 맑게 필 때면 바람을 타고 다가오는 풋풋한 향기가 있습니다.

올 봄에는 찔레꽃을 많이 기다렸습니다. 찔레꽃이 지고 나니 그 맛난 찔레줄기도 그 풋풋한 향기도 그리웠습니다. 소중한 것이 곁에 있을 때는 잘 모릅니다. 정말 소중한 것은 이별을 했을 때 아주 깊게 다가오는 것인가 봅니다.


아주 오랜만에 유년시절 맛나게 먹던 찔레줄기도 따먹으며 약간은 떫기도 한 그 맛이 변하지 않았음도 확인을 했습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이파리-비가 많이 온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파리-비가 많이 온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김민수

비가 한 차례 내린 후 숲에 들어갔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몸 속에 남기고 내어놓음으로써 영롱한 보석을 만들어 가는 찔레의 이파리를 보며 삶이란 이렇게 살아야 아름다운 것이구나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찔레를 보면 왜 그렇게 아련하고, 슬프고,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들이 내어놓은 가시까지도 왜 그렇게 밉상스럽지 않고 정겨워 보일까요?

불혹의 나이를 넘겨 들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처음 만나는 꽃들이 주는 짜릿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년시절 만났던 그 꽃이 주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김민수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깊어 깜깜한데 엄마 혼자서 /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꽃 / 산등성이 너머로 일렁이는 꿈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우는 밤 / 초가집 뒷전이 어두워지면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흘리다 /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헵니다


-노래 <찔레꽃> 중에서


찔레를 볼 때마다 입안에 맴도는 노랫말입니다. 아름다운 노랫말, 슬픈 노랫말, 아릿한 노랫말입니다.

김민수

하얀 찔레꽃은 하얀 눈송이가 봄이 오는 연록의 들판에 송이송이 내린 듯합니다. 아니면 하얀 등불을 밝힌 듯도 합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노란 꽃술이 담고 있는 향기는 이른 아침 해가 뜰 때와 해질 무렵 가장 깊은 향기를 냅니다. 그래서 이른 새벽이나 노을이 물들어갈 때 찔레 곁에 서면 그 향기가 온 몸을 감싸줍니다.

그 향기가 내 몸을 감싸는 만큼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들이 치유되고, 가시가 되어 누군가를 찔렀던 내 마음 속에 있는 가시가 부드러워지는 듯 합니다.

꽃등에가 찾아왔습니다.
꽃등에가 찾아왔습니다.김민수

꽃이 가장 행복해 하는 순간은 누군가 찾아와 입을 맞추고, 눈을 맞추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람도 찔레꽃의 향기를 듬뿍 담아 자유로이 숲길을 오가며 뿌리를 한 곳에 내리고 있어 찔레를 볼 수 없는 그 어느 꽃에게도 찔레의 향기를 전해 주는 전령의 역할을 합니다.

좋은 향기는 가득 차면 찰수록 행복해지는 법입니다. 행복한 향기가 온 땅에 그득하면 좋겠습니다.

김민수

찔레꽃과 관련된 구전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찔레순은 하나 꺾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찔레꽃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찔레꽃 이야기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단다. 그때 우리나라는 힘이 약해서 몽골족에게 일년에 한번씩 예쁜 처녀를 바쳐야만 했단다. 찔레라는 이름을 가진 예쁘고 마음이 착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는 다른 처녀들과 함께 몽고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살게 되었단다.

찔레는 몽골에서 그나마 착한 사람을 만나 호화로운 생활을 했단다. 그러나 찔레는 그리운 고향과 부모와 동생들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10여년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던 어느 날 찔레를 가엾게 여긴 주인이 사람을 고려로 보내 찔레의 가족을 찾아오라고 했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어. 찔레의 마음은 더 아팠고, 더욱 더 가족들과 고향이 그리워 병에 걸리고 말았단다.

찔레의 병은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어. 보다 못한 주인이 찔레에게 고향의 가족을 찾아가도록 허락을 했단다. 단 한 달만 있다가 돌아오라는 조건을 붙였지.

고향집을 찾아갔지만 이미 고향집은 다 불타 없어진 상태였고 찔레는 동생과 부모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여기저기 산 속을 헤매었지만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단다.

한 달의 기한이 다가도록 찾지 못하고 몽골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어. 슬픔에 잠긴 찔레는 몽골로 다시 가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고향집 근처에서 목숨을 끊고 말았고, 이듬해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던 곳곳마다 찔레꽃이 피어났단다.

찔레꽃이 들판 여기저기 안 핀 곳이 없는 이유는 그렇게 찔레가 동생과 부모를 찾아다녔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찔레의 가시는 무엇이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는데 "우리 엄마, 우리 동생을 본 적이 있나요?"하고 애타게 물어보는 찔레의 마음이 가시로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김민수

찔레꽃에 관한 이야기나 문학작품들은 가만히 보면 어떤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찔레의 꽃말도 '고독'입니다. '주의가 깊다'는 꽃말도 있는데 아마도 동생과 부모님을 주의 깊게 찾아다니던 찔레의 아픔을 바탕에 깔고 있는 꽃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찔레를 볼 때에는 여느 꽃들을 볼 때보다 엄숙해 지고, 마음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민수

해가 막 떠오를 무렵 보리밭 돌담에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찔레꽃들을 담았습니다. 찔레는 끊임없이 기댈 곳만 있으면 기대어 하늘로 향하는 꽃입니다. 찔레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겠지요. 까치발을 들고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바라보면 그토록 애타게 찾는 동생과 부모님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찔레의 마음을….

김민수

찔레 중에 붉은 찔레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확인 할 수는 없었고, 단지 몽우리는 분홍빛이 완연하고 피어나면 은은한 분홍빛을 띠다가 이내 하얀 찔레가 되는 찔레는 만났습니다. 하얀 눈송이처럼 피어난 찔레꽃도 빨간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빨간 열매를 달고 온 겨울을 나기도 합니다. 찔레꽃이 반발했다 질 무렵이면 어느 새 계절은 여름일 것입니다.

김민수

욕심 같아선 봄이라는 계절을 붙잡아 두고 천천히 걸어가며 봄의 모든 속살들까지 보고 싶지만 천천히 가는 듯 하면서도 감히 그 자연의 발걸음을 좇아갈 수 없습니다. 올해는 하얀 찔레가 만발할 때 마음에 그 향기며 꽃을 마음껏 담아놓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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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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