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그제서야 어머니가 시큰둥한 이유를 깨달았다. 틀린 문제는 어머니의 예상 출제문제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그 문제의 답을 알고 있었는데 방정맞은 지우개 탓에 실수를 했다. 어머니는 단박에 그 상황마저도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거 엄마랑 같이 공부한 건데 왜 틀렸어? 다음엔 꼭 올백 맞아!”
그 때의 절망감이란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설레던 기쁨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머니는 단 한 문제의 실수를 추궁하고 계셨다.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칭찬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후, 나는 공부가 재미없어져 버렸다. 잘 했을 때조차 칭찬을 받지 못한다면 뭐 하러 공부할까. 어린 나는 시험이고 뭐고 다 지겨워져 버렸다.
며칠 전, 큰누나네 갔는데 초등학교 2학년 조카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무조건 조카를 칭찬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누나는 “함께 공부한 걸 틀려오면 얼마나 화나는 줄 알아?” 엄마의 입장을 강변했고, 어머니도 옆에서 “그건 안 해도 되는 실수를 자꾸 하는 네 성격을 고쳐보려고 한 거야!”라면서 내게 핀잔을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육문제에 있어서 교육을 받는 사람, 즉 교육의 수용자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교육의 방식은 수용자 입장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가 숨어있다고 해도 수용자에게 전해지지 못하는 ‘일방적인 선의’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