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떨이를 던진 선생님'을 추억하다

[태우의 뷰파인더 22] 선생님이 학교 교육의 희망이다 (1)

등록 2004.05.07 00:17수정 2004.05.0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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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심각한 교육현실에 관한 소식을 매스컴을 통해 접하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더 좋은 선생님과 더 좋은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이 있다고 위로를 해보지만 그래도 ‘답답증’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5년이 된 시점에서, 학교의 폐부가 더욱 곪고 있음을 느낀다.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 노래 가사처럼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기를 바라고만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 학교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교육이라는 미명’아래 공공연히 벌어졌다.

김태우
15년 전, 내가 다니던 남자 고등학교에는 학생의 성기(性器)를 마구 잡아당기고, 학업 성적의 우열을 기준으로 학생을 차별하는가 하면 저주에 가까운 욕설을 퍼붓고, 대걸레 자루를 휘둘렀던 선생님이 있었다.

따라서 학생들은 아픈 성기를 움켜쥐며 모욕감을 느껴야 했고, 공부를 못하는 것도 속상한 데 차별까지 당해야 했다. 또 구타와 저주에 가까운 욕설을 들으며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갛게 부어 오른 엉덩이를 비벼댔다.

당시,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소통 기준은 오직 단 하나, '성적과 진학'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로 소통을 할 때조차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는 비민주적이고, 수직적이며 일방적이었다.

선생님이 써주신 대학원서를 거부하는 아이들은 '제압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이 가야 할 대학을 고를 수 있는 당연한 권리마저 존중받지 못했다.


고3이었던 우리 반엔 전국 1, 2등을 다투던 수재가 있었다(전교 1, 2등이 아니라 전국 1, 2등이라는 점을 주목해주기를). 그의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고, 그는 서울대 법대를 지원했다. 이에 학교가 그 수재에게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교장선생님이 그의 시험장에 직접 찾아가 친히 보온병에 타온 커피를 따라주며 독려했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였다.

"넌 우리 학교의 희망이다. 꼭 전국 1등을 차지해서 학교를 빛내다오!"
아마도 교장선생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으리라.


바로 교장 선생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그 수재의 학력고사에 얽힌 '비화(悲話)'가 있다. 평소 수재는 시험 문제를 다 풀어도 시험 시간이 절반 정도 남았다. 확실히 아무나 '전국 1등'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정작 학력고사 치르는 날, 수재의 시험지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OMR답안지에 절반 정도 답을 옮겨 적었는데, 시험 종료 벨이 울려버린 것이었다. 당황한 수재는 서둘러 답을 옮겨 적었다. 그나마 마음씨 좋은 감독관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분명 답을 다 옮겨 적었는데 답안지 한 칸이 비는 것이 아닌가! 시험이 끝나고 시험지로 채점을 해본 결과, 수재는 충분히 법대에 들어갈 성적을 얻었다. 하지만 잘못 기재한 답안지가 내내 마음에 걸려 20개 정도의 문제를 틀린 것으로 계산했고, 그래도 수재는 합격권이었다.

수재는 담임선생님께 자신의 실수를 순순히 고백했다. 자신은 법대를 고수할 거라는 의사표시와 함께. 담임 선생님도 수재의 뜻을 존중해주었다(당시 학력고사는 선 시험, 후 지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서울대 법대는 불합격, 2지망으로 적은 국제경영학과는 합격이었다. 수재는 뜻밖의 결과에 낙담했고, 후기 시험을 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몹시 화를 냈다. '법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서울대'가 중요하다는 게 교장 선생님의 주장이었다. 세상이 얼마나 '학력과 학연'을 따지는데, 그토록 뛰어난 성적을 가지고 서울대를 포기하느냐는 것. 교장 선생님으로서는 수재의 결정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인 듯했다. 교장선생님은 수재에게 법대를 포기할 것을 강력하게 종용했다.

하지만 수재는 교장 선생님의 강요에 굴하지 않았다. 자신의 꿈은 법대에 가서 법조인이 되는 것이지, 서울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교장 선생님은 매일 수재를 교장실로 불렀다. 서울대 등록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날 사건이 일어났다.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 그리고 수재는 교장실에 모였다. 서로 고성이 오고 갔다. 교장선생님은 수재를 달래보기도 하고, 야단을 쳐보기도 했지만 수재의 단호한 의지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담임 선생님은 수재에게 교장실에서 나가 있으라고 말했다. 수재는 교장실 밖에서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벌이는 말다툼을 들어야 했다.

잠시 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교장실에서 나와 수재에게 말했다.

"됐어. 이제, 네가 가고 싶어하는 대학 가.”

정확히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담임 선생님은 교장선생님 앞에서 재떨이를 던지면서까지 수재의 뜻을 관철시켰다고 한다.

"왜 학생이 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보내려고 하십니까! 그게 서울대이건, 어디이건 간에 그건 저 아이의 의지대로 정하는 겁니다. 게다가 성적으로 보더라도 저 애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권위를 들먹이며 담임 선생님을 제압하려고 했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재떨이를 던지며 자신의 의사를 피력했을 테고….

그로 인해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의 관계는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 그건 졸업식장에서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수재는 자신의 뜻대로 서울대에 진학하지 않고 후기대 법대를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 에피소드가 표본적인 이야기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선생님이 재떨이를 던진 행위도 칭찬 받을 만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생의 의사를 무시하는 학교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인 것만은 분명하다.

좋은 선생님은 '학생의 의사를 존중하는 선생님'일 것이다. 남들에게 존중받지 못한 학생이라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흔히 '학생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 마디 더 보태련다. '좋은 선생님은 학생의 희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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