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시는 바보', 효천 스님

전남 함평서 야생차 가꾸며 살아가는 스님을 만나다

등록 2004.05.05 15:18수정 2004.05.1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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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손은 누구나 가졌지만 사람마다 다르다.

손은 누구나 가졌지만 사람마다 다르다. ⓒ 나의승

a 전남 함평 야산에서 야생차를 일구는 효천 스님.

전남 함평 야산에서 야생차를 일구는 효천 스님. ⓒ 나의승

전라남도 함평에서 '차'를 만들고 있는 '효천'스님을 만났다. 대개 스님과 인사 나눌 때는 합장을 한다. 그렇지만 생략하고 덥석 잡은 스님의 손은, 굳은살 투성이에 잔뼈가 느껴진다.

"손을 사진 찍어도 될까요?"
"왜요?"
"스님 손이 예뻐서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노동자의 손이었다. '수도하는 사람의 손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짧게나마 했던 순간이었다. 효천 스님의 손은 굳은살과 차를 덖느라 그랬는지 짙게 찻물이 배어 있었다. 또 지문은 상당 부분 마모되어 있었다. 자연인의 손을 보고 마음이 편치 못하다.

스님은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오후 4시가 될 때까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비탈의 야생 차밭에서 보자기를 앞치마처럼 두르고 찻잎을 따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전라남도 서해안의 함평, 산들은 가장 큰 산인 기산을 비롯해서 해발 300미터를 넘지 못한다).

늦은 오후, 집에 돌아오면 차잎들이 혹시나 잘못될까 두려워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차를 볶는 솥에 불을 지피고 물로 닦아낸 다음에 차를 덖어 낸다. 그러고 나면 작은 오두막 마당에는 어느새 어둠이 가득하다. '도대체 식사는 언제하나?', '이렇게 고생스럽게 차를 만드는데, 사람들은 이 정성을 알기나 할까?' 등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함평에서 차가 나오나?'라고 질문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함평에는 이미 '야생차 보존회'도 조직돼 있다. 효천 스님이 만드는 차는 '녹차', '황차', '떡차' 세 가지 종류이다.

"황차는 무엇입니까?"
"홍차, 청차, 황차 등의 차가 그렇듯, 차의 색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이 황차는 특히 '나비 황차'라고 이름하셨는데, 이유가 있다면?"
"언젠가 중국에서 차를 담아놓은 잔에 나비가 날아와 앉는 것을 본 일이 있어요.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만든 차의 최고 경지겠다, 싶었지요. 게다가 마침 함평에 와보니 나비축제와 더불어 야생차들이 좋고, 해서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스님이 만든 황차는 맛이 부드럽고, 착향을 하지 않아도 연한 과일향이 느껴졌다.

"정말로 나비가 날아와 앉게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해 봐야지요" 하면서 웃기만 하는 효천 스님의 얼굴에서 '차'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같은 것이 묻어 났다.


언제나 4월∼5월이면, 남녘의 꽃들과 더불어 햇차 소식은 차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함평의 '나비 황차'는 차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또 하나의 명차로 기록될 것만 같다.

"함평 천지 늙은 몸이 고향 광주를 보랴 허고…"라고 시작되는 '호남가'로 유명한 전라도 함평. 이곳의 '나비축제'는 이미 유명하다. 이제는 '나비 황차'까지 가세해 그 고장의 유명세를 높이고자 한다.

a 차를 볶는 쇠 솥을 처음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차를 볶는 쇠 솥을 처음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 나의승

a 어떤 사람들은 이미 버렸을 등산화, 그리고 면장갑은 스님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버렸을 등산화, 그리고 면장갑은 스님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 나의승

스님이 세 들어 살고 있는 대동면 서호리 작은 한옥, 방문 앞에서 바닥이 거의 닳아 없어진 등산화 한 켤레와 면 장갑 그리고 장화를 발견했다. 그것들에게서 스님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고생스러운데 왜 이 일을 하나요? 또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그런 거 묻지 마세요. 좋아서 하는 사람한테 그런 거 물으면 안되지요. 차나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옛 선사들이 왜 차나무를 가꾸고,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아요."

그는 차가 그저 좋아서 차를 가꾸고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게 취미인지 직업인지 물어보는 것도 실례가 될 것 같다. "취미가 직업이 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했다는 '루소'의 말도 효천 스님에게는 의미가 없다.

<樂記(악기)>라는 옛 책에,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났다. 마음은 사물로부터 움직이게 된 것이다. 마음이 사물로부터 감응하면, 움직이게 되는데…"하는 대목이 있다. 효천 스님은 아마도 자연과 '차나무'에 감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악기>에서 또 한 대목을 빌어 본다.

"음악은 조화가 지극해야 하고, 예의는 온순함이 지극해야 한다. 예의는 적극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고, 음악은 조화를 유지하며, 적당히 억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중략) 예의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한다는 것과 음악에서 조화를 유지하여 적당히 억제한다는 것은 그 뜻이 같다."

내 생각에, 그는 자연에 대한 예의도 실천하는 것 같다. 스님이 짓고 있는 초가집은 15평을 넘지 않으며, 목공소에서 사온 비싼 나무도 없다. 그 땅의 그 산에서 베온 나무와 흙으로 짓고 있다. 자연과 거슬릴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공간은 '제다 시설'로 쓰인다.

집을 함부로 짓는 한국의 모든 건축가들은 그의 마음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보다 더 크게 지을 수 있다해도 그렇게 하지 않는 '빈마음'과 '온순함', '조화'와 '억제' 그리고 '예의 바른 불편함'을….

누군가 "또 자아도취 할거야?"라고 말한다 해도, 나는 감히 말한다. 한국 최고의 건축물 '초가집'과 한국의 세계적인 '차 문화'가 남녘에 천년 넘게 존재했었음을. 그리고 효천 스님과 같은 사람들을 통해 아직 면면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말이다.

이 다원의 이름은 '끽다치(喫茶痴)'라 했다. '차를 마시는 바보'라는 뜻이다. 이렇게 자기를 낮추는 전통은 아직도 우리들의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a 효천 스님이 짖고 있는 초가.

효천 스님이 짖고 있는 초가. ⓒ 나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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