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의 발톱을 닮은 '매발톱'

내게로 다가온 꽃들(49)

등록 2004.05.07 15:25수정 2004.05.0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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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꽃 이름 중에는 동물들의 이름이 붙은 것들이 많습니다. 이미 소개해 드린 새끼노루귀, 개구리발톱, 제비꽃 외에도 강아지풀, 개미자리, 토끼풀, 괭이눈, 괭이밥, 뱀딸기, 두루미꽃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름마다 각기 사연이 있고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매발톱꽃 역시도 꽃의 뒷부분이 매의 발톱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조금 무섭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꼬부라져서 앙칼진 매의 발톱처럼 보이는 그 곳에 달콤한 꿀을 담고 있다고 하니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김민수
매발톱꽃은 전국의 산야에서 자라는 꽃이라는데 아직 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아직 자생지에서는 만나질 못했습니다. 화원에서 만난 매발톱꽃의 색은 가지각색이었는데 교잡이 쉽게 일어나는 특성으로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색으로 어우러진 매발톱꽃의 정원을 떠올려봅니다.


유럽의 전설에 의하면 꽃잎을 두 손에 문질러 바르면 대단한 용기가 솟아난다고 합니다. 그러니 유럽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은 이 꽃을 참 좋아했을 것도 같습니다. 단아한 모양의 꽃임에도 이름으로 인해서 무서운 느낌을 주는 꽃, 더군다나 용기가 솟아나게 한다니 힘이 넘치는 꽃 같습니다. 그렇게 남에게도 용기를 주는 꽃이니 튼튼해서 어떤 정원에서나 잘 자란다고 합니다.

김민수
'하늘매발톱'이라는 꽃이 있고,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매발톱'꽃은 구별을 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도감에 의하면 하늘매발톱꽃은 매발톱꽃과 거의 비슷하지만 키가 작고 꽃은 더 크다고 합니다. 자생지는 백두산이 있는 북부지방의 고산지방이며 2,000미터 이상의 고원지대에서 무리 지어 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늘매발톱꽃을 자생지에서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매발톱꽃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는데 아직 정성을 더 드려야 내게로 다가올 것만 같습니다.

김민수
꽃의 모양을 살펴보면 살포시 고개를 숙인 형상입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꽃, 그리고 꽃 이름에 전해지는 신화까지 연결시켜보면 으쓱으쓱 자랑할 것이 많아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을 듯 한데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니 겸양의 미덕까지 골고루 갖춘 꽃이 아닐까요?

따스한 봄 노란 병아리들이 마당에서 삐약거리며 놀다가도 솔개가 하늘을 빙빙 돌기 시작하면 엄마 닭이 얼른 품어줍니다. 그러면 하늘을 빙빙 돌던 솔개가 몇 바퀴 돌다 지쳐 돌아가 버립니다. 솔개가 사라지면 또다시 조금 전의 그 긴장감은 없고 평온한 병아리들의 삐약거리는 소리가 예뻤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김민수
매발톱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렇게 꽉 잡으려는 마음으로 무엇을 잡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잡는다는 것은 그것을 소중한 것으로 여긴다는 의미요, 어쩌면 그것이 아니면 삶의 의미도 모두 상실한 만한 중요한 것이기에 애써 잡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애써 잡으려는 것이 헛된 것이라면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신에게만 그 불행이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니 저렇게 꽉 잡으려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어야겠습니다.

김민수
미국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소식들을 접하는 요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추악한 전쟁임이 밝혀진 마당에 그 미친 전쟁에 동참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번복할 수 없다고 하는 논리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어겨도 될 약속이 있는 법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사람을 살리는 일이냐 죽이는 일이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놓아버려야 될 것들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이들이 불쌍하기만 합니다. 월남전보다도 더 추악한 전쟁에 용병으로 갔다는 것이 우리 후손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로 남을 것인지 보이지 않나 봅니다.

"아빠는 그 때 기성세대였잖아요? 그런데 이라크 파병한다고 했을 때 뭐 했어요?"

그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추악한 전쟁에 동참하겠다던 그 약속 같은 것을 놓아버릴 수 있는 그런 용기는 기대하기 힘든 것인가요?

김민수
참으로 소중한 것, 그것은 곁에 있을 때에는 잘 모른다고 합니다. 없어졌을 때, 더 이상 곁에 둘 수 없을 때에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안다고 합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자기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인지 깨달아 가는 과정들 하나 하나가 작은 행복들의 단편들이고, 그 단편들이 모여 행복한 삶이라는 긴 장편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닐런지요. 이러한 것들은 아주 천천히 변하기에 잘 알지 못합니다. 마치 꽃몽우리가 활짝 피어난 순간에서야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말이죠.

김민수
사실 모든 사물은 운동하고 있고, 운동한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단지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기에 변하지 않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꽃은 피어납니다. 시간마다 카메라로 꽃을 담아 고속으로 돌리면 금방 피어나는 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단지 우리의 눈에 그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것이지 그들이 멈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이나 희망이나 이런 추상적인 것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행복, 희망이라는 그림자는 어쩌면 잡을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다지 불행이나 절망이라는 그림자와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길게 십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면 무엇을 붙잡고 살았는가에 따라서 그 삶이 달라져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김민수
매발톱꽃,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하는 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매의 발톱을 닮아, 또 유럽신화에 그 이파리를 두 손으로 비비면 용기가 솟는다 하고, 꽃도 예쁘니 교만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그 매서운 발톱 같은 그 곳에는 향기로운 꿀을 담고 있으니 참 재미있는 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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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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