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춤이 절로 나는 꽃 '갯장구채'

내게로 다가온 꽃들(51)

등록 2004.05.13 06:54수정 2004.05.1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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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식물 이름에 '갯'자가 붙은 것은 대부분 바다 근처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바다'는 식물이 자라기에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나 그 척박한 땅에서도 꽃은 여전히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장구채의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만 역시 제주의 검은 바위에서 고고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꽃을 피우는 갯장구채를 소개합니다.

김민수
꽃의 모양새를 보면 아시겠지만 '장구채'라는 이름은 꽃받침부분에도 꽃이 붙어만 준다면 영락없는 장구의 모양이요, 기다란 줄기는 장구에 딸려있는 채의 형상입니다. 저 장구채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까요? '덩덩 덩기닥 쿵딱!'하는 소리말고 잔잔한 파도소리와 때로는 사나운 폭풍 소리까지 담아서 휘몰아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민수
꽃을 찾아 떠난 여행을 하면 할수록 아쉬운 것은 우리 일상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며 아름다운 것인지 잘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 들꽃, 오름과 한라산, 나무에 이르기까지 너무 아름답고 예쁜 것들이 많은데, 우리 아이들은 학원과 학교를 오가기 바빠 그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들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그 작은 들꽃을 한 번 느긋하게 쳐다볼 수 있는 시간도 아이들에게는 없습니다.

'내가 발을 딛고 사는 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있구나!'

이런 감탄사가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올 때 고향을 사랑하게 되고, 그 아름다운 것들을 닮아갈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김민수
갯장구채는 흙 하나 없는 것 같아 보이는 바닷가 근처의 바위에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웁니다. 그 뿌리의 깊이가 얼마나 될지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지난해 들꽃 중에서 산야에 흔하디 흔한 솜방망이를 캐다 정원에 심었습니다. 올해 꽃대를 내는가 싶더니 멀쑥하게 커서 풍성한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원래 '솜방망이'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꽃방망이'가 돼버렸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꽃은 자연의 상태에서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피어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듯합니다. 목마름이 있고 때로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줄기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지만 그럼으로써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 들꽃들입니다.


김민수
화창한 날이면 평온한 바다를 바라보며 그 평온함을 배우고, 너른 바다의 마음을 담아 그 향기들을 품기 위해 갯장구채는 척박한 바다, 그 중에서도 흙 하나 없을 법한 바위 틈에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곳에서도 이렇게 화사하게 피어난 것을 보니 작은 꽃이지만 그 안에는 넓은 바다의 마음을 품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갯장구채는 말하는 듯합니다. 그가 품고 있는 바다, 그 바다는 어떤 바다일까요?

김민수
바다가 그리워 갯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저 바다의 근원으로부터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의 그 곡선을 따라
잔잔한 바람을 벗삼아 춤을 춰 보기도 합니다.

어떤 날 광풍이 불면
바다를 집어삼킬 듯한 파도를 따라
미친 듯 뿌리가 뽑혀나가도 좋을 듯
온 몸을 흔들어 보기도 합니다.

하루가 시작될 무렵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
해맞이를 하며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파도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햇살이 따가운 날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바람이 살가운 날에는 한껏 흐드러짐으로
늘 한 마음, 그리움으로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바다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기에
에메랄드빛 바다거나 검푸른 바다거나
잔잔한 바다 갈매기 끼룩 나는 바다거나
폭풍우 포효하는 바다거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운 마음으로
나의 님 바다를 한껏 껴안아봅니다.

-자작시 <갯장구채>


김민수
갯장구채는 석죽과의 꽃입니다. 석죽과는 줄기가 대나무처럼 곧게 뻗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갯장구채의 줄기는 과하지 않을 정도의 절제된 줄기를 가지고 있어서 부드럽습니다. 그 부드러운 채(줄기)로 그 예쁜 장구(꽃)를 치는데 어찌 천상의 소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과 갯바위에 나갔습니다. 바위 틈에서 자란 꽃들을 하나 둘 보여주면서 삶은 이렇게 진지한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아이들이 아직 아빠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그 의미를 다 알아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가 삶이 힘들 때면, 아스라히 갯바위에 핀 꽃을 보며 아빠가 이야기해 주었던 그 무언가를 떠올리며 역경을 꿋꿋하게 이겨나갈 것입니다.

김민수
바닷바람을 벗삼아 피는 꽃, 때로는 거센 풍랑이 그의 뿌리를 훔쳐갈 듯하지만 덤비지만, 그럴 때면 장구채는 온몸을 흔들며 그 두려움을 물리칠 것입니다.

들에 핀 꽃들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바다, 갯바위에서 뿌리를 내린 꽃들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성(聖)스럽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김민수
장구채는 궁채(궁글채)와 열채(가락채)가 있습니다. 실제 양손으로 장구를 치면 어깨춤이 절로 납니다. 갯장구채와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도 마음이 가벼워져 어깨춤이 절로 나는 것이 '참 흥겨운 꽃이구나' 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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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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