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한 방울이면 꽉 찰 '나도물통이'

내게로 다가온 꽃들(52)

등록 2004.05.14 16:44수정 2004.05.1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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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꽃은 아주 작은 쐐기풀과의 꽃 '나도물통이'라는 꽃입니다. 쐐기풀과의 꽃은 아주 작고, 작기에 옹기종기 모여있고, 화려하지 않아서 꽃이라고 하면 '저것도 꽃이야?'하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못생긴(?) 꽃들이 많습니다.

물통이꽃의 종류도 많은데 물통이, 모시물통이, 큰물통이, 산물통이, 북천물통이와 이번에 소개하는 나도물통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나마 나도물통이는 그래도 쐐기풀과에 속하는 꽃들 중에서는 참 예쁜 색을 담고 있는 꽃이랍니다.


이름이 물통이니 물을 좀 담고 있으려면 그 모양새가 컸으면 좋으련만 작디작은 그 꽃에 물을 담아보았자 이슬 한 방울 담기도 힘들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필요가 있고, 그 어떤 모양새로 인해서 이름이 붙여졌겠지요.

김민수

식물 이름에 '나도'나 '너도'라는 이름은 완전히 다른 분류군에 속하면서도 모양은 비슷한 경우에 붙여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도국수나무, 나도냉이, 나도바람꽃,나도송이풀, 나도개미자리 등등의 식물도 있고 너도고랭이, 너도바람꽃, 너도골무꽃이라는 식물도 있답니다.

'너도'와 '나도'라는 말이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나'와 '너'를 합하면 '우리'가 됩니다. 우리란 뭔가 통하는 것이니 '나만'이나 '너만'이라는 개인주의적인 이름이 아니라 개인주의를 넘어선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름 같아서 정겹게 느껴집니다.

김민수

나도물통이라는 꽃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올해 처음이었습니다. 식물도감을 보다보면 꽃이 예뻐서 꼭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 꽃도 있는데 도감상으로도 그리 예뻐 보이지 않았는지 꽃을 보고서야 도감을 확인하면서 나도물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난생 처음 만나는 꽃들을 보면 흥분이 되어 가슴이 콩딱콩딱 뛰기 마련인데 나도물통이는 '어, 이런 꽃도 있네!'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도물통이를 보면서 내 속에 들어있는 속물근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작은 것, 못생긴 것, 불경스러운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소중함을 찾는다고 하더니 아직 멀었구나 하는 자괴감 같은 것이 밀려왔습니다.

김민수

오름 분화구의 그늘진 곳에 무리를 지어 피어있는 나도물통이는 그늘진 땅에 한줌의 햇살처럼 울려 퍼지는 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작은 꽃에 담긴 물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땅에서 길은 물이어서 곤충들에게 생수와도 같은 존재일는지도 모르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니 이 작은 꽃 역시도 이 세상에 존재해야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김민수

기지개를 활짝 펴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한 것은 수술입니다. 다섯 개의 수술이 마치 사람이 큰 대자로 누워있는 듯한 형상입니다. 어디 한 군데 구김살 없이 꽃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입니다.

꽃향기에 취하고 푸른 하늘에 취하고 봄바람에 취해서 그냥 그렇게 하염없이 두 팔과 두 다리를 쫙 펴고 누워있는 것만 같습니다.


도감에도 꽃 이야기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아도 나도물통이에 관한 이야기는 짧기만 합니다. 그만큼 그 존재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야기니 꽃말이나 그에 대한 전설이나 시도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럴 때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면 그게 꽃말이 되고, 전설이 되고, 시가 되는 것인가요? 그렇게 구전되고 구전되다가 꽃에 관한 전설이 되는 것은 아닌지 상상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줄 꽃 이야기를 상상해 봅니다.

김민수

애들아, 이 작은 보라색 꽃은 나도물통이라는 꽃이란다.

아주 먼 옛날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의 이야기인데 하루는 하나님이 이런 저런 예쁜 꽃들을 만들고 계셨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쁜 꽃들만 만들면 그 꽃들이 얼마나 예쁜지 알 수가 없잖아. 그래서 못생긴 꽃들을 만들기로 하셨단다. 일단 색깔은 나뭇잎보다 조금 연하게 만들었고, 아주 작게 만들었단다.

그런데 너무 작아서 보이질 않는 거야. 그래서 같은 꽃들을 하나 둘 덧붙여 주었단다. 그러니 조금 나아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작았단다. 그래서 '하나, 둘. 셋…' 하며 그 작은 꽃들을 일일이 세어가며 달아주었는데도 여전히 작은 거야. 이래선 안되겠다 생각한 하나님은 그들보다 먼저 만든 꽃들에게 명령을 했단다.

"내가 만든 작은 꽃들에게 너희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한가지씩 주어라."

그러나 꽃들은 자기를 돋보이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숨겨두고 버리고 싶은 것들만 주었단다. 그래서 어떤 꽃들은 아예 작은데도 한 송이 달랑 피어있는 것도 있고, 어떤 꽃은 꽃 색깔도 아주 조금만 주어서 피어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꽃향기도 아주 조금만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향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이었어.

"모두 골고루 나누어주었느냐?"

"예."

하나님은 꽃들이 잘 자라라고 비를 내려 주시고, 하늘에는 무지개를 걸어 놓으셨단다. 그리고 꽃들이 목마를 때 마시라고 작은 물통들을 아주 작게 만들어 놓으셨단다.

꽃들은 자기들이 사용할 것이니 저마다 예쁘게 만들고 싶었단다. 그래서 예쁜 꽃 색깔을 나누어주었지. 특별히 빨간 꽃과 파란 꽃은 자기들이 쓸 물통에 색깔을 많이 나눠주어서 아주 예쁜 보라색물통이 되었단다.

어느 날 하나님은 작은 물통에 꽃들이 마실 맛있는 물을 담으셨단다. 그런데 그 중에 보라색물통은 너무 예뻐서 꽃인 줄 알고 그냥 지나치신 거야. 그 때 보라색물통이 소리를 쳤어.

"나도 물통인데요!"

하나님이 가만히 보니 물통치고는 제법 예쁜 거야. 그래서 그 보랏빛 물통을 꽃으로 만들어 주셨고, 그 꽃의 이름을 '나도물통이'라고 지어주셨어. 쐐기풀들 중에서는 제일 예쁜 꽃이기도 하지.


김민수

급조하느라 엉성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이 작은 꽃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있냐고 합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는 아예 모든 꽃들이 다 노래를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꽃들이 없듯이 꽃말 없는 꽃도, 꽃이야기가 없는 꽃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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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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