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27

천왕봉의 매미선녀 1

등록 2004.05.19 04:39수정 2004.05.1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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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종단과 수단, 산오뚝이는 새미선녀를 연기로 만들어버리고 나서, 역술서를 찾아 천왕봉으로 올라가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도 새미선녀가 사라진 후 반야봉에 있는 나무들이 매말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땅의 기운까지 온통 빨아들여버리는 수단 때문에 나무가 누렇게 말라들어가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이파리를 떨구고 지리산의 나무들의 하나 하나 누렇게 변해갈 때였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듯 죽어가는 나무 안에서 무언가 툭 튀어나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반야봉에 있는 나무에서 하나씩 튀어나언 것은 바로 산오뚝이였습니다.

모든 산오뚝이들이 전부 나쁜 호랑이들의 꼬임에 빠져서 그들의 사주를 받아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리산에는 나무 하나 하나, 바위 하나 하나 그들을 지켜주고 그 안에서 더불어 살고 있는 착하고 순수한 마음의 산오뚝이들이 아직도 살고 있었습니다.

죽어가고 있던 소나무 줄기에 눈망울이 반짝거리더니 자그마한 몸뚱아리가 툭 튀어나왔습니다.

"에구, 에구."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솔방울처럼 바닥을 데구르르 구르던 산오뚝이는 금방 반짝 일어나 말했습니다.


"무엇, 무엇, 왜, 왜."

산오뚝이들은 나무와 바위가 되어 살았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이야기할 일이 없어 말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나무와 바위를 돌보며 살던 산오뚝이들은 다른 친구들을 만나 말을 해야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계속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고 다니고 있는 산오뚝이를 보고는, 말라붙은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부엉이가 낮은 소리를 내어 그를 불렀습니다.

"여기, 여기."

부엉이의 몸이 줄기 아래로 축 쳐지는가 싶더니 꼬리가 달린 산오뚝이가 되었습니다. 산오뚝이들은 별다른 이름이 없었습니다. 사실 다른 산오뚝이들을 만날 일도 없었으니, 굳이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 듯합니다.

"너, 왜, 왜,"
"몰라, 몰라, 나무 죽어."
"빨리 빨리"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는 수풀 속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숨어있던 산오뚝이들이 하나 하나 그들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나무들이 갑자기 왜 죽기 시작한거야. 누구 아는 사람 있어?"
"그건 나도 몰라, 갑자기 나무 줄기에 벌레들이 득실득실 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밖으로 나왔어."
"나무들이 꼭 돌덩어리가 된 것 같애, 다 죽었어."

그들이 그렇게 웅성웅성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저 언덕 너머에서 다른 산오뚝이가 나타났습니다. 꼬리를 우아하게 흔들면서, 걸어오는 모습은 마치 도깨비라도 된 것 같았습니다. 그 산오뚝이는 다른 산오뚝이들과 달리 덩치가 많이 컸지만, 바위 두어 개를 붙혀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볼품 없는 몸뚱아리는 다른 산오뚝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 덩치 큰 놈이 말했습니다.

"여보게들, 고생이 어떠한가?"

다른 산오뚝이들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다른 산오뚝이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덩치 큰 놈 역시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나무들이 매말라가서 살기가 힘들어지지 않았수다? 내 다 아외다. 나무들이 없이 사는 산오뚝이들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을 거외다. 어디 갈 곳이라고 있네다? 바위 속에 들어가 살기에는 이미 늦었을텐데, 바위 속에는 이미 한놈씩 다른 산오뚝이들이 들어가 살고 있을게고 말이외다"

무리 안에 모여있는 한 산오뚝이가 말했습니다.

"나무들이 마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이유는 너희들이 알 필요 없으외다. 안다고 해도 그 나무들이 다시 살아날 방법은 없우다. 다른 나무 속에 살고 있는 산오뚝이의 자리를 빼앗아 살든지, 아니면 우리를 따라오는 수 밖에 없을 거외다."
“네가 어디로 가는데?”
“너희들이 살고 있는 이곳보다 훨씬 좋은 곳이외다. 맨날 나무에 앉아서 살아야할 필요도 없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면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있수다.”

그 말은 듣던 다른 한 산오뚝이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도깨비가 되고 싶다. 도깨비가 되어야 우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있다.”

덩치큰 산오뚝이가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세계에서는 그 도깨비란 놈들이 전부외다. 도깨비들은 우리 산오뚝이들을 제대로 된 도깨비로 만들어주지 않을 거외다. 그들은 우리를 영원토록 부려먹기만 할거외다. 도깨비가 되더라도 우리는 다른 도깨비들과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외다.”

그때 여기저기서 "우우"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거짓말 마라. 도깨비들은 우리를 부려먹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과 똑같은 도깨비가 된다.”
“우리는 모두 도깨비가 되고 싶다.”

덩치큰 도깨비는 등에 달려있던 날개를 갑자기 확 펼쳤습니다. 주변에 모여있는 산오뚝이들이 놀란듯 움찔했습니다.

“산오뚝이는 산오뚝이일 뿐이외다. 우리는 산오뚝이로서 이 산을 지배하고 여기서 살 거외다……. 곧 도깨비들도 우리 세상에 들어오게 될 거외다.”

날개를 단 산오뚝이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모여있던 산오뚝이들은 웅성거리며 덩치 큰 놈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면…. 더 좋은 세계를 보여줄 거외다. 이제 저 말라버리는 나무들은 아무 쓸모가 없수다.”

그때 그 뒤에서 앙칼진 소리가 들여왔습니다.

“이 발칙한 산오뚝이 녀셕. 착하게 사는 우리 산의 산오뚝이들은 왜 꼬득이는 게냐?”

매미 선녀였습니다. 하늘거리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매미 선녀가 들고 있는 선녀부채를 보자 그 덩치 큰 산오뚝이는 두려운 듯 뒷걸음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네가 살고 있는 곳의 산오뚝이들의 힘이 얼마나 센지 한 번 보여주렴. 고작 이 부채 쪼가리 하나가 두려워서 뒷걸음 치는 주제에…. 저 날개랑 같이 메뚜리를 만들어주랴??”

모여있던 산오뚝이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의 뒤를 따라야 할지 몰랐습니다. 덩치 큰 산오뚝이 뒤에 몰려있던 놈들은 선녀가 나타나자 다시 선녀 쪽으로 쪼르르 달려왔습니다. 덩치 큰 산오뚝이가 말했습니다.

“얼른 부채를 치우라, 얼른 치우라.”

선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부채를 펄럭이면서 그의 눈앞에 디밀었습니다. 부채에서 나오는 바람을 막으려고 팔을 휘젖던 산오뚝이는 돌덩이가 되어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산오뚝이들은 선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매미.”

“매미. 매미….”

이 산에 살고 있는 산오뚝이들은 그 선녀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씨가 여리고 순진한 산오뚝이들은 누가 앞장서서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따라갈만큼 순진하기만 했습니다. 하마터면 천왕봉에 사는 산오뚝이들이 전부 붉은눈 호랑이의 시중을 들기 위해 홀딱 넘어갈 판이었습니다. 선녀는 아찔한 기분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얘들아… 나 좀 도와줘… 나 좀 도와줘… 호종단이 오고 있어….”

매미 선녀가 힘 없이 내뱉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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