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송이의 소중함을 아는 '쥐오줌풀'

내게로 다가온 꽃들(54)

등록 2004.05.19 10:21수정 2004.05.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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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쥐오줌풀은 뿌리에서 쥐의 오줌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름이 붙은 내력을 하나 둘 알아가다 보면 감탄하고 또 감탄하게 됩니다. 그 이름들은 이파리나 열매의 모양, 쓰임새, 냄새에 따라서 식물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으로 붙여집니다.

쥐오줌풀은 작년에는 고사리를 꺾으러 나간 길에 만났습니다. 올해 다시 그 자리에 가 보았지만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서운하긴 했지만 올해는 그렇게 못보고 지나치나 했습니다.


김민수
김춘수 시인의 <쥐오줌풀>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하느님,
나보다 먼저 가신 하느님,
오늘 해질녘
다시 한 번 눈 떴다 눈 감는
하느님,
저만치 신발 두 짝 가지런히 벗어놓고
어쩌노 멱감은 까치처럼
맨발로 울고 가신
하느님, 그
하느님


김민수
느닷없이 쥐오줌풀을 보고 '하느님, 나보다 먼저 가신 하느님'을 떠올린 시인의 깊은 속내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맨발로 울고 가신'이라는 대목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겪은 십자가의 고난을 떠올리게 됩니다.

올해 만나지 못할 줄로 알았던 쥐오줌풀을 만난 것은 5·18 광주항쟁 24주년을 맞이한 날이었습니다. 5·18이어서 일까요. 김춘수 시인의 '맨발로 울고 가신 하느님'이라는 싯구가 저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김민수
마타리과의 꽃들이 그러하듯 쥐오줌풀도 작은 꽃들이 모여 큰 꽃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송이 한송이는 비록 작지만 그렇게 작은 것들이 모이고 또 모여서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큰 꽃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한사람 한사람의 작은 목소리가 모여 큰 함성을 만들어낸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 함성을 낸 사람들은 무자비한 총칼에 검은 피를 뚝뚝 흘리며 사랑하는 가족과 이 세상과 이별해야만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기나긴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기나긴 밤이었거든, 투쟁의 밤이었거든, 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거든…'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며 소리 죽여 불렀던 노래들이 있습니다.

김민수
성서는 한 사람의 소중함이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온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이 힘센 자들에 의해 유린당하는 현실은 항상 있었습니다.

작은 꽃 한송이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쥐오줌풀은 그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듯합니다.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피어난 쥐오줌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김민수
우리가 만나는 것들 중에 허투로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작은 미물도 다 이유가 있어 존재합니다. 행복이라는 것도 일상 속의 작은 조각들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행복이다!"하고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큰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면 행복은 저만치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만나는 것을 소중히 여기다 보면 행복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게 내 곁에 있습니다.

김민수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담기 위해 초점을 맞추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호흡을 멈추고 초점을 맞춘 순간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꽃에 앉았습니다. '순간의 포착'이라고 얼른 두어 컷을 담았습니다.

지난 해부터 꽃 사진을 수없이 찍어 왔지만 이렇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이에 나비가 날아온 적은 처음입니다. 나비가 앉아 있는 꽃에 살금살금 다가가 찍은 적은 있었어도 말입니다. 나비는 저에게 포즈를 취해 주고는 또 다른 꽃을 찾아갑니다. 그 나비는 설레는 작은 선물이었습니다.

김민수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참 행복해집니다. 그들은 입이 없어도 말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입으로 말을 해도 공허한 대화를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꽃들은 입은 없지만 수많은 소리들을 들려줍니다.

물론 그 소리는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오늘 만난 나비와 바람,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앞으로 피어날 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멋드러진 합창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아름다움은 작은 꽃 한송이를 소중하게 여김으로써 가능했던 것입니다.

김민수


<내게로 다가온 꽃들> 고료를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김보미 학생을 지원했습니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의기사 고료는 전액 불우 어린이를 돕는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그림을 그려주시는 이선희 선생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51회까지의 기금 93만원을 5월 18일 백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김보미(남제주군 사계리) 학생에게 전달했습니다.

이선희 선생님도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셔서 수술비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지만 작은 힘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3차 수술을 마치고 다음 주부터는 통원 치료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합니다. 아직 무균실에 있는 관계로 만나진 못했지만 조만간 통원 치료가 가능해지면 직접 만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김보미 학생이 출석하고 있는 사계교회(담임목사 이형우)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주셨고 현재로서는 수술 경과도 좋아서 완치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52회차부터 100회까지의 고료는 이선희 선생님이 도울 곳을 물색하기로 했습니다. 부족한 글들을 잘 게재해 주신 <오마이뉴스>에 감사를 드리고 꽃 여행을 지속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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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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