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33

서천꽃밭의 화완포 2

등록 2004.06.01 05:02수정 2004.06.0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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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기 속의 얼굴이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냐?”


진달래 언니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습니다.

“저는 백두산 산신님을 도와드리고 있는 진달랩니다. 설마 절 잊지는 않으셨겠죠?”

얼굴이 말했습니다.
“잊지는 않았다만 요즘 세상이 워낙 뒤숭숭해서, 혹시 너희들 산오뚝이놈들은 아니겠지?”

진달래 선녀는 뒤돌아서더니 엉덩이를 들썩였습니다.

“한번 보셔요, 어디에 꼬리가 있나.”


“그래, 맞다 꼬리가 없구나. 그런데 저 꼬마녀석은…. .”

“전 착한 바리인데요, 저도 산오뚝이가 아녜요, 저도 꼬리가 없어요.”


바리도 진달래 선녀가 한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이며 말했습니다.

연기 속의 얼굴이 말했습니다.

“그래, 그래, 알았다, 너희들이 산오뚝이들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함부로 이 문을 열어줄 수가 없구나. 진달래, 준비는 해왔겠지?”
“물론이죠.”

진달래 언니는 소매에서 금빛 나는 방울을 꺼내어 하늘로 높이 던졌습니다. 딸랑딸랑 울리면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던 방울은 공중에서 반짝하더니 무지개를 만들었습니다.

길다란 양탄자처럼 공중에서 펄럭이던 무지개가 담벼락 가운데를 비추자 그 높게만 보이던 절벽문 한가운데 길다랗고 하얀 줄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줄이 아니라 절벽문 가운데 틈이 생겨 그 안에서 밝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문이 열리는 소리는 바리가 서 있는 산이 전부 울릴 정도였지만 그다지 시끄럽거나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절벽문이 조금씩 열리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던 바리에게 진달래 언니가 말했습니다.

“산오뚝이들이 장수도깨비의 인장을 흉내 내서 가지고 오는 일이 많아서 상제님의 무지개로만 이 문을 열 수 있단다.”

그 하얀 줄과 같던 절벽문이 진달래 선녀와 바리 앞에서 마침내 환하게 열렸습니다.

그 절벽문 안에 있는 꽃밭이 환히 보였습니다.

“우와!”

자기도 모르게 함성이 터져나올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눈이 닿는 곳마다 전혀 보지 못한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있었습니다. 나비도 없었습니다. 벌도 날아다니지 않았지만, 꽃들은 제각각 아름다운 빛을 발하면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바리와 진달래 선녀가 서천 꽃밭에 들어섰습니다. 눈이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들어찬 꽃밭은 세 가지 색깔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바리가 서있는 발 옆으로는 진달래 색깔처럼 붉게 빛나고 있는 곳이 있었고, 저 멀리는 함박눈이 내린 것처럼 온통 하얀 꽃들로 뒤덮힌 곳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환하게 빛나는 꽃들이 저 건너편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습니다. 그 꽃들 때문에 그 꽃밭이 환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리고 그 꽃들 사이로는 바쁘게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곳은 삼신할머니가 새로운 생명을 점지할 때 필요한 꽃들을 기르는 곳이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전부 이 세 가지 꽃을 가지고 태어나지. 여기 붉게 빛나는 꽃은 살오름꽃인데, 저 꽃으로 사람의 살과 피를 만들어내지. 그리고 저기 하얀 꽃은 뼈오름꽃인데, 사람들이 튼튼히 걸을 수 있도록 뼈를 만들어 주는 꽃이야.”

바리는 진달래 선녀를 따라서 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꽃밭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럼, 저 꽃들이 있으면 사람을 만들 수 있어요?”

“그래, 저기서 필요한 것을 뽑아다가 삼신할머니의 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하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금새 만들 수 있어. 나쁜 호랑이들이 여기에 들어와서 살오름꽃이랑 뼈오름꽃을 많이 훔쳐갔단다. 그래서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아다가 자기들의 몸을 만들어 붙이고 있었어. 네 덕분에 살오름꽃과 뼈오름꽃이 있어도 버드나무 가지가 없어서 몸을 만들어낼 수 없으니까, 이제 더 이상 새로운 호랑이들을 만들어내지 못할 거야.”

바리는 왠지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그럼, 저기 노랗게 빛나는 꽃들은 뭐에요? 꼭 금으로 만든 꽃들 같아.”
“저것은, 숨오름꽃이란다. 살과 뼈가 있어도 숨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생명이 태어날 수 없어.”

“호랑이들이 저 꽃들도 훔쳐갔나요?”
“아냐, 저 꽃들은 안 훔쳐갔어. 아마 호랑이들은 납치해온 사람들의 영혼에 그냥 몸만 덮어씌우기 위해 꽃들이 필요했던 것 같애, 그러니 숨오름꽃은 필요가 없었나보지. 아니면 이 꽃밭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미쳐 들어오지 못했을 수도 있고.”

꽃밭 사이 사이로 갑옷을 입은 커다란 장수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턱수염이 덥수록하게 자란 얼굴에, 덩치도 커다랗고 철갑으로 된 것 같은 무거워보이는 옷을 입고 있어서, 언뜻 무서운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바리를 볼 때마다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저분들을 꽃감관들이셔. 이곳의 꽃들을 보호하고 계시지.”
“예….”

숨오름꽃밭에 다가서자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더 잘 보였습니다. 전부다 색동옷을 입고 들어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리로 만든 것 같은 맑고 투명한 칼로 숨오름꽃을 자르면, 도깨비 같은 사람들이 수레에 차곡차곡 담아서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진달래 언니가 말했습니다.

“바리야. 저기… 저 가운데 계신 분께 인사 드리고 오렴.”

바리가 물었습니다.

“저분이 누군데요.”
“가보면 알아.”

진달래 언니는 웃으면서 등을 떠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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