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59

세상을 바꾸는 것

등록 2004.06.03 17:21수정 2004.06.0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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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와 타협하고 싶지 않다고? 허허참! 웃기는 녀석이로세."

옴 땡추는 기생들을 모두 내보내 버린 후 인상을 찌푸리며 술의 쓴맛을 음미했다.


"거 너무 마음에 두지 마소서. 원래 저런 놈을 포교로 두려 한 것은 아닌데 어떻게 일이 꼬여 버렸지 뭡니까? 그나저나 선달님은 요사이 재미가 좋으시오? 중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짧은 머리를 보니 정말이었나 보오."

심지일의 말에 옴 땡추는 쓸데없는 소리 말라는 듯 술잔을 건네어 가득 따라 주었다. 심지일은 조금 주저하며 술잔에 약간 입만 갖다 댄 채 표정을 진지하게 보이려 애쓰며 제 할말을 계속했다.

"선달님께서는 요즘 불편한 점은 없는지요? 시전을 둘러보니 종이 값이 곧 뛸 듯한데…. 어디 돈이 있어야 사 모으던지 할텐데 말이오."

돈을 밝히는 심지일의 속내를 아는 옴 땡추인지라 속으로는 가당찮았지만 아직은 이용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지라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표하지는 않았다.

"이제 그런 장사는 더 하지 않을 걸세. 그건 그렇고 자네…. 포도청 사람들 동태파악은 제대로 하고 있나?"


심지일은 잠시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말끝을 어물거리기 시작했다.

"별 다른 일은 없사옵니다만…."


"별 다른 일이 없다? 오래 전 장포교일도 그렇고…. 이번에는 어찌하여 싸전 상인이 포도청에서 죽어나간 일이 공공연히 귀에 들려오는가!"

"무, 무슨 말씀이신지…."

"누군가 입막음을 하려고 사람을 죽여 보낸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네! 내 그 일로 막대한 재물을 들여 죽은 싸전 상인의 가족들에게 조용히 할 것을 당부하지 않았나!"

심지일은 마른 침을 삼키며 변명했다.

"그야 사람이 죽어나간 일이오니 헛된 소문도 도는 법이 아니옵니까."

"헛된 소문이라! 그런데 어찌 수은(水銀)을 써 독살했다는 구체적인 정황까지 발설 되냔 말일세!"

심지일은 울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건 정녕 모르는 일이옵니다. 게다가 그 일은 저도 모르는 가운데 저도 모르는 이가 꾸민 일이니 오히려 제가 선달님께 야속해할 일이옵니다. 제게 맡겼다면 문초를 하는 중에 나졸을 매수해 단매에 때려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옵니다."

"됐네! 그리하면 호조에 대한 말을 포도대장이 들었을 터 아닌가! 이제 그만하면 자네가 포도청에서 뭘 하고 다니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쯤은 눈치채었겠지!"

심지일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그 말인 즉, 옴 땡추가 할 수만 있다면 심지일 정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 수 있다는 협박이나 마찬가지인 소리였다.

"하지만 자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네만."

"무슨 일이든 말만 해 주십시오."

심지일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의 유들유들한 태도는 사라지고 없었다. 옴 땡추는 술 한잔을 부어 마신 후 심지일을 노려보며 말했다.

"골치 아픈 놈이 한양으로 새어 들어왔다는 얘기가 있네. 그 놈을 잡아서 데려오게나."

"어떤 놈인지…."

"자네 '달 그림자'란 도둑을 아나?"

심지일은 곰곰이 달 그림자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과거에 그 흔적마저도 잡지 못해 포도청 종사관과 포교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던 도둑이 달 그림자였다.

"옛날 일이지만 당연히 알고 있사옵니다. 그 놈을 잡는 일이옵니까?"

"포도청에서는 그 놈도 잡긴 잡아야겠지. 그런데 그 놈은 이미 나처럼 중 행세를 하는 터라 사대문 안에는 들어와 있지 않은 모양일세. 그 놈이 데리고 다니는 끔적이라는 젊은 놈이 있는데 요사이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모양일세. 나로서는 그 놈들이 뭘 원하는 지 알 수 없으니 일단 잡아서 얘기를 들어보는 수밖에 없네."

"그런 일이라면 선달님이 처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눈치 볼 곳이 많은 포도청에서 어찌 하오리까."

심지일이 골치 아픈 일이라는 듯 심드렁한 투로 대답하자 옴 땡추는 화를 벌컥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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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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