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꽃을 피우는 '개나리'

내게로 다가온 꽃들(61)

등록 2004.06.19 11:26수정 2004.06.1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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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아주 오래된 사진첩을 보다가 어떤 사진에 눈이 멈추고 빙그레 웃음 짓던 경험을 하신 적 있으시죠? 화첩은 아니지만 그동안 만났던 꽃들을 정리하면서 개나리를 만났습니다. 이미 꽃은 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 활짝 웃는 모습을 다시 보니 그 따스한 봄날의 기운이 방안에 그득하게 퍼지는 것 같습니다.

개나리의 꽃말은 '희망'이랍니다. 그래서 개나리가 그렇게 억척스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른 봄 가지를 잘라 땅에 심으면 이내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존재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한겨울 꽃눈이 막 나왔을 때 가지를 잘라 따스한 방안의 화병에 꽂아 두면 일주일이 되지 않아 노란 꽃망울을 터트립니다.


자신의 삶에서 잘려 나왔어도 끝내 꽃을 피우고야 마는 개나리의 꽃말이 '희망'이라는 것은 참 잘 어울립니다.

김민수
'나리'는 '나으리'의 줄임말입니다. '나으리'는 높은 존재를 상징하지만 그 앞에 '개'자가 붙으니 불경스러운 이름이 되어 버렸습니다. 꽃 모양이 나리과의 꽃들과 비슷하나 물푸레과에 속하니 아마도 꽃에 중점을 두어 '개나리'라는 이름을 얻었을 것입니다.

제주에서는 개나리가 필 무렵 유채가 피어납니다. 그래서 개나리는 노란 유채꽃의 행렬 속에서 그냥 지나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 보아 주지 않아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같은 일을 해도 누가 인정해 주고 알아 주면 힘이 납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기의 소임에 충실해도 남들이 알아 주지 않으면 이내 지치게 되는 것이 사람입니다. 남들이 알아 주지 않아도 소임을 기쁘게 감당하는 사람은 아마도 득도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알아 주지 못할지언정 얼토당토하지 않는 비난의 말들을 쏟아 놓으면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맙니다.

개나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꽃이 그 꽃 같아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도 부족해서 이름까지도 별로 예쁘지 않지만 개나리는 그런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김민수
개나리의 또 다른 꽃말이 있는데 '나의 사랑은 당신보다 깊습니다'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깊이 있게,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넓게,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높게 사랑한다는 것이니 아무리 사랑하고 또 사랑해도 그의 사랑은 그보다 더 큰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절대 타자가 가진 사랑일 것입니다. 개나리를 통해서 신의 깊은 사랑을 보게 됩니다.

'희망' '나의 사랑은 당신보다 깊습니다'는 꽃말을 가진 개나리를 이렇게 뒤늦게 소개하는 것은 다시 '희망'과 '사랑의 깊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대인 듯해서입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약자는 자기 방어라는 이름으로, 강자는 평화라는 가면을 쓰고 폭력을 행사하며 우리들에게서 희망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빼앗은 희망, 그 희망에 대한 사랑이 당신들보다 더 깊다"고 말입니다.

김민수
개나리에 얽힌 전설을 소개할까 합니다.

옛날 인도에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단다. 공주의 취미는 새 기르기였어. 공주는 새를 무척 좋아해서 세계 각국의 예쁘고 귀여운 새들은 모두 사들여 직접 길렀단다. 아부하기 좋아하던 신하들은 공주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에 눈이 어두워졌어. 세상에 있는 예쁜 새들은 모두 구해다 바칠 생각이었지.

공주야 예쁘고 귀한 새에 정신이 팔렸다지만 대신들까지 정치는 뒷전이고 공주의 비위를 맞추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백성들의 원망이 끊이질 않았단다. 공주에게는 비어 있는 새장이 하나 있었어.

"대신들, 새장이 하나 비었는데 누가 이 빈 새장에 넣을 가장 예쁜 새를 가져올 수 있겠소?"

대신들은 이미 세상의 예쁜 새들은 이미 다 궁전에 있음을 알았기에 걱정이 태산 같았어. 그러던 어느 날 공주가 말했어.

"아직도 새장에 넣을 새를 못 구했단 말이요? 가장 예쁜 새를 가져다 넣은 사람에게는 후한 상을 내리겠으니 전국에 방을 붙이시오."

어느 날 한 노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가져왔어. 정말 처음 보는 새였지. 그 후부터 공주는 다른 새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그새만을 사랑했어. 그런데 웬일인지 그 새는 하루가 다르게 흉해져 갔어. 알고 보니 공주에게 아첨하는 대신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노인이 까마귀에 화려한 색칠을 하고 목에 은방울을 달아 예쁘게 꾸민 새였던 거야.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주는 화를 못 이겨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하고, 그 무덤가에 핀 꽃이 개나리라나?


김민수
김민수
개나리의 꽃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꽃 이야기지요?

개나리는 '금종화' '신이화' '진리화' '금강방울개나리'로 불리기도 합니다. '금종화'는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골든벨(Golden bell)입니다. 정말 꽃 하나하나가 금종을 닮았습니다. 그 금종에서 변하지 않는 '희망의 소리' 울려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수
김민수
개나리는 이파리보다 먼저 꽃을 피웁니다. 그 작은 금종같은 꽃에서 '희망의 메시지, 희망의 소리'가 온땅에 두루 울려 퍼지면 좋겠습니다.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평화를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변질된 희망과 평화가 우리의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 변질된 모든 것들이 바로 서는 그 날까지 희망의 종소리가 멈추지 않고 울려나가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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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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