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선상을 아우르는 '탱자'

내게로 다가온 꽃들(60)

등록 2004.06.15 06:41수정 2004.06.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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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제주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밀감'입니다. 하우스 귤이 요즘 나오기 시작하지만 단맛은 있어도 신맛이 조금 부족해서 맹숭맹숭합니다. 귤은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져야 제 맛이니 모든 채소와 과일들이 그렇듯이 귤도 역시 제 철에 나는 귤이 제 맛입니다.

주워들은 바로는 귤과 탱자는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탱자나무와 교접시킨 귤이 당도도 높고 품질도 좋다고 하네요. 그러니 어쩌면 이 못생기고 시어터진 탱자가 귤의 조상뻘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무엇보다 탱자는 가지마다 성성하게 돋아있는 가시가 상징인 듯합니다. 가시는 억세고 날카롭기 때문에 감히 가까이 할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장 같은 곳에서는 소나 말이 담을 넘지 못하게 하느라고 철조망 대신 탱자나무를 심기도 했을 것입니다. 제가 만난 탱자나무도 송당의 어느 목장의 울타리 겸 심어놓은 것이었습니다.

김민수
대중가요 '가시나무' 중에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쓴 가시면류관을 보는 듯도 하고, 아니면 내 안에 가득해서 남을 콕콕 찌르는 가시 같이 느껴집니다.

당신의 쉴 곳이 될 수 있는 그 곳에 담고 있는 것으로 인해 갈등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네 마음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는가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추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마음에 관심을 두기보다 지엽적인 것들, 보이는 것들에만 연연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민수
식물 중에서 가시를 달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장미과의 꽃들인데, 모양이 예쁘니 사람들이 너도나도 소유하고 싶다고 꺾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시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가시들이 그렇게 밉지도 않고, 나도 자신을 지킬 가시 정도는 하나 가지고 살아야겠구나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남을 찌르기 위한 가시는 흉기겠지만 자기를 지키기 위한 가시는 그와는 다른 것이죠.


김민수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이 있습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환경에 따라 사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똑같은 것이라도 어느 자리에 있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같은 진주라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치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부질없는 것이요,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긍정과 부정의 경계를 봅니다. 긍정을 위한 부정까지도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소모적인 부정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해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세상에는 긍정해야 할 일도 있고 부정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이 경계를 잘 지키는 것도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겠지요.

김민수
제주의 민중들은 참으로 많은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변방의 섬이요, 유배의 섬 그리고 몽고로부터 100년 동안 압제를 받은 것도 부족해서 일제 36년 그리고 4·3항쟁, 해방 이후 6·25에 이르기까지 제주는 고난으로 점철된 역사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성성한 가시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연유도 있을 것입니다. 오직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열심히 땀흘리며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바람이 오히려 헛된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바람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땀흘려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이 희망을 품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김민수
탱자나무의 꽃. 성성하게 돋아있는 가시만 보면 그 줄기에서 이토록 연한 꽃이 핀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예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드럽지 않은 꽃, 연하지 않은 꽃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새로운 것들 중에서 연하지 아니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은 굳어진 저 가시도 맨 처음에는 부드러웠을 것입니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는 진리를 보는 듯합니다. 연약함 속에 깃들어 있는 강인함을 보여줍니다. 가지마다 성성히 돋은 가시를 통해서 그 연약함을 넘어 어느 누구도 감히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강함을 가진 나무가 된 탱자를 보면서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 경계를 보게 됩니다.

김민수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경계를 잘 아우르는 꽃. 그러다 보니 그 속내에도 같은 마음을 담고 있어서 신맛과 단맛의 경계를 아우른 것 같습니다. 시다 못해 쓴맛의 탱자가 있을 때 단 맛을 내는 밀감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죠.

가시를 달고 있어도 예쁘기만 한 꽃을 만나려면 이제 꼬박 일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년은 하루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김민수
어느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꽃이 말을 걸던가요?"
"글쎄요…."

어떤 때는 꽃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듯 분명하게 들려오는 말이 아니라 내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들려옵니다. 미움이 가득 차 있을 때에는 그저 그렇게 심드렁하게 다가오고, 마음을 비우고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다 보면 그들이 다가온다는 느낌 정도는 있습니다.

불혹을 넘어 남은 생애를 친구처럼 보낼 수 있는 꽃을 만난 것은 제 삶의 가장 큰 행운입니다. 어떤 분들은 빠르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지만 조금 더 일찍 이 좋은 것들을 만났다면 하는 아쉬움은 늘 있습니다. 그들을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지금보다 내 마음에 추한 것들을 더 많이 씻어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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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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