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속에 살다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11)

등록 2004.06.26 19:16수정 2004.06.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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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편집 6월 27일 오후 3시


a 콩 두둑 사이의 잡초

콩 두둑 사이의 잡초 ⓒ 박도

태풍 디앤무의 간접 영향으로 며칠간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친 후 며칠간 병원에 다닌다고 텃밭을 둘러보지 못했다. 거기다가 신간이 나와서 출판사에, 방송국에 간다고 서울 나들이로 이래저래 한 열흘 남짓 텃밭을 소홀히 했다.

오늘 서울에서 돌아와 텃밭을 둘러보니 잡초가 말씀이 아니다. 그새 마당에도 잡초가 가득하다. 울 안팎 화초밭에도 잡초가 무성하다.

정말 잡초처럼 끈질기게 잘 자란다. 흔히들 폐허가 되거나 못 쓰게 될 때 ‘쑥대밭이 되다’라고 하는데, 금세 쑥대밭이 되었다. 쑥은 생명력이 억세기도 하고 금세 자란다.

a 마당에 돋아난 질경이

마당에 돋아난 질경이 ⓒ 박도

마당의 질경이를 뽑아주자 옆집 노씨가 와서 제초제를 뿌리면 금세 죽어버리니 농약상에 가서 한 병 사다가 뿌리라고 했다. 아내가 그 소리를 듣고 질급을 했다. 제초제의 해독이 얼마나 독한데 그걸 마당에 뿌리느냐고.

시골을 다녀보면 한 여름인데도 식물들이 누렇게 말라죽은 것을 더러 보는데 그것은 모두 제초제를 뿌린 탓이다. 지난해 충남 아산의 외암민속마을에 가서도 보니 거기도 논두렁에 제초제를 뿌려서 보기가 아주 볼썽사나웠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자 그 마을 주민이 “풀 한 번 뽑아 보시오. 얼마나 힘드나?”하고 반문했다.


내 집 마당의 풀만해도 그렇다. 내가 올 들어 서너 번은 더 뽑아준 것 같은데 며칠만 지나면 또 새파랗게 돋아났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손도 딸리고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제초제를 뿌리나 보다.

a 고구마 두둑 사이의 잡초

고구마 두둑 사이의 잡초 ⓒ 박도

이 세상 만고 불변의 진리는 편하고 수월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역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현대인은 너나없이 편하고 쉽게 살려고 한다. 논밭의 잡초를 손으로 뽑아 주기보다는 제초제로 잡아 버린다. 그 제초제의 독성이 땅에 남아서 농작물로 옮아가고 그것이 다시 우리 인체로 들어오는 줄도 모른 채 당장 편하고 쉽게 살려고 한다.


논밭의 잡초는 조금만 게을러도 금세 무성해진다. 눈에 보이는 논밭의 잡초만 그런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들 마음의 밭 잡초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잡초가 무성해서 붓이나 혀로 차마 옮길 수 없는 일들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내일부터 당분간 글쓰는 일도 중단하고 텃밭의 잡초부터 뽑은 다음, 마음의 밭에 잡초도 다스려야 되지 않을까.

a 고추 밭의 잡초

고추 밭의 잡초 ⓒ 박도


a 울 안 화단의 잡초

울 안 화단의 잡초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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