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장 보리밥은 한그릇에 2천원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13)

등록 2004.07.04 13:30수정 2004.07.0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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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럽게 열린 새빨간 앵두알
탐스럽게 열린 새빨간 앵두알박도
글방에서 원고를 긁적이고 있는데 옆집 노씨가 왔다.
“선생님, 머리도 좀 식히고 제 집에 와서 앵두 좀 따 잡수세요.”
하던 일을 밀치고 옆집으로 건너갔다.


노씨 내외는 빨갛게 잘 익은 앵두를 따서 양은그릇에 담고 있었다. 앵두나무에는 새빨갛게 잘 익은 탐스러운 열매가 다닥다닥 알알이 포도송이처럼 붙어 있었다. 몇 알을 따서 맛을 보자 달콤새콤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

노랫말처럼 지난날 고향 마을 우물가나 울안에는 이런 앵두나무가 한두 그루씩 있어서 이맘 때면 뽕나무밭 오디와 함께 아이들 군입질감으로 제격이었다. 백발이 희끗한 이가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입이 붉도록 맛을 보고는 돌아왔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 없이 살지만, 아직도 산골은 ‘이웃사촌’이라 할 만큼 이웃간 인정이 따습다. 내가 사는 마을은 세 집뿐인데, 바로 옆집 작은 노씨는 가축을 많이 기르기에 이곳에서 좀 떨어진 축사에서 주로 지낸다. 그래서 이즈음에는 거의 대부분 집을 비우기에 두 집뿐이라 여간 적적치 않다.

그래서 틈만 나면 두 집은 서로 오간다. 그리고 노씨네는 뭐든지 생기면 우리집에 가져다 준다. 당신 밭에서 나는 무 배추뿐 아니라,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온갖 푸성귀를 틈만 나면 나른다.


횡성 장날 풍경, 요즘 장사꾼들은 허생원이나 조선달처럼 나귀를 몰고 다니지 않고 대신 봉고차에다 기성 옷들을 싣고 다닌다
횡성 장날 풍경, 요즘 장사꾼들은 허생원이나 조선달처럼 나귀를 몰고 다니지 않고 대신 봉고차에다 기성 옷들을 싣고 다닌다박도
어쩌다가 장에 가서 고등어라도 한 손 사면 한 토막, 객지에 있는 아들이 빵이라도 사오면 한 조각 싸서 얼른 건네 주고 간다. 정말 이웃을 위해 간이라도 내 줄 듯하다.

지난 달 내가 중국 항일유적 답사를 가서 한 열흘만에 귀국할 때, 가족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사오지 않았지만 옆 집 노씨 형제에게는 담배 한 포를 사다 드렸다. 이것이 우리네 인정이었다. 산골 마을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이웃밖에 없다.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사람이 반갑고 그립다.


일전에는 노씨 부인이 식전 댓바람에 와서 오늘이 횡성장이니 장 구경도 할 겸, 장에 가자고 했다. 노씨네는 경운기만 있을 뿐 승용차가 없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밥을 먹지 않아서 가축 병원에 가서 약을 사다 줘야겠다고 했다. 마침 우리도 모종을 사려고 하던 참이라 아내 차를 타고 같이 횡성 장에 갔다. 우리가 사는 안흥마을의 장은 어딘가 고즈넉하지만 1일 6일에 열리는 횡성 장날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복작거렸다.

산나물이나 텃밭 채소를 뜯어다가 파는 할머니, 온갖 잡곡을 펴 놓고 파는 장꾼, 고사리와 더덕을 캐다가 파는 이, 강아지, 고양이, 토끼를 파는 이, 뻥튀기를 하는 이, 어물전, 허생원과 조선달의 후예들이 펼치는 포목가게와 옷가게들….

한 바퀴 돌고나자 그새 노씨 부인이 볼 일을 마치고 장바닥에서 마주쳤다.

“선생님, 제가 보리밥 대접하고 싶어요.”
부인은 굳이 장터 한편에 차일을 친 밥집으로 끌었다. 대여섯 가지 나물 반찬에 나물국까지 나왔다. 한 그릇에 2000원이었다.

맛있게 먹은 후 값을 치르자, 당신이 별렀던 밥값 치르는 걸 놓쳤다면서 무척 서운해 했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이웃에서 같이 살아가노라면 기회가 많을 거라는 말로 답하면서 장 본 것을 차에 싣고 귀가했다.

“참 세상 좋아졌어요. 옛날에는 새벽밥 먹고 횡성 장에 가면 해거름 때에야 돌아왔는데….” 시집 온 후 평생을 이곳에서 산 노씨 부인은 또 옛날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우리 내외에게 한 동네에서 오래오래 함께 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산촌에는 사람이 귀하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다. 그래서 산골마을에는 아직도 이웃이 있다.


푸성귀를 뜯어다가 장바닥에 늘어 놓고 파는 할머니
푸성귀를 뜯어다가 장바닥에 늘어 놓고 파는 할머니박도
온갖 잡곡이 다 있다
온갖 잡곡이 다 있다박도
풋풋한 햇고사리가 먹음직하다
풋풋한 햇고사리가 먹음직하다박도
태기산에서 나는 더덕, 향이 그윽하다
태기산에서 나는 더덕, 향이 그윽하다박도
"나를 데려가 주세요" 새 주인을 기다리는 어린 멍멍이들
"나를 데려가 주세요" 새 주인을 기다리는 어린 멍멍이들박도
1일, 6일 닷새 만에 서는 횡성 장 풍경, 있을 것은 다 있다
1일, 6일 닷새 만에 서는 횡성 장 풍경, 있을 것은 다 있다박도
무공해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날로 부쩍 커지고 있다. 친환경 농산 가공품을 파는 가게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잦다
무공해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날로 부쩍 커지고 있다. 친환경 농산 가공품을 파는 가게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잦다박도
한 그릇에 2000원인 장터 밥집의 비빕밥
한 그릇에 2000원인 장터 밥집의 비빕밥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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