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장날 풍경, 요즘 장사꾼들은 허생원이나 조선달처럼 나귀를 몰고 다니지 않고 대신 봉고차에다 기성 옷들을 싣고 다닌다박도
어쩌다가 장에 가서 고등어라도 한 손 사면 한 토막, 객지에 있는 아들이 빵이라도 사오면 한 조각 싸서 얼른 건네 주고 간다. 정말 이웃을 위해 간이라도 내 줄 듯하다.
지난 달 내가 중국 항일유적 답사를 가서 한 열흘만에 귀국할 때, 가족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사오지 않았지만 옆 집 노씨 형제에게는 담배 한 포를 사다 드렸다. 이것이 우리네 인정이었다. 산골 마을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이웃밖에 없다.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사람이 반갑고 그립다.
일전에는 노씨 부인이 식전 댓바람에 와서 오늘이 횡성장이니 장 구경도 할 겸, 장에 가자고 했다. 노씨네는 경운기만 있을 뿐 승용차가 없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밥을 먹지 않아서 가축 병원에 가서 약을 사다 줘야겠다고 했다. 마침 우리도 모종을 사려고 하던 참이라 아내 차를 타고 같이 횡성 장에 갔다. 우리가 사는 안흥마을의 장은 어딘가 고즈넉하지만 1일 6일에 열리는 횡성 장날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복작거렸다.
산나물이나 텃밭 채소를 뜯어다가 파는 할머니, 온갖 잡곡을 펴 놓고 파는 장꾼, 고사리와 더덕을 캐다가 파는 이, 강아지, 고양이, 토끼를 파는 이, 뻥튀기를 하는 이, 어물전, 허생원과 조선달의 후예들이 펼치는 포목가게와 옷가게들….
한 바퀴 돌고나자 그새 노씨 부인이 볼 일을 마치고 장바닥에서 마주쳤다.
“선생님, 제가 보리밥 대접하고 싶어요.”
부인은 굳이 장터 한편에 차일을 친 밥집으로 끌었다. 대여섯 가지 나물 반찬에 나물국까지 나왔다. 한 그릇에 2000원이었다.
맛있게 먹은 후 값을 치르자, 당신이 별렀던 밥값 치르는 걸 놓쳤다면서 무척 서운해 했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이웃에서 같이 살아가노라면 기회가 많을 거라는 말로 답하면서 장 본 것을 차에 싣고 귀가했다.
“참 세상 좋아졌어요. 옛날에는 새벽밥 먹고 횡성 장에 가면 해거름 때에야 돌아왔는데….” 시집 온 후 평생을 이곳에서 산 노씨 부인은 또 옛날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우리 내외에게 한 동네에서 오래오래 함께 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산촌에는 사람이 귀하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다. 그래서 산골마을에는 아직도 이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