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에는 그 여인이 어떻게 보이더냐?"
동자승은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며 대답했다.
"그저 고운 여인으로 보였사옵니다."
"내 눈에는 마귀로 보인다. 그만 물러가 글을 읽거라."
동자승은 뭔가 더 얘기하고 싶은 듯한 눈치였지만 혜천스님의 속이 그다지 편치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선 두말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혜천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는 좀전보다 더욱 더 커졌다.
다음날, 혜천스님은 동자승을 데리고 아침부터 불암사로 내려갔다.
"염치 불구하고 도움을 얻고자 합니다."
"무슨 말씀을…. 고명하신 법명은 많이 들었사옵니다.
혜천스님과 주지스님치고는 다소 젊은 듯이 보이는 불암사 주지가 서로 공손히 인사를 나누며 차를 마셨다.
"보다시피 불암사는 양반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잔일은 많지만 다른 사찰에 비해 풍족합니다. 게다가 혜천스님 덕분에 시주도 넉넉히 들어왔으니 이것이 다 부처님의 은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혜천스님은 그 말에 불암사 주지를 그리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부처님의 은덕은 중생에 두루 미쳐야지 어찌 시주에 돌아가야 되겠습니까? 그저 이 사찰의 터가 좋아서 그런 것이라 여깁니다만."
불암사 주지는 그 말에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이 불암산이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그로 인해 보우선사를 우대하셨던 문정왕후께서도 이 불암산 자락에 묻히기를 원하셨고…. 그런데 아침부터 직접 여기 오신 이유가 있을 것 같사온데…."
불암사 주지는 말꼬리를 늘이며 혜천스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여기 온 이유는 내 긴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보살이 있기 때문이오. 하루가 멀다하고 내가 기거하는 암자로 오는 보살이 있사오만…."
"아…예, 그 보살은 열흘 전 이곳에 치성을 드리러 왔는데 무슨 곡절이 있는지는 얘기를 안 하더이다. 그러다가 스님께서 이곳에 오셨다는 말을 듣자 보시를 할 기회가 왔다며 매일 같이 스님을 찾습디다. 아마 스님이 생불(生佛)로 보인 모양입니다."
"허! 농담이 너무 과하시오!"
혜천스님은 얼굴빛까지 변한 채 정색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보다 그 보살이 뭔가 다른 연유가 있는 듯 한데 이를 알아보기 위함이오. 지금 만나려 하는 데 이리로 불러낼 수 있겠소이까?"
"그야 어렵지 않소이다."
불암사 주지는 즉시 여인을 불러내었고 여인은 혜천스님을 꼿꼿이 바라보며 방으로 들어섰다.
"내가 여기까지 온 연유를 알겠소?"
"그야…다시는 암자에 오지 말라는 말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여인은 당돌하리만치 큰 소리로 대답했고 혜천스님은 순식간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주지스님께선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여인의 말에 불암사 주지는 두말 않고 일어섰다.
"두 분께서 어떤 전생의 업이 있는 모양인데 차차 푸시지요."
혜천스님은 불암사 주지의 말끝에 뭔가 묘한 감정이 실려 있음을 느꼈지만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혜천스님은 자신의 속내가 여인으로 인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불안감이 점차 더해졌다.
"스님은 언제 나오십니까?"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 동자승이 불암사 주지에게 물었다. 불암사 주지는 묘한 웃음을 흘리며 동자승을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