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서울시의 '문화 무식' 정책을 막아라

문화의식이 없는 시장이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등록 2004.07.09 20:05수정 2004.07.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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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시장은 새로운 대중교통정책 때문에 시민들과 언론의 꾸중을 듣고 있다. 그 꾸중에 혼난 나머지 사과성명을 발표했지만 그 진실성이 또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엊그제 사과한 사람이 다시 교통혼란의 책임을 시민에게 책임을 돌리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에게 철학이 있기는 한 것일까? 아파트를 건설하던 기업의 우두머리였던 사람이 갑자기 정치를 하고, 서울시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걸 알아볼 필요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쳐버렸다.


건축할 때도 물론 섬세함과 논리가 필요하지만 특히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은 그런 점보다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에 능숙한 사람들이라고 평가되어왔기에 이 시장도 그런 논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철학,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여기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를 따라야 할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보아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서울시장의 경우 시민의 미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할 것인가가 중심이 된다면 설령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사심이 끼어 든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 자명한 이치가 아닐까?

따라서 이 시장이 꾸중을 듣는 것은 그에게 사심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시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자신의 영달을 위한 정책이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흔히 얘기되는 것처럼 자신의 대권욕을 위해서 시민을 제물로 삼는 행위는 아닌지 우려된다.

물론 시에서야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이렇게 혼란이 오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서둘러 시행했다면 자신의 치적을 위해서 밀어붙인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이 앞의 것으로 나든 뒤에 것이 되든지 그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

문화의 발전이 담보되지 못한 나라 발전의 결과는?

나는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이어서 서울시의 문화정책에 대한 문제를 집어보려고 한다. 세상에 문화가 없는 겨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따라서 아시아의 한 작은 겨레가 세상이 알아주는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며, 현대에서 큰 나라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임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대다수 정치인, 지도자란 사람들이 이를 외면한다. 오로지 경제제일주의를 외친다. 민족자존심과 관련되는 일도 무엇이든 시장원리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버린다. 나라 예산을 보아도 전체 예산 중 1%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정할 만큼 푸대접을 받고 있다. 과연 이래서 될 일일까?

일제강점기 일본총독부는 초창기엔 무력으로 식민지화에 전력을 기울였지만 중후반으로 가면서 문화식민지 정책에 많은 힘을 쏟았다. 1936년 한반도의 민속놀이를 조사하여 “조선의 향토오락”이란 책을 만든 이후 그들은 창씨개명, 우리말글 못쓰게 하기, 풍물을 비롯한 민속놀이 금지, 각종 예술에 민족적 색채 없애기, 식민사관 확립하여 역사 왜곡하기, 산봉우리에 민족정기 말살을 위한 대못 박기 등의 민족문화말살 정책을 폈었다.


그들이 왜 그토록 민족문화말살에 힘을 썼을까? 그들도 정치, 군사, 경제정책만으로 식민지화하기는 어렵다는 걸 인식했다는 얘기다. 문화를 정복해야 완전한 식민지화를 이룰 수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그만큼 문화는 나라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조선 역사를 바라보자. 500년 왕조 중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세종과 영조, 정조를 꼽는데 대부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임금 때의 나라는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도 물론 안정되었지만 문화의 발달이 가장 화려했다는 점을 지나치면 안 된다.

따라서 현재도 지도자들이 문화의식이 없으면 정치, 군사, 경제가 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완전히 성공한 나라라고 할 수가 없음을 알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생활이 안정되면 누구나 여유를 찾게 되고, 그럼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 향유할 문화가 발달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흔히 말하는 저질문화, 즉 포르노문화, 도박문화, 음주문화, 쇼핑문화 등만 발전되고, 문학, 음악, 미술 등이 죽어있다면 그 나라의 멸망은 예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대 유럽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이 멸망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지만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 까닭으로 우선 기독교, 정치, 군사, 경제적 문제와 함께 부정부패와 전염병, 그리고 이민족의 침입을 말한다.

하지만 문명비평가들은 지도층의 타락, 검투사, 공중목욕탕의 혼탕문화 등과 고유의 글자가 없었다는 것도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원인으로 본다. '로마제국 흥망사'를 저술한 기브온(Edward Gibbon)은 그렇게 화려했던 로마제국의 멸망의 원인을 '도덕적 타락으로 말미암은 가치관의 파괴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은 어떠한가? 고대 로마제국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특히 지도자란 사람들이 문화에는 관심도 없다. 그저 경제적 발전에만 혈안이 되고, 자신의 치적 쌓기에만 골몰한 나머지 저급문화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서울시의 한 기초자치단체는 “문화의 거리” 선포식을 했는데 역시 그도 치적 쌓기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문화인 아니라 정치인 일색이었으며, 예산도 반영이 되지 않은 채 그 뒤 벌리는 사업은 전무하였고, 계속 느는 것은 술집, 음식점, 옷가게들뿐 고급문화 시설은 들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자치단체들도 오십보백보의 수준일 것이다. 지역마다 문화원이 있지만 여기에 포진된 이사진의 면면은 문화인은 생색내기에 불과하고, 대부분 정치인이거나 경제인 일색이다. 또 사회복지관, 주민자치센터 등이 있지만 인기 위주로 운영되어 대중가요 배우기, 에어로빅 등의 프로그램은 성황이지만 정말 고급문화, 전통문화는 과목조차도 개설되지 않았거나 개설되었어도 수강생이 적다고 없애기 일쑤이다.

서울시의 문화 무식

서울시는 아직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선임과 관련하여 문화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문화연대 등 문화단체들은 “서울시는 서울문화재단 설립과정을 무시한 채, 대표이사직을 원하지 않았던 유인촌씨를 대표이사로 임명했다”며 대표이사 및 이사진 구성과정에 있어서의 서울시 태도를 강력히 성토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그 정도로 밀어붙이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오만, 독선만 붙들고 있다.

서울시의 그동안 문화관련 행보를 보면 문화의식이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청계천복원사업에서의 몰역사성, 덕수궁터에 미대사관 신축 허용 용의, 몽촌토성에 영어마을 건립, 버스에 커다란 영문자 표기, 서울 이름의 한자화 등은 이미 문화단체들의 큰 발발을 불러일으켰다.

전문가, 시민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역시 치적에만 매달린 듯 밀어붙이는 청계천복원사업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할 지 모른다. 참여연대 등 14개 단체로 구성된 ‘올바른 청계천 복원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와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청계천 복원공사 중단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덕수궁터 미대사관 신축문제 역시 민족자존심 문제가 부각되면서 커다란 반발을 사고 있고, 풍납토성 안의 영어마을은 시민혈세 12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하여 쓴다고 했지만 2008년이면 문화재청의 유적 발굴조사가 예정된 지역이어서 3년 밖에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글마을이면 몰라도 문화유적 안에 웬 외국어마을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반발을 사고 있다.

7월 1일에 시행된 대중교통 대개편은 대다수 시민들의 불만과 원성을 사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출발지, 경유지, 도착지는 작게 써넣고, 그 위에 커다랗게 영문자를 넣었다. 그 영문자가 무슨 뜻이 있는 것인지, 영문자를 모르고 눈이 잘 안 보이는 할머니들은 타지 말라는 것인지, 우리가 뉴욕 한복판에 와 있는지 모를 정도의 한심한 일이다.

또 서울의 한자이름을 만든다고 혈안이다. 예전에 대전은 “한밭”이었고, 광주는 “빛고을”이었고, 대구는 “달구벌”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한자화하면서 이 아름다운 토막이 이름을 잃어버렸지만 서울은 그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도시이다. 그런데 이 서울을 ‘수이특별시’나 ‘首耳特別市’라고 쓰는 엉뚱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정작 중국인들이 이 ‘首耳特別市’를 제대로 이해할지 걱정이다.

한 가지 더 걱정스러운 일이 있다. 서울시는 영어를 상용화하겠다고 한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6년 이후 간부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고, 올해 안에 학교나 관공서 등 공문에 영어를 사용하고, '공무원 외국어 인사 가점 제도' 계획도 시행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일보에 실린 “영어를 짝사랑하는 진짜 이유”라는 제목의 김영명 한림대 국제학대학원장의 칼럼을 읽어보자.

“서울시가 추진하는 영어 상용화 정책에 대해 네티즌 여론 조사를 하였더니 7 대 3의 비율로 반대 의견이 많았다. 영문 버스 도안에 대해서도 비난 여론이 빗발친다. 그러나 서울시 고위 공무원들은 영어 남용에 대해 신념마저 지닌 것 같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그것은 무엇보다 그들이 가진 자의 이익과 취향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문화무식을 경고하고 응징할 때

이렇게 서울시는 문화를 죽이고, 민족자존심을 해치는 각가지 정책을 양산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정책을 반대하고, 성토하는 시민들과 문화단체들의 의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인다는데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교통혼란의 책임을 시민에게 돌리는가 하면 청계천 복원사업의 몰역사성을 비판하는 원로소설가 박경리 선생에게 무식해서 그렇다는 독설을 퍼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그냥 놔뒀다가 우리는 미래에 후손들에게서 비판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문화무식의 정책이 혹시 나라가 뒷걸음치는 결과로 다가오고, 또 다시 현대판 식민지로의 전환을 가져온다면 이를 막지 못한 우리 모두에게도 비판과 원망의 화살이 올 것은 뻔한 일이다.

우리가 정말 우리의 자식들, 후손들을 사랑한다면 이런 정치지도자들, 관료들의 안하무인식의 정책에 발을 걸어야 한다. 강력한 태클을 걸어 다시는 그런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 태클의 책임으로 우리가 잠시 지금의 경기에서 퇴장명령을 받더라도 다시 경기에 투입될 때는 큰 박수를 받을 것이며, 후배들의 경기, 후손들의 경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일에 틀림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이러한 서울시의 문화무식 정책에 강력한 경고와 응징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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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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