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예쁜 구슬같은 소망을 담은 '구슬붕이'

내게로 다가온 꽃들(66)

등록 2004.07.12 14:48수정 2004.07.1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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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구슬붕이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유년의 추억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손이 곱고 터지도록 구슬치기를 했었던 기억입니다. '자그락 자그락' 유리구슬의 맑은 소리는 참 행복한 소리였습니다.

하얀 사기구슬도 있었고, 무늬가 없는 청구슬도 있었고, 각양각색의 회오리 무늬가 들어간 구슬, 간혹 쇠구슬도 있었고 냄비뚜껑에 문질러 쇠구슬처럼 은색을 내던 구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슬이 있었고, 그 종류만큼이나 구슬로 하는 다양한 놀이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놀이는 삼각형,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하는 홀짝, 쌈치기, 사방에 구멍을 뚫어놓고 구슬을 순서로 넣는 봄들기, 상대편의 구슬을 맞추어 간격을 멀리 벌릴수록 이기는 벽치기(벽이나 담에서 구슬을 굴려 순번을 정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에 이르기까지 구슬 하나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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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구슬'은 국어사전에 의하면 '보석이나 값진 유리' 또는 '조그마한 둥근 물건의 비유'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말할 때에도 구슬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니 '구슬붕이'의 꽃말을 붙여준다면 '천진난만'이라고 붙여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난데없이 그런 꽃말이 나왔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을 가리켜 '개구쟁이'라고 하고, 이 개구쟁이들은 천진난만하잖아요. 게다가 이 아이들은 이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도 귀한 보물 중의 보물이잖아요.

구슬붕이는 옹기종기 모여 핍니다. 영락없이 아이들이 추운 겨울날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오늘 뭘 하고 놀까?' 하며 작전회의를 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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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작고 예쁜 구슬붕이에 넣을 구슬은 아주 작은 것, 이슬방울만한 구슬이라야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렇게 품은 것은 아주 예쁜 소망처럼 피어날 것만 같습니다. 소망이라는 것, 꿈이라는 것은 맨 처음에는 아주 작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작은 씨앗이 자라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그가 품고 있는 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른 아침 영롱한 이슬방울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 작은 이슬방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소망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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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준 이후 인간은 그 이전보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단다. 그러나 화가 난 제우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명하여 인류 최초의 여인 판도라를 만들게 하고 지상으로 내려보냈어.

프로메테우스는 판도라를 경계하였으나, 아우에피메테우스가 아내로 맞아들였고 신들은 판도라에게 많은 결혼선물을 주었단다. 그 선물 가운데는 아름다운 상자가 하나 있었는데 선물을 준 신은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단다. 그러니 더 궁금했겠지?


제우스신은 그 상자 안에 불로 인해 더 행복해지고 강해진 인간들에게 나쁜 것들만 넣었단다. 그런데 다 넣고 보니 그래도 좋은 것 하나쯤은 넣어주어야 할 것 같았어. 그래서 가장 깊은 곳에 희망이라는 것을 넣어두었단다.

어느 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판도라가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속에 있던 불행, 즉 인간의 모든 번뇌와 괴로움들이 마구 밀려나오기 시작했고 놀란 판도라는 뚜껑을 닫아버렸지. 그 그러나 이미 다 나와버렸고 상자에는 오직 하나 '희망'만이 남았다고 단다.

이 상자를 판도라의 상자라고 하는데 그 상자를 호기심에 열어본 후 판도라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어. 판도라의 눈물이 떨어진 곳마다 상자 안에 남아있는 희망을 담은 꽃이 피어났는데 바로 이 구슬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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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상자의 결론 부분만 살짝 바꿔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구슬붕이를 보면서 소망이라는 단어를 연상시켰고, 판도라상자를 떠올리면서 보석을 생각했거든요.

보석이라면 당연히 구슬 같은 보석이 있어야 했겠죠. 판도라는 아마도 이 상자를 열면서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을까요? 예쁜 구슬 같은 보석들이 가득 찬 상자를 상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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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의도적으로 이렇게 찍어야겠다고 찍은 것은 아닌데 집에 돌아와 컴퓨터의 화면으로 보니 그 모양이 북한의 지도를 보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이 구슬붕이들도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분단의 세월, 이념의 갈등으로 인해 우리 민족이 겪는 아픔은 너무나도 큽니다.

우리의 반쪽임에도 우리들은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미워하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그들은 빨간 뿔이 달린 도깨비 정도로 알았을 정도였으니까요. 후에 간첩단 사건을 접하면서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참으로 컸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기에 남북한 모두가 한 걸음씩 통일을 향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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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꽃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 집니다. 판도라상자에서 나온 아픔과 슬픔과 분노 같은 것들도 수그러듭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꽃들은 판도라상자 안에 있는 희망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살만한 세상이구나 느껴지게 되는가 봅니다.

법정 스님은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고 했습니다만 저는 꽃들이 없는 들판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삼천리강산 여기저기에 흐드러지게 피던 꽃들 중에서 더 이상 우리가 볼 수 없게 된 꽃들, 그리고 수 년 안에 사라질 꽃들, 멸종 위기에 처한 꽃들도 많다고 합니다. 인간의 욕심이 그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꽃을 꺾어서는 안 된다며 생색내기식의 자연보호로 자신의 일을 다 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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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저 들의 핀 꽃 한 송이도 귀하지만 사람의 생명 하나도 귀한 법인데 들에 핀 꽃 한 송이만도 못한 것들과 사람의 목숨을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소중한 것은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야 합니다. 소중한 것이 언제나 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떠나면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기에 소중한 것입니다.

작고 예쁜 구슬 같은 소망을 담은 꽃 '구슬붕이'는 참 소중한 꽃입니다. 그 안에 나의 유년시절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이 꽃을 바라본 우리 아이들의 추억도 들어있습니다. 작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담은 꽃입니다. 그래서 예쁘고, 소중한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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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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