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강변 공원에서 놀이를 하고 있다박도
16:40, 구세주 박인규 심양부총영사가 나타났다. 그는 인상도 매너도 좋았다. 시간 늦은 것을 정중히 사죄한 후, 우리의 사정을 경청한 뒤 곧장 공안에게 우리의 신변 보증을 서줬다.
그러자 공안은 여권을 모두 돌려주면서 중국을 떠날 때까지 앞으로는 관광만 하라고 했다. 그는 우리 일행이 빌린 차번호를 적어가면서 우리가 가는 곳을 꼬치꼬치 물은 다음, 그 지역에 우리의 거동을 주시하라고 통보하겠다고 했다.
공안이 떠난 후 박 영사는 최근의 고구려사 문제로 한중 외교상의 미묘한 관계를 설명하면서 때가 좋지 않다고 매사 조심하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야 없지 않은가. 독립운동도 어려웠지만 그 유적답사도 매번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선조들과 견줄 수야 있으랴.
이래저래 오후 6시가 넘었다. 애초 여정은 점심 식사 후 곧장 단동을 출발하여 통화로 이동하면서 조상들이 걸어서, 또는 마차로 다녔던 그 길을 그대로 밟기로 했다.
통화에서 매화구에 사는 조선족 향토 사학자 이국성씨를 만나 그분의 안내를 받기로 예약됐는데, 뜻하지 않는 일로 차질을 빚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쉽게 끝난 것도 다행이었다. 선뜻 신원 보증을 해 준 박 부영사에게 이 글로나마 감사 드린다.
박 부영사가 떠난 후, 이국성씨에게 전화를 하자 이미 통화에 와서 빈관을 잡아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기사에게 밤길이지만 괜찮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도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