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중심가에 있는 백화점박도
진수영 기사가 졸까봐 김시준 선생은 옆 자리에서 계속 말을 시키며 졸음운전을 예방했다. 한밤중이라 바깥은 자세히 살피지는 못하였지만, 산길 들길이 대부분이었고 고갯길 비탈길도 많았다. 이 길이 우리 선조들이 마차로, 도보로 이동했던 길이다.
자동차로 달려도 이렇게 힘든 길을 마차를 타거나 괴나리봇짐을 지고 걸어왔을 때 그 고초가 어떠했을까? 그때의 기록을 보면 날만 저물면 길가의 여사에 들러 하룻밤 묵고 이튿날 새벽 다시 출발하였다는데, 단동에서 통화까지 10~15일 걸렸다고 한다.
우당기념관 윤흥묵 이사로부터 소개받은 이국성씨는 항일유적지와 그때의 역사에 밝은 조선족 향토사학자라고 하였다. 이번 답사 길은 필자가 5년 전에 한번 거쳐간 곳이지만 아무래도 익지 않는 곳이라 걱정하던 차에 이국성씨는 현지 사정이 밝은 분이기에 백만 원군을 얻은 양 든든했다. 그래서 삼원포 일대 항일유적지 길 안내를 부탁드렸다.
당신은 매화구에서 이곳까지 일부러 달려와서 그때까지 주무시지 않고 빈관을 마련해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면이었지만 정식 인사도 생략한 채 모두 지쳐서 빈관으로 들어가서 대충 닦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인데다가 만주 땅 한복판이라 그런지 몹시 추웠다. 이불을 두 겹으로 덮고 눈을 감았다.
07: 00, 10시까지 취침하기로 했지만 잠이 깼다. 디지털 카메라에 든 사진을 노트북에 저장코자 전원을 연결했으나 작동이 되지 않았다. 순간 뜨끔했다. 이번 답사 길은 디지털 카메라만 가져왔고 칩도 하나밖에 없기에 큰일이었다. 이미 150여 장을 촬영했기에 여분이 90여 장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