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102

검은머리 사람들(하)

등록 2004.07.20 17:00수정 2004.07.2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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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모두 도륙을 내고 말리라.'

한데 건물에 닿기도 전에 또다시 적의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문 옆 창에서였다. 그를 호위해 따르던 기병의 말이 먼저 고꾸라졌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다급히 외쳤다.


"기병들은 정지하고 다시 불화살을 날려라! 어서 쏴라!"

그러자 곧 건물 지붕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기병들이 창틈과 지붕, 사방을 공략했던 덕이었다. 이제 건물 속 적군들이 튀어나올 차례였다. 그러면 선 자리에서 모두 도륙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분이 풀리지 않았다. 은 장수가 다시 소리쳤다.

"연병장 적군들도 모두 저 건물 속으로 쓸어 넣어라! 한명도 살아남지 못하도록 모두 불태워 죽여라!"

불길이 점점 더 거세어졌다. 그 불구덩이로 떠밀려가는 연병장 군사들은 모두 겁에 질려 벌벌 떨거나 엉엉 울기도 했다. 더러는 오줌을 싸기도 해서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물이 흥건했다.

그들은 아직 군사가 아닌 훈련병들이었다. 따라서 불구덩이로 몰리는 이런 공포는 처음이었다. 그들은 너무 무서워 울음소리로 공중을 물들이고 바닥은 체액으로 적시면서 그 화형 장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들의 무리 속에서 한 남자가 튀어나오며 중지하라고 외쳤다. 환족 용병이었다.

"중지하시오! 이들은 훈련병이오. 죽여야 아무 소용이 없소!"


은 장수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제후와 연통했던 그 용병입니다."
"한데 왜 여태까지 거기 있었소?"
"의심을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다면 진짜 군인들은 다 어디에 있소?
"용병들은 거의 건물 안에 있었습니다. 무기도 화살도 저 안에 있어서 그들이 그렇게 저항을 했던 것입니다."

역시 그랬군. 은 장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한데 내가 듣기로는 우리 용병이 모두 셋이라고 했는데 그럼 나머지 둘은 저 안에 있다는 말이오?"
"아닙니다. 둘은 성안에 갔습니다."
"성안에…."

은 장수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내막까지 발설시킬 필요는 없었던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보병 아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훈련병들을 모두 안전한 곳에 집결시키고 감시하라."

그리고 뒤이어 은 장수는 용병에게 말했다.

"당신 때문에 살려주는 것이오. 이들에게도 그렇게 말하시오."

이때 은 장수는 에인의 당부를 떠올렸다. '가능하면 쌍방 모두 피를 보는 일은 피하라'는 것이었다. 자칫했으면 무고한 생명들을 무더기로 죽일 뻔했는데…. 은 장수는 그 용병이 고마웠다.

"적병들이 튀어 나옵니다!"

기병이 보고했다. 돌아보니 건물 안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죽이지 말고 포로로 잡아라!"

50명쯤 되었다. 어떤 적병은 옷자락 끝에 불까지 달고 나와 아군은 그 불길을 꺼준 후 포승을 묶었다. 용병이 2백 명쯤 된다고 했고, 전원이 그 안에 있었다면 아직도 나올 사람은 많을 것이다. 더욱이 먼저 나온 사람들을 죽이지도 않았으니 곧 모두 뒤따라들 나올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전부인가? 벌써 지붕이 반 이상이 탔고 그 지붕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요란한데도…. 은 장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 세 사람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온 몸에 불이 붙어 뛰어나온 즉시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뒤이어 수많은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모두 옷에 불이 붙었고 마당에 나와서는 그대로 쓰러졌으며 기병들조차도 이미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때 건물 안에서도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럿이었다. 그들은 투항보다 죽음을 선택했으나 화마의 고통은 견딜 수 없어 그처럼 비명을 질러댄 것이었다. 기병들은 귀를 막았다. 아무리 전시상황이라 해도 처절한 비명은 듣기가 유쾌하지 않았다.

전투가 끝난 것은 오후 2시 경이었다. 손실은 말 세 마리와 사망자 다섯, 부상자가 30여 명이었다. 기병부상자도 다섯이나 되었고 그 외에는 보병들이었다. 그만하면 큰 피해가 아니었음에도 은 장수는 대단히 언짢았다. 기병의 부상은 보병 수백을 잃는 것만큼 큰 손실이었다. 게다가 적군이 너무 많이 죽었다. 에인 장군은 쌍방 모두 피를 보는 일은 피하라고 했는데 병영건물까지 전소되고 말았다.

그는 낙담을 하다가 문득 두두를 생각했다. 한데 이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가. 상처는 큰가? 은 장수는 서둘러 부상병 속으로 들어가 두두를 찾았으나 두두는 그 틈에도 없었다. 혹시 이 녀석이 또? 명확하지 않은 의심 한 타래가 머리에 감겨올 때 저만치서 안내선인이 달려오고 있었다.

"전투가 끝났습니까?"

안내선인이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물었다.

"보다시피 거의 끝났다네. 한데 성은 어떻게 되었는가?"
"성은 접수했습니다. 한데 군주가 없어요. 그래서 여긴 감시병만 남기고 기병은 모두 성으로 오라는 분부이십니다."

안내선인은 그 말만 남기고 곧장 말머리를 되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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