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 뒷산, 산악훈련하던 곳박도
학교는 산 속에 있었으며 18개의 교실로 나뉘어 있었는데, 눈에 잘 띄지 않게 산허리를 따라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18살에서 30살까지의 학생들이 100명 가까이 입학하였다. 학생들 말로는 이제까지 이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 중에 내가 제일 어리다고 하였다.
학과는 새벽 4시에 시작하여, 취침은 저녁 9시에 하였다. 우리들은 군대전술을 공부하였고, 총기를 가지고 훈련을 받았다. 그렇지만 가장 엄격하게 요구하였던 것은 산을 재빨리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른바 게릴라 전술 훈련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강철 같은 근육을 가지고 있었고 등산에는 오래 전부터 단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학우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간신히 그들을 뒤따라갈 수 있었다.
우리는 등에다 돌을 지고 걷는 훈련을 하였다. 그래서 아무 것도 지지 않았을 때에는 아주 경쾌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 날’을 위해 조선의 지세, 특히 북조선의 지리에 관해서는 주의 깊게 연구하였다. 방과 후에 나는 국사를 열심히 파고들었다.
얼마간의 훈련을 받고 나자, 나도 힘든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으며, 그러자 훈련이 즐거워졌다. 봄이면 산이 매우 아름다웠다.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랐으며 기대에 넘쳐 눈이 빛났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들 못할쏘냐?
- 님 웨일즈 <아리랑> 중에서
뒤틀린 현대사
잔뜩 찌푸린 하늘이 조금씩 이슬비를 뿌렸다. ‘합니하’는 독립운동사에 숱하게 나오는 강인데, 실제로 와서 보니 상류인 탓인지 자그만 했다. 신흥무관학교가 잘 보인다는 합니하 건너편 언덕에 올랐다.
합니하 건너편 산기슭에 신흥무관학교 교사가 있었고, 그 아래 지금은 논과 포도밭이 지난날 연병장이요, 그 뒷산이 생도들이 산악 훈련했던 곳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