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112

검은머리 사람들(하)

등록 2004.08.04 11:04수정 2004.08.0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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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은 제후와, 니푸르 촌장, 두수, 두두 모두 동원해서 시파르 전역을 돌며 대주민 공식발표를 지시했다. 그 내용은,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하라, 분란이 없으면 새 군주는 모든 백성을 보호한다, 이제 시파르는 새 도시가 되었다, 그 기념으로 군주는 6개월간의 세금을 감면한다, 야장간도, 많은 수의 양과 염소를 가진 자에게도 일체 세금을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양과 염소의 수를 늘이는데 주력하라, 6개월간 그 수를 배로 늘인 자에겐 포상이 있을 것이다, 주민들이 군주의 뜻을 충실히 따르면 시파르도 머잖아 부강한 도시가 될 것이다'라는 것 등이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고 주민들도 곧 일상으로 돌아가 주었다. 저자거리도 열렸고, 거리에도 사람의 왕래로 활발해졌다. 다행이었다. 에인에겐 그들이 첫 번째로 맞아들여진 자기 백성이었다. 비록 타민족이라 해도 옛날 웅족이 그러했듯 어진 백성들이 되어주기만 한다면 미장가인 자기 기병들과의 혼인도 적극 장려할 생각이었다.


벌써 한달이 지났다. 그간 참모진들은 다음 전투를 위해 전력을 다했다. 책임선인은 차질 없이 군량을 비축했고 강 장수는 야장 장에 남아 있던 쇠붙이와 지난겨울 딜문에서 형제국 군사들이 두고 간 칼까지 수거해와 창과 화살촉을 만들었다.

강 장수가 칼보다 창 제작에 더 주력한 것은, 창은 원거리에서도 적을 겨냥할 수 있다는 이점에서였다. 사실 중원이나 황하 유역에서의 싸움은 주로 보병의 수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그 접전에서 우열이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1대1 접근전이라 칼이 유용했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창을 사용하고 있어 짧은 칼로 대응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다음 그는 화살촉 2만 발도 쇠로 만들었다. 물론 고국에서 실어 온 요석화살촉이 쓰기에 훨씬 간편했지만 그것은 거의 동이 났고 또 똑같이 만들자 해도 여기서는 요석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쇠살로 바꾸되 적들의 화살촉보다는 가늘고 예리하게 제작했고, 시험사용까지 해본 결과 모두 만족했다.

이번에 그는 몇 개의 새 병기를 더 추가 제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표창이었다. 그는 먼저 책임선인의 요석 표창을 빌려 본을 뜬 다음 쇳물을 부어보니 너무 투박했다. 돌과 쇠의 무게가 달라서 그런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작은 비수 형으로 만들었고 그 끝을 예리하게 다듬은 뒤 던져보니 요석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 표창 제작에 들어가는 한편 표창대원까지 50명을 뽑아 강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 훈련은 책임선인이 도왔고, 군사들 역시 재빨리 그 전술을 습득해 지금 곧 전투를 한다고 해도 50보 이상 떨어진 적은 표창으로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작한 것은 사다리였다. 에리두는 성벽이 튼튼했고 또 그 주위로 해자까지 있어 박격기보다는 사다리가 유용할 것 같았던 때문이었다.

그는 군사훈련도 다각도로 병행했다. 특이 보병전술에 주력을 했는데 숫자가 많은 보병을 산병과 접근병으로 나누어 접근병이 앞에서 치고 들면 군데군데 대기하고 있던 산병이 그 옆구리를 치고 들어 적의 무리가 아무리 길거나 넓어도 도막도막 괴멸시킨다는 작전이었고, 그 훈련은 보름간 집중한 결과 이제 대열!하고 호령하면 3천의 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제 위치에 섰다.


그러나 강 장수는 그것만으로 만족하거나 안심할 수가 없었다. 아직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에리두는 큰 도시요, 그 주민들 또한 문명 족이라고 들었다. 그들을 제압하거나 기를 꺾을 수 있는 것은 그들보다 더 개화된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것은 기병밖에 없었다. 그래, 기병이 더 필요하다!

그는 제후를 찾아갔다. 제후는 책임선인과 함께 경비지출에 대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번 준비에 대한 비용은 태왕이 에인에게 준 그 금으로 대치했지만 제후도 상당액을 내놓았고 그때부터 두 사람이 지출과 재정문제를 담당해왔다.

강 장수가 제후 옆에 앉으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이제 딜문 주민들은 자치적으로 수비를 담당할 때가 되었지요?"

책임선인은 슬며시 자리를 떠주었고 제후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오만, 어서 본론을 말해보시지요"라고 되물었다.

"아시다시피 다음 전투는 시파르 때와는 다릅니다."

강 장수가 운을 떼자마자 제후는 얼른 진지해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제후도 이제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전에는 늘 비밀 한 타래를 간직하고 그 꼬리로 상대를 조정하거나 이야기하려 들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에인과 그 참모들의 성격은 단순할 만큼 정결해서, 탐색과 조정에 능한 자기 성격으론 이들과 융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강 장수가 뒤를 이었다.
"그곳은 인구도 군사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이제는 우바이드를 앞질러 남쪽 최고의 도시가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 전투에는 딜문에 남아 있는 기병들까지 합류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병 50을 전부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러지요. 힘은 항상 쓰이는 곳으로 이용하라고 했으니…."
"고맙소이다. 한데 시간이 촉박하오. 당장 떠날 수 있겠소?"
"오늘 떠난다면 사흘내로 돌아올 수 있소이다."

그리고 제후는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켜주었다. 사실 이번에는 제후의 역할도 컸다. 그는 먼저 각 도시에 흩어져 있던 환족용병들을 찾아다니며 침략직전 합류한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그 인원수는 별거 아니라 해도 그들은 이 지역에 눈이 밝은데다 상대군사들의 용병술을 알고 있어 한 사람이 보병 50명 몫은 할 것이었다. 그밖에도 제후는 군량을 조달할 때 장소나 흥정 그 모든 것을 도맡아 처리해주었다. 에인의 말처럼 현지를 아는 사람이라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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