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서 온 편지, 나무에게 쓴 편지

도서관 '글쓰기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2)

등록 2004.08.08 00:25수정 2004.08.08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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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나무안준철
도서관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만 합니다. 연일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차를 사버리고 싶은 강한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잠시 가로수 나무 그늘에 서 있다 보면 차를 사고 싶던 마음이 저만큼 달아나 버립니다. 얼마 전에 책에서 읽은 이런 글귀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너무 아픕니다. 탁한 공기에 찌들고 사람들의 학대에 병들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도 무척이나 벅찹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나무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좋아하긴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사용할 만큼 나무를 아끼고 나무를 위해 무언가 일을 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읽은 한 권의 책 속에서 동화적인 상상력으로만 여겼던 나무의 아픔과, 그 아픔에 예민했던 한 사람을 만나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저는 도서관 '글쓰기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먼저 해준 뒤에 책 내용 중 두어 장을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글을 잘 쓰려면 무엇보다도 '착한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을 설마 까먹지는 않았겠지요? 얼마 전에 정말 착한 마음을 품고 사는 분을 알게 되어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나무를 너무 너무 사랑해서 '나무 의사'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지신 우종영 선생님이세요. 늘 입버릇처럼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나무에게 배웠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시지요.

아직도 나무에게 빚진 것이 많다고 여기시고 나무가 더 이상 아프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계신답니다. 오늘 여러분께 소개할 글은 우종영 님이 펴내신 <나무야, 나무야 왜 슬프니?>라는 책에서 뽑은 글입니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여러분이 답장을 한 번 써보세요."

나무에게서 온 편지


나무
나무안준철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지구별에서 '인간'이라는 생명체 곁에 살고 있는 참나무입니다. 저를 잘 모르겠다고요? 하지만 제 열매는 잘 알 겁니다. 다람쥐 양식이 되는 도토리가 바로 제 열매거든요. '엄마야 누나야'라는 노래를 보면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갈잎이 바로 제 이파리를 두고 하는 말이랍니다. 노래로 불릴 만큼 인간들과 친한 덕에 저는 그 어떤 나무보다 가까이서 그들의 삶을 지켜봐왔지요.

제가 지켜본 사람들은 세상 그 어떤 생명체보다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손목에 시간을 잘게 나눠놓은 둥근 기계를 차고, 항상 이렇게 말하지요.


"바쁘다 바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어. 시간은 왜 이렇게 짧은 걸까?

저는 처음에는 무척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바쁘고 정신이 없는 걸까? 그래서 찬찬히 그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았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한시도 손을 놓지 않고 바쁘게 사는 것은 '자기 것'을 갖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지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나, 너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것 : 내 것, 네 것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 '내 것'이 '네 것'보다 많은 것

나무
나무안준철
사람들은 정말 이상합니다. 평생 가야 다 밟지도 못할 땅을 가진 이는 단 하룻밤 쉴 곳이 없는 이웃을 위해 한 평도 안 될 잠자리조차 내놓질 않습니다. 두 손 가득 빵을 안고 있으면서도 먹지 못해 버릴지언정 굶주린 사람을 못 본 척합니다.

저는 자라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만 씁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엔 절대 눈 돌리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취하지요. 솔직히 그렇게만 살기에도 벅차거든요. 흔히 모든 꽃에는 꿀이 있어서 꿀로 곤충을 유인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그것이 꼭 필요한 나무만 그렇습니다.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수정이 되는 은행나무나 저 같은 참나무 종류는 꿀이 없습니다. 필요하지 않기에 취하지 않는 것이죠.

목련이나 벚나무 등 일부 친구들을 빼고 대부분의 나무는 꽃이 화려하지 않습니다. 아예 꽃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고요? 꽃이라는 게 워낙 영양분을 많이 가져다 쓰기 때문에, 꽃에 신경을 쓰다보면 정말 중요한 '생존'에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살아남기를 택하고 화려함은 기꺼이 버립니다.

가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써 피워 올린 잎을 버리고 싶지 않지만 저는 과감하게 잎을 떨구어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지마저 버리는 친구도 있습니다. 무리하게 욕심을 내 잎과 가지를 지니고 있으면, 십중팔구 다음해 봄에 새 잎을 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여름이 되었다고 해서 마음을 달리 먹지는 않습니다. 물론 여름은 제가 마음놓고 자라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지요. 하지만 저는 철저하게 제가 가진 뿌리의 크기만큼만 가지를 뻗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란 가지를 감당해내지 못하니까요.

나무
나무안준철
그렇게 자라온 저는 때가 되면 담담하게 생을 마감하고 대지로 돌아갑니다. 욕심과 미련을 버려야만 미래의 어느 따뜻한 봄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테니까요. 저는 알고 있습니다. 확고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원래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더 가지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서로 싸우고, 그로 인해 스스로 행복에서 멀어지겠습니까? 오늘도 사람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가지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이건 내 거야. 누구도 가져갈 수 없어. 손대지 말라고!"
그러면서 말합니다.
"외로워, 행복하지 않아.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산에 사는 제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산에 가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바로 참나무입니다. 어떨 땐 수십 그루가 한데 모여 군락을 이루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나무들은 서로 경쟁하는 법이 없습니다. 해를 더 많이 보겠다고, 혹은 흙 속의 자양분을 더 취하겠다고 경쟁을 하게 되면, 결국 괜한 데 힘을 소모하다가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무들은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거대한 군락은 아무리 거센 비바람이나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힘을 갖추게 되지요.

나무
나무안준철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흔한 진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먼저 나서서 함께 무언가를 이루고 그로 인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법을 찾으려 들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 행복이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나와 너의 의미 있는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제 저는 정말 묻고 싶습니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거꾸로만 사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요?


나무에게 쓴 편지

나무야, 안녕! 이 글을 읽어보니까 우리 사람들이 정말 챙피했어. 욕심 부리고, 싸우고… 그런데 너희들은 욕심도 안 부리고 필요한 만큼만 쓰지? 정말 사람들이 본받아야겠구나. 너도 우리 사람들이 너의 몸을 베면 참 아프지? 미안해. 나는 나무를 발로 차고 잎사귀를 따고 그랬어. 그땐 별로 안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우리들이 이러면 나무가 얼마나 아픈지. 하지만 앞으로는 나무를 괴롭히지 않고 사랑할 거야. 너희들도 열심히 맑은 공기를 만들어주길 바래.

나무에게 편지를 쓰는 아이들
나무에게 편지를 쓰는 아이들안준철
너는 생각이 참 깊어. '생존'이란 문제 때문에 기꺼이 화려함을 버리다니! 사람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일 거야.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을 위해서 욕심과 미련을 버렸다니! 사람보다 나은 나무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 욕심이 많아. 욕심이 많으면 오히려 조금밖에 얻지 못하는데 그걸 모르나봐. 아무튼 앞으로는 나무를 사랑하고 아끼고 너희들은 맑은 공기를 만들어주면 돼. 그럼 안녕!

참나무야, 안녕! 너희 참나무들은 참 좋겠다. 정말 행복해서. 우리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나는 나무가 참 고마워. 우리들에게 책과 공책, 종이 등 많은 것을 나눠주기 때문이야. 너희들은 아프겠지만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니? 우리도 함께 무언가를 이루고 그로 인해 모두가 행복해지는 법을 찾으려고 노력할 건데 사람들이 이 의견에 OK할까? 그게 궁금해. 우리들이 말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생각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 편지에 거꾸로 사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걸까요? 라고 써져 있지. 사람들은 자기만을 생각하고 자기가 힘들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등 자기만을 위하기 때문이야. 너희 나무들이 우리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럼 안녕!

아이들
아이들안준철
안녕! 나무야. 내가 너한테 사과할게. 왜냐하면 난 나무를 쓰레기 버리듯이 행동했거든. 넌 참 힘들겠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난 집에서 따뜻한 온도에 컴퓨터나 TV를 보고 있는데 넌 춥게 밖에만 있잖아. 내가 지금 쓰는 이 종이도 나무가 만들어 낸 거잖아. 너한테 참 고마워. 근데 난 종이를 함부로 써. 그림 그리고 나서 못 그렸다고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어버려.

넌 우리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만 우리들은 나무를 함부로 대해서 정말 미안. 화가 나면 발로 차고 어쩔 때면 잎을 따서 찢어버리고. 나무야 이제부터라도 나무를 사랑하고 아낄게. 나무야, 넌 말을 못한다고 함부로 대하지만 너도 숨을 쉬고 사는 생명체잖아. 그럼 안녕!

나무야, 내가 지금까지 너를 식물이라고 쉽게 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던 게 너무 미안하다. 우리 사람들이나 지금 살아 있는 나무들이나 생명은 똑 같은데 말이야. 너희들도 아프다는 건 알지만 순간 순간 나도 모르게 생각이 바뀌어… 그리고 사람들은 정말 왜 그럴까? 가끔 착한 사람들도 그러더라. 물론 나쁜 사람들은 더 심해!

나도 선생님이 나무를 베어서 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는 나무들이 불쌍하지 않았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 한 것 같애. 그 나무가 두충나무였는데, 그 나무가 몸에 좋다는 말에 홀린 것 같애. 앞으로는 너희 나무들은 보호하는 그런 착한 사람이 될 거야.

아이들
아이들안준철
나무야, 안녕. 나는 도시에 살고 있어. 그렇게 서울처럼 큰 도시는 아니고 도시랑 농촌이랑 같이 있어. 나도 나무를 기르는 것을 좋아해. 그런데 너무 미안해. 네 동료인 가로수 은행나무를 비오는 날 재미있다고 발로 차버린 적이 있어. 그때는 그냥 재미로 찬 것인데,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듣고 깊이 깨달았어. 나무도 우리와 같은 생명체인데 그리고 나는 토토리묵을 제일 좋아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나무들은 어떻게 해주면 좋아해? 정말로 궁금하다.

나무야, 난 너를 못살게 굴었던 적이 있어. 지금 너의 몸통을 베어 너의 몸에 글을 쓰고 있어. 너희 나무들은 우리에게 많은 이로움을 주는데 우리들은 너희들에게 아픈 고통이나 주고 너무 미안해. 산불이 났을 때 동물들은 모두 산을 빠져나가는데 나무들은 움직이지 못해 더 아픈 고통을 겪고… 그래도 이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많아.

내가 3학년 때 선생님은 학교에 있는 꽃들과 나무들을 보시면서 "잘 잤니?"하고 물어보셔. 나도 선생님이 부러웠지만 쉽게 되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로 노력할 꺼야. 그럼 참나무야,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조심히 살렴.

아이들
아이들안준철
안녕! 나는 너와 같이 지구라는 곳에 사는 인간이야. 난 우리 나라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순천에 살고 있어. 우리 순천은 깨끗한 도시로 유명한 곳이지. 예전엔 나무도 많고 논과 밭도 많았단다. 하지만 도시로 바뀌어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참나무야, 우리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너희 나무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만 너희들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 희생을 하고 있어.

너희들이 없으면 우리 인간은 살수 없을 거야. 지금 쓰고 있는 이 종이도 그렇고, 휴지, 식탁, 의자 등등 너희들이 다 제공해주는 것이지. 또 지금 우리 나라는 폭염으로 인해 얼마나 더운지 몰라. 하지만 나무 덕분에 시원한 그늘에서 더위를 식힐 수가 있지. 넌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이지 안식처야.

P.S. 답장은 못 보내겠지? 그럼 바람으로 알려주길 바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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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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