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건달들이여, 시인이나 농부가 되자

장진영 지음 <삽 한 자루 달랑 들고>, <무논에 개구리 울고>

등록 2004.08.09 22:27수정 2004.08.2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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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이란 뭘까요. '건달 농부의 농사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두 권의 만화책을 집어들고서 저는 제일 먼저 그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내용을 보기도 전에 말이지요. 한 포탈사이트에서 지식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의 유래가 나오네요.

"'건달'은 한자로 건달(乾達). 아무 가진 것도 없으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난봉을 부리거나 허풍을 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불교용어 건달바(乾達婆)에서 유래했다. 건달바는 수미산(須彌山) 남쪽의 금강굴(金剛窟)에 살면서 술과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고 香(향)만 먹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음악담당 신(神)이다.

그래서 건달바는 인도에서 음악 혹은 예능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한동안 그런 뜻의 말로 행세했다. 그러나 예인(藝人)을 천시했던 이 땅에서는 견뎌내지 못하고 건달바는 건달이 되었고 그 뜻도 오늘날 두루 쓰이는 뜻으로 변질되었다."


운동권의 각종 홍보물에 그림을 그렸고, 노동자신문 등에 연재 만화를 실었으며, 만화단체를 만들어 운동을 주도했던 만화가 장진영 선생. 198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흔히 노동문화 또는 민중만화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이름의 하나가 바로 '장진영'이었지요.

그러던 분이 온 가족을 데리고 조용히 귀농을 하셨더군요. 1995년입니다. 전세금 1800만원과 은행 융자돈을 털어서 줄곧 살았던 인천을 뜬 거지요. 강화도 도장리에 보금자리를 틀고서 농사짓고 술 마시고 만화 그리며 사신 이력이 벌써 십 년 세월이 되었네요.

두 권의 만화책을 보면 장진영 선생 가족이 농촌의 이웃들과 어떤 나날을 보냈는지 '느낌'이 옵니다. 단숨에 팍 후벼파는 표창처럼 꽂히는 게 아니라, 장면 장면 음미하는 매순간 독자의 발끝을 적시면서 서서히 온몸을 물들이며 올라옵니다.

민중만화를 그렸던 시절의 거칠고 투박한 필체가 곧장 가슴을 터뜨리는 도화선 같았다면, 따뜻하고 은은하며 담백하게 변한 이번 만화는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훔치는 손길 같더군요. 시골만화 혹은 농촌만화의 새 장르를 개척했다고 해도 될 만큼 독보적이지 싶습니다.

1권 <삽 한 자루 달랑 들고>는 도시에서 살다온 초보 농민의 어설픈 도전이 어떤 것들인지, 한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농민의 깊은 좌절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선생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농민들이 몸소 치렀던 사건 하나하나를 되짚어가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시장 원리에 종속된 농사가 봉착하는 문제를 한 분 한 분의 농민이 어찌 견디고 사는지를 엿보는 기분이지요.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품게 되는 지극히 소박한 희망과 작은 웃음들이 무엇인지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2권 <무논에 개구리 울고>는 도장리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이지요.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사는 아이, 장가 못 간 노총각, 가부장적 불평등을 갖고 사는 농촌의 전형적인 부부, 농법을 두고 벌어지는 신구 세대의 갈등 등 동네 사람 저마다의 사연들을 아기자기하게 소개합니다.

도장리 집집마다 일일이 방문해서 살아가는 이야기 한 토막씩 귀동냥하는 셈인데, 만화의 형식과 말풍선의 내용이 자연스러워서 정겹기 그지없지만 꾹꾹 눌러놓은 속내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습니다.

해서 농촌 고향을 잊지 못하는 도시의 어르신들, 본인과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며 귀농을 생각하는 부모들, 지금 이 시간 농사를 지으며 한숨 쉬는 농민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지요.

장진영 선생은 전국 농촌 마을을 순회하며 원화 전시회를 벌이면 얼마나 좋을까 궁리하고 있더군요. '찾아가는 문화예술'이니 '콘텐츠 진흥'이니 나라에서 적잖은 돈을 지원하는데, 이런 데에 꼭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장진영 선생은 왜 자신을 '건달 농부'라 하고, '건달 농사'라는 말을 사용했을까요? 두 권의 만화책을 읽다보면 누구든 슬쩍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진짜 농사꾼처럼 온종일 농사를 지으며 살지 못하는 계면쩍음이랄까, 농촌에서 만화를 그리며 사는 미안함이랄까, 그런 마음을 살짝 걸쳐놓은 표현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건달이라는 말이 워낙에 강해서 그 정도의 이해만으로는 성이 차질 않더군요. 장진영 선생에게 물어보았지요. 대답인즉 이랬습니다.

"빌린 400평 논밭에 막 농사를 짓기 시작한 주제에 돌맹이 치우다가 하루 다 가고, 제조체 안 쓰고 풀 뽑는데 하 세월이고, 그 때마다 '뭐, 돈 되는 농사 없나?'하고 두리번거리게 되는 자신의 속성을 절감했다."

듣고 보니 귀농한 도시인은 '진짜 농부' 앞에서 모두 '건달 농부'가 아닐 수 없겠더군요. 확대하면 도시에 사는 우리는 모두 건달이구나 싶었지요. 할인매장이나 편의점 또는 재래시장에 가서 돈주고 사먹으면 그만인 농산물에 대해, 생명의 곡식을 만드는 농사를 우리는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고 삽니까.

장진영 선생처럼 직접 농촌에 삶의 터전을 옮기고 덤벼봐야 "농사란 게 사람 뜻만으로 되는 게 아녜요. 하늘이 돕고 땅이 도와야 되는 게지"하는 나이 드신 농부의 말귀를 겨우 알아듣는 신세니, 10년 짭밥의 '건달 농부' 장진영 선생 앞에서 저 같은 도시인이야 완벽한 건달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우러져 돌아가는 농사 앞에서 도시의 모든 상거래는, 아니 자본주의 시장에 충실하게 맞춰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본질과 외피는 건달이라는 말 한 마디에 집약되는 것 같더군요.

"가진 것도 없으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난봉을 부리거나 허풍을 치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건달이라면 말이지요.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줄 알았던 나도 농사 앞에서는 난봉이나 부리고 허풍이나 치는 건달에 지나지 않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요, 건달이라는 말이 본디 예술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건달바'에서 나왔다는 유래를 알고 나니 '건달 농부'라는 표현이 더욱 예사롭지가 않게 다가옵니다.

이게 뭘까 싶다가 문득 김수영 시인의 산문 '반(反)시론'(1968년)에 나오는 다음 구절과 뒤엉키면서 줄곧 안으로만 파고들며 아리송했던 제 옹알이가 숨통을 트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농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삽질을 한다. 진짜 농부는 부삽질을 하는 게 아니다. 그는 자기의 노동을 모르고 있다. 내가 나의 시를 모르듯이 그는 그의 노동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거창하게 인류의 기원과 역사를 거론할 것도 없이, 그러니까 한마디로 잘라 말해서 오리지널 아트는 예나 지금이나 바로 농사이고 오리지널 아티스트는 농민인 겝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냥하고 채집하던 시절의 예술이 나오겠지요.

그들이 바로 오리지널 건달(바)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상호 작용하며 돌아가는 세계, 바로 우주의 예술을 펼쳐 보이던 때이겠지요. 달리 예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사가 곧 예술입니다. 스스로 예술이네 아니네 의식할 이유가 없었을 시절이겠지요.

근대화·산업화·도시화로 요약되는 자본주의 발전의 무한궤도에 들어서고 나서 사람들은 농사가 아닌 예술을 따로 만들었고 '돈 안 되는 농사'와 마찬가지로 '돈 안 되는 예술'을 천시했습니다. 오직 '돈 되는 농사'와 '돈 되는 예술'로 나아갔지요.

이때부터 농민은 예술을 빼앗기고 예술 앞에서 소외당했으며, 돈을 못 만드는 예술가는 전부 건달 신세가 되었던 게지요. 이점에서 '건달 농부'는 건달의 역사를 바로 쓰는 전환기적 존재의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자신이 진짜 농부가 아니기 때문에 부삽질을 한다고 했지요. 부삽질을 의식한다는 말입니다. 다만, 자신은 자신의 시를 모른다고 자부하고 있네요. 마치 농부의 농사처럼 말입니다.

장진영 선생이 스스로를 '건달 농부'라고 부르는 것은, 농사를 의식하고 사는 반쪽짜리 농부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자 예술 본래의 완전한 세계를 호흡했던 농부로 거듭나는 와중에 있음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요?

건달이란 누굴까요. 농사와 멀어질수록 잘 사는 것이라고 믿어온 문명 아래 모든 사람들이 건달이지요. 우리는 너도나도 건달이 되어 농사와 농민을 업신여기며 살아왔습니다. 다행히도 몇몇 사람들이 다시금 농민이 되기 위해, 농사를 하기 위해 돌아가기 시작했지요. 그 소수의 행렬이 이제 제법 세를 이룰 만큼 뜻을 모아 가는가 봅니다.

<건달 농부의 농사일기>는 예술가에서 건달로 전락했다가 다시금 예술가(건달바)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귀농의 참뜻과 산적한 숙제를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세상의 건달들에게, 시인이 되든지 농부가 되든지, 아니면 시를 쓰든 만화를 그리든 노래를 하든 '건달 농부'가 되라고 알려주는 것이지요.

'삽 한 자루 달랑 들고' 부삽질을 의식하면서 농민으로 돌아가기를 시작하라고 말이지요. 그조차 의식하지 않는 진짜 농부를 스승 삼아서 말입니다.

삽 한자루 달랑 들고

장진영 지음,
행복한만화가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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