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에서 만난 문화재 약탈 흔적들

삶의 몸부림 배어 있는 길, 실크로드를 따라 (1)

등록 2004.08.18 10:21수정 2004.08.1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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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7일부터 8월 5일까지 가족과 함께 실크로드를 따라 9박 10일 동안 다녔습니다.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몇 차례로 나눠 올립니다...<필자 주>

입이 딱 벌어질 만한 아름다운 경치도, 화려한 역사 유적지도 없는 실크로드를 따라 9박 10일 동안 길을 나섰다. 이 길에 삶의 몸부림이 그대로 녹아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현실의 삶은 늘 가혹하기만 하다. 그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사람들은 몸부림을 친다. 그러한 몸부림이 치열할수록 모험으로 이끄는 묘한 유혹의 손짓은 사람의 마음을 더욱 더 강렬하게 충동질한다.

천 년 전 이 길을 나섰던 사람들은 낙타에 가득 실은 비단만큼 그 꿈도 컸을 것이다. 그들은 왜 하필 비단을 싣고 이 길을 나섰을까? 9박 10일 동안 이 길을 기차를 타기도 하고 때로 버스로 가면서 비단일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서역에는 비단이 매우 귀하였기에 비단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신분을 과시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 곳으로 중국의 비단을 가지고 가기만 하면 한몫을 단단히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값을 후하게 받을 수 있다 할지라도 무겁거나 쉽게 손상이 가면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단은 가볍기도 하지만 변하지 않고 손상도 쉽게 가지 않으니 딱 들어맞다.

a 실크로드 가는 길, 천 년 전에 낙타가 다니던 길에 이제 차가 다니고 있다.

실크로드 가는 길, 천 년 전에 낙타가 다니던 길에 이제 차가 다니고 있다. ⓒ 정호갑


하지만 그 꿈은 생명을 담보로 한 모험이다. 그 어떠한 표지도 없는 곳을 낮에는 해, 밤에는 별을 보며 단지 방향을 찾아가야 하는 길, 목축일 물 한 모금도 얻을 수 없는 길, 때로는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도적을 두려워하며 걸어가야 하는 길을 그들은 성공하고 돌아올 때 그 꿈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걸어가야만 했다. 그러한 그들이기에 안전을 신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혀 예술 작품이 형성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막 한 가운데 이러한 인간의 바람이 그대로 아로새겨져 있다. 사막 예술의 보고라 일컫는 돈황의 막고굴과 트루판의 천불동이 바로 그 곳이다.

여기에 새겨져 있는 많은 벽화나 조각들은 예술에 대한 열정에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목숨을 건 험난한 여정을 신에게 의탁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수행을 위해 스스로 삭막한 곳을 찾아 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한 마음에서 이루어졌다.


그러하기에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조각이나 불상들은 다른 데서 볼 수 있는 예술품처럼 화려하지 않다. 그렇지만 풀 한 포기 물 한 모금 없는 황량한 사막에 오직 삶에 대한 집념, 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고픈 간절한 마음이 예술로 승화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그저 신비롭다.

a 막고굴 들어가기 앞서 찍은 단체 사진(막고굴에 들어가서는 사진 촬영 금지)

막고굴 들어가기 앞서 찍은 단체 사진(막고굴에 들어가서는 사진 촬영 금지) ⓒ 정호갑

하지만 막상 굴 입구로 다가서면 그 신비로움과 기대감은 바로 안타까움과 분노로 바뀌고 만다. 막고굴과 천불동의 많은 조각품과 벽화들은 약탈꾼들이 통째로 떼어가고 오려갔다.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범법을 넘어 영혼을 마구잡이로 짓밟는 폭력이기에 그만 숨이 탁 막히고 만다.

막고굴 한 쪽에 전시관을 만들어 그 약탈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여 놓았다. 안내원은 소리를 살짝 높여 은연 중에 우리를 분노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100여년 전에 이루어진 자기네 문화 약탈에는 이렇게 흥분하는 그들이지만, 정작 오늘 우리 역사에 그들이 가하고 있는 폭력을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이른바 문화가 앞섰다는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의 박물관과 도서관에는 여기서 도굴해 갔던 많은 조각품과 벽화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이 문화를 이야기하고 자기네 도서관과 박물관에는 세계의 희귀하고 진귀한 보물들이 많이 있다고 자랑한다.

a 천불동 겉모습(속은 사진 촬영 금지)

천불동 겉모습(속은 사진 촬영 금지) ⓒ 정호갑


그러나 아무리 역사적 가치가 있고, 예술적 가치가 뛰어났더라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것은 제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가 제대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문화란 삶을 밑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기에 삶이 다르면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음식들도 지역에 따라 많이 다른 것이다.

열대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독한 술은 매우 치명적이다. 하지만 추운 지역에서는 독한 술로 추위를 달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도수가 높으면 열대 지방에서 그 술은 명주로서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삶이 완전히 다른 문화를 엉뚱한 곳에서 두고 그 예술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삶에 대한 몸부림으로 막상 모험의 길에 들어섰지만 그 길이 너무 두려웠기에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또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신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혼신을 받쳐 신의 모습을 새기고 조각하였으리라. 이런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 바로 막고굴과 천불동의 벽화와 조각품들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사막 예술품들이 문화가 완전히 다른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갇혀 있으니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막고굴과 천불동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왕오천축국전, 직지심경, 규장각의 많은 책, 불국사 다보탑의 돌사자 등과 같이 많은 우리 문화유산도 해외에 있다. 하지만 약탈해 간 그들은 돌려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야만을 자랑하고 있다. 희귀하고 진귀한 그리고 각 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이제 희귀하고 진귀한 각 나라의 유물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 박물관을 세계의 박물관으로 부르는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들은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게 되었는지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지막지한 약탈을 일삼았다는 증거이기에 도적의 박물관으로 인류의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

문화유산은 한 겨레의 자산인 동시에 인류의 자산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약탈해 간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제 자리로 돌려주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세상 물정은 모르는 한낱 필부는 어리석은 꿈을 꾸었다. 문화유산 제자리 찾아 주기 운동이 세계적으로 일어나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제자리에 놓여 그 빛을 발하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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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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