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는 내 삶의 활력소"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68]<인터뷰>홍어발효 신명장 박정현 사장

등록 2004.08.26 19:46수정 2004.08.2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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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홍어 매장에서 젊은 남자분이 박정현 사장, 일하는 아주머니와 부인 그리고 홍어클럽 회원 ⓒ 김규환

목포 신시가지 석현동 그의 매장 근처에 가면 향긋한 홍어냄새가 난다. 애써 향긋하다고 하는 건 처음 맡는 사람에게도 박하 향(香)이나 자연산 멍게 향내가 난 듯하기 때문이다. 일반 어물전에 가면 갖가지 생선 비린내가 뒤섞여 한 겨울 빼곤 악취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여긴 홍어 삭힌 내음이 하늬바람을 타고 솔솔 퍼진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들어갔다. 부인과 아주머니가 주문날짜에 맞춰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바닥엔 얼린 홍어를 해동하기 위해 몇 마리를 꺼내 놓았다. 인사를 대충 마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는 걸 마다하고 항아리가 있는 숙성고(熟成庫) 냉장실 안을 구경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순간! “헉!”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러나 그도 잠시뿐이다. 이내 막혔던 담배와 해소에 절었던 기도가 열리고 칼칼한 목구멍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숨만 막히면 1~2분 참으면 된다. 여기까지는 늘 접해왔던 상황이고 오히려 잠자던 내 몸을 일깨워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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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홍어!(5405) ⓒ 김규환

곧바로 새로운 상황에 봉착하고야 말았다. 눈이 매워 똑바로 뜰 수가 없다. ‘어? 뭐가 있기에 이토록 매운 거야?’ 말도 할 수가 없다. 항아리 예닐곱 개에 함지가 네 개 있는데 건조하고 매운 기운이 눈앞을 가리니 빠져 나가고 싶은 맘뿐이다. 황급히 뛰쳐나왔다. 홍어가 원래 이렇게 매운 건가? 다른 뭐라도 넣은 건가?

내 인내력은 그것밖에 안되는 건가. 다시 용기를 내서 들어갔다. 최루탄 가루 자욱한 뜨끈한 화생방 교육장으로 들어가는 떨림 바로 그것이다. 생전 처음 당하는 차가움 속의 매운 냄새는 고추방앗간 매캐한 냄새와도 다르다.

옷은 벌써 홍어 냄새로 절었을 터. 억지로 참고 이것저것 뒤적여 보았다. 항아리를 열어봤다. <남도홍어> 박정현 사장 허락도 받지 않고 술 단지 뒤지듯 관찰해 들어갔다. 그러나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독 안엔 부위별로 잘라 넣은 홍어와 수분조절을 위한 종이와 헝겊뿐이다. 그렇다면 이 매캐함은 홍어 자체에서 나오는 암모니아란 말인가. 수학여행 때 화학비료 공장에서 차마 눈을 뜨지 못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여기가 전북대학교 두재균 총장께서 “홍어 맛을 평정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대부분이 주문해 먹는 절대미각 <남도홍어>가 탄생하는 산실이라니!

여섯 평 쯤 되는 냉장실 안에 서있던 나는 행복했다. 지린내도 아니요, 밋밋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와 입에 찰싹 달라붙는 맛을 이렇게 전통방식으로 재현하다니! 여기서 쓰는 홍어는 흑산도 홍어 다음으로 쳐주는 칠레산이지만 대한민국 남도 목포에 와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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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가 정확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게 정성 아닌가요? ⓒ 김규환

박 사장의 식견은 만만한 걸 “앗싸! 홍어”로 둔갑시켰다. 도깨비와 화투패라도 돌린 건지 전화번호도 “5405”로 정했다. 이제 39세인 그가 32살 아내와 홍어 가공유통업의 대부가 되려고 한다.

이력을 잠깐 볼까. 7년여 가격파괴 횟집을 운영하다보니 집안과 아이들에게 소홀해지더란다. 안 되겠다싶어 과감히 대박을 터트리던 횟집을 닫았다. 그 다음에 손을 댄 것이 홍어다. 처음엔 영산포에서 홍어집을 운영하던 누이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시설을 하고 실험을 거듭한 끝에 그가 터득한 가장 적당한 온도를 찾아냈다. 게다가 항아리에 넣어 삭히니 물러지는 법도 없고 일정하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온도계를 세 차례나 훔쳐보았다. 목포에 갈 때마다 갔으니 네 번이겠다. 이건 사실 특급 비밀에 속한다. 겨울철과 봄가을엔 섭씨 4~5도를 유지하고 바깥 날씨가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여름엔 1~2도 까지 낮춰 ‘세월아 네월아’ 하며 삭힌다.

박정현 사장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까닭은 뭘까? 한 때 영산강 하구에 둑을 막으면서 남도엔 홍어시장이 죽다시피 했다. 거대한 산업화 물결에 호남 인구는 급격히 줄었고 따라서 대사 치르는 집에 가보아도 예전처럼 홍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십수 년에서 20여 년이 흘렀다. 사람들에게 홍어는 잊혀진 과거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하찮은 음식이 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신안 앞 바다에 홍어 씨가 마른 것도 한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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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열렸던 7월 정기모임에 참석한 남도홍어 사장 ⓒ 김규환

그가 선택한 방법은 단 한 가지. 제대로 된 홍어로 입맛을 사로잡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캐나다, 우루과이, 호주에서 들어오는 희멀건 하고 대충대충 삭혔거나 화장실 냄새에 가깝도록 맛을 버려놓은 홍어가 아닌 욕먹지 않는 홍어로 자연스레 홍어 찾는 인구를 늘려가자는 전략과 계획 말고 뭐가 있겠는가.

음식이란 게 뭔가. 모름지기 음식 장사란 첫째도 맛이요 둘째도 맛이다. 어떤 이는 "맛없는 음식을 가지고 왜들 장사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나도 맞장구를 칠 때가 많다. 사실 맛이 첫째요, 그 다음이 서비스나 친절인데 시설만 번드르르 해놓고는 원칙을 무시하면 한 끼 값이 아니라 울화가 치밀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박정현 사장은 세상에서 흑산도 다음으로 좋다는 지구 반대편 칠레산 중에서 최고품을 컨테이너로 넘겨받아 절반은 소매업자에게 넘긴다. 나머지를 가지고 100여 홍어 전문점과 개인 주문자에게 삭혀서 공급한다.

어디 가서 물어보라. 홍어를 아직도 항아리에 삭히느냐고? 아마도 미쳤다고 하거나 콧방귀를 뀌고 말 것이다. 나도 3년째 홍어에 미쳐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봤다. 실태 파악은 금방 되었다. 간혹 집에서 쓸 것만 조그만 김치단지에 박아두는 건 보았지만 공장이나 다름없는 이런 업소에서 홍어를 신주단지 모시듯 정성을 다 하는 모습은 아직껏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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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 ⓒ 김규환

선명한 빛깔과 씹을수록 은근히 꼬드기듯 톡 쏘는 그 맛에 텁텁한 탁주 한잔 걸치지 않으면 걸쩍지근하다. 사시사철 변함없는 <남도홍어>가 있음에 우린 가정집에서나 대도시에서 또는 궁벽한 시골에서도 똑같은 맛을 느끼며 행복에 절어 살고 있다.

순하게 생긴 사람에게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건 반드시 한 우물을 파다보면 용솟음치는 샘물이 펑펑 솟구친다는 진리를 터득하고 있음이리라. 이런 장인정신을 발휘하면 뭔들 맛없을까.

그와 함께 손뼉을 마주치는 반려자는 막내 며느리면서도 매장 운영과 시부모님에 아이 둘까지 돌보면서 이런 일을 해내고 있다. 든든한 이 정도의 배경이면 뭔들 못할까. 그는 홍어에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고 한다. 연구를 거듭하여 이 분야 최고의 실력자가 되는 게 꿈이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홍어! 이 홍어처럼 늘 변치 않기를 바란다. 이런 소중한 친구를 둔 나는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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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산 남도홍어도 이렇게 좋습니다. ⓒ 김규환

남도홍어 사장 박정현 씨 인터뷰 전문

- 경력과 이력을 간단히 말씀해주시죠.
"별로 말씀드릴 게 없는데요.(쑥스러워 함)"

- 몇 짼데 어른들을 모시는지?
"3남2녀중 막내입니다. 허나 형님들이 서울, 군산 등 외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같은 목포에 사는 제가 모시는 것이 당연하지요!"

- 올 해 서른아홉이죠? 남들은 홍어하면 나자빠지든가 도망가는 경우가 많은데 홍어 도매와 소매를 하시네요?
"홍어를 좋아하기 때문이며 아버지와 누님의 도움이 컸지요."

- 몇 살 때 시작하였나요?
"제가 직접 한 것은 삼년 됐으니 얼마 되진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수산업만 평생을 하셨지요."

- 홍어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자연스럽게 접했지요. 이쪽 사람들 다 그런 거 아닙니까?"

- 횟집을 몇 년 하신 걸로 나오는데 성업이었다면서요? 그런데 왜 정리를 했나요?
"칠년을 했지요. 횟집은 직접 활어차를 몰고 산지로 물건을 수집하러 다녔습니다. 또한 회도 손수 떴으며 집사람이 거의 주방을 보다시피 했기 때문에 인건비도 절감됐고 목포에서 가격파괴를 처음으로 했으므로 엄청 잘됐지요. 싸면서 스끼다시(바탕안주)도 많았으며 그에 따른 노하우도 많지요. 하지만 저녁시간이 전혀 없고 얘들은 어린관계로 가정교육 및 개인적인 시간이 너무 없고 대인관계가 운영하던 횟집에서만 이루어진다는 단점 등…. 그래서 땅주인이 땅을 판다고 할 때 과감히 때려치우고 업종전환을 했지요."

- 일본 생활도 했던 걸로 아는데….
"일본에서 한 삼년 살았는데 첨에는 유학비자로 가서 일본어 일급자격증만 건지고 왔지요. 파칭코에 빠져 살다시피 했습니다. 실패한 유학생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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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칠레산과 비교해 보세요. 이건 흑산홍어 삭히지 않은 거랍니다. ⓒ 김규환

- 먹고살만 합니까? 구체적으로 홍어만 하는데 매출이랄까…. 거래처는 얼마나 확보를 했는지? 대표적인 곳 몇 곳 소개와 개인이 집에서 주문해서 먹는 단골은 누군지 공개할 수 없나요? 중독된 사람을 중심으로.
"개인들도 많이 있지만 크게 매출에 영향을 주진 못합니다. 목포내의 거래처에서 30%, 나머지 외지 거래처가 70%의 비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홍좋사모 회원 중에서는 성희짱이 제일 많이 시키시죠. 그외 '한다', '구리짱', '동범'님 등등."

- 도매(콘테이너)와 삭혀서 칼질까지 끝내서 보내는 소매업 비중은 얼마나 되는지?
"식당에 들어가는 것도 식당주인들의 특색에 맞춰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되기 때문에 4대6정도로 보면 되겠네요."

- 아참, 그런데 특이하게도 반려자가 경주 출신인데 말소리를 들어보니 어느새 목포 말에 가깝더군요. 어떻게 만났고 홍어 만진다고 했을 때 반대나 어려움은 없었는지? 만난 계기부터 현재 생활까지 소개 좀… . 편찮으신 어른들 모시는 것까지.
"서울에서 회사를 잠깐 다녔는데 경주에 출장 나가서 알게 되었지요. 첨에는 나이차가 많고 거리가 멀어서 반대가 심했지만. 그래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홍어한다고 반대는 없었지요. 부모님 모시고 사는 데는 무척 고마움을 느낍니다. 어린 아내가 대견스럽습니다."

- 남도홍어라는 간판을 달고 도∙소매업을 시작한 지가 얼마나 되지요?(몇 년 몇 월부터)
"시작한 지는 삼년 정도 되었지만 누님이 오래전부터 하고 계셔서 비법을 그대로 전수받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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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로 시키면 다음날 배달되는데 3만원이면 10명이 너끈히 먹습니다. ⓒ 김규환

- 남도홍어를 먹어보면 소위 때깔과 맛이 일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모임에서는 남도홍어를 오히려 웬만한 국산홍어보다 더 쳐줘요. 잘 삭힌 경우 흑산 홍어 못지 않던데 비결이라면?
"귀찮아도 항아리에 숙성시키며 일정한 온도와 날짜 등등을 꼼꼼히 체크하고 맛을 봐야 되며 먼저 무역회사로부터 최상품을 구입해야 합니다."

- 아 그래요. 전통방식을 고집한다구요? 숙성실에 들어가 보면 코와 목구멍 눈이 탁 막혀서 숨쉬기 곤란한데 그게 비결인가요? 첨가물은 따로 없구요? 삭히는 과정에서 뭐가 제일 중요한가요?
"첨가물은 전혀 없습니다. 항간에 약품을 치니 어쩌니 하는데 약품을 치면 큰일 나지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숙성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정성 아닐까요?"

- 전북대 총장님께서 맛을 평정했다고 하는데 비결은?
"과찬입니다. 더 노력해야지요. 평생을 연구하고 노력해야지요."

- 개인적으로 저도 홍어 먹느라 2~3년 절어 사는데 홍어를 직접 만지고 삭히는 박 사장님은 어떤 기분? 혹 중독은 안 됐는지? 옷에서 냄새가 난다든가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세요. "냄새야 옷에서 나고 차에서 나고 일 끝나고 어디를 가든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사무실이 좁은 관계도 있지만 항상 홍어를 만지기 때문이지요. 창피하거나 그런 건 못 느낍니다. 생업을 창피하게 생각할 순 없으니까요."

- 얼마 전 일 하는 분을 한 분 늘리셨습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앞으로 계획을 말씀하시죠? 서울 진출이라든가.
"저는 밖으로 돌아다니며 영업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할 필요를 느꼈기에 사람을 썼지요. 개인적으로 프랜차이즈는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리고 작년 <남도홍어>라는 간판을 달고서 영업을 시작한 곳이 두 곳이 있었지요. 홍어전문점을 운영하고 계시는 분들께 한마디 하신다면?(꼭!)
"글쎄 무료로 간판을 내주고 처음에 홍어 다루는 법, 요리법 등 거의 오픈을 도와주고도 이제 와서 한마디 말없이 거래를 끊으니 조금은 배신감을 느끼지요. 인천은 특히 더 섭섭합니다. 보증금이라도 좀 받을 걸 그랬나요. 하하."

-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대한 소감이나 활동하면서 느낀 점 또는 바라는 바는 뭡니까?
"즐겁습니다. 목포와 광주에서도 모임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 홍어는 대체 뭡니까?
"홍어는 삶의 활력소지요. 옛날에는 회충약 대신에 홍어를 먹었다 합니다. 홍어의 암모니아가 잡균을 다 죽인다고 하네요. 사람에게 해가 될 정도는 아니고요."

- 사람들이 홍어는 값이 비싸서 못 먹는다는 말을 하던데 싸고 쉽게 먹을 수 있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서민들이 먹을 수 있으면 좋도록 말입니다.
"가장 싸게 먹는 방법은 저희 같은 도매상에게 직접 구입하는 방법이 최고입니다. 그런 정보가 공개될 필요도 있지요."

- 이제 선선해졌으니 더 바쁠 것 같은데 장시간 시간 빼앗았습니다. 꼭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덕분에 잘 되고 있습니다. 홍어 모임 회장님이 있으니 더 잘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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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긴 칠레산 홍어 11kg 짜리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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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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