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65

우물 속의 얼굴 5

등록 2004.08.27 04:04수정 2004.08.2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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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가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은 하얀 보석처럼 바로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바리는 손을 뻗어 그 얼음 조각을 받아들었습니다.

그것은 보석과도 같았습니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진주보다, 세상의 어떤 조명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이전에는 한번도 보지 못한 정말 너무 너무 아름다운 보석이었습니다.


순간 바리의 앞에서 빛을 발하던 그 공기방울은 환한 빛을 밀가루처럼 물 속에 흩뿌리며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그립던 부모님의 모습도 그 공기방울과 사라지고, 손바닥에 하얗게 빛나는 그 눈물방울 몇 개만 들려있었습니다.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던 우물선녀가 말을 이었습니다.

“지리천문신장님이 주신 천주떡을 먹어보았나요?”

바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천주떡은 사람에게 놀라운 힘을 부여하는 마법의 약이 아니에요, 먹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천만 배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신비의 약이죠. 먹는 사람 안에 능력이 없다면 그 천주떡을 아무리 먹어도 효험이 없답니다.”


우물신은 그렇게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해대고 있었습니다. 의아해진 바리가 말했습니다.

“그럼… 제 안에 있는 그 맑은 샘물을 어떻게 찾아야하는데요…… 그리고 전 제 안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잘 몰라요… 전 그냥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 어린 꼬마아이일 뿐이라구요.”


“호종단도, 호종단과 함께 있는 그 불타오르는 개도 해하지 못하는 맑은 샘물은, 우리 가슴 속에 항상 흐르고 있답니다. 단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죠. 가슴 속에 흐르는 물은 어떤 역술서로도 더럽힐 수 없어요, 그 물을 더럽힐 수 있는 사람은 단지 자기 자신 뿐이랍니다.”

우물신은 잔잔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호랑이들 속에서 잠들어있던 맑은 영혼들을 보았죠? 바리는 아주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겉모습과 옷차림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는, 그 안에 들어있는 맑고 순수한 마음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바리 아가씨처럼 똑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랍니다. 그런 마음만 지키고 있다면 어느 누구와 만나도 겁날 것이 없어요. 바리 아가씨의 그런 예쁜 마음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맑은 샘물을 만들어준 거예요”

바리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자기 손에서 반짝이고 있는 맑은 보석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보석은 바리에게 무언가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보육원에서 만난 혜리의 얼굴과, 지난 번 버드나무가지를 얻으러 갔을 때 호랑이로부터 구해낸 꼬마아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대체 자기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바리는 도저히 알아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덧 우물신은 바리와 백호로부터 조금씩 멀리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물 속에서 밝게 반짝이고 있는 우물신의 옷이 더욱 환하게 빛났습니다.

“이곳 밖을 나가게 되면 바리 아가씨가 가지고 있는 맑은 샘물을 땅에 내려놓기만 하면 되어요, 그럼 그 물줄기가 호종단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거예요. 어쩌면 바리 아가씨가 호종단에게 찾아가기도 전에 먼저 나타날지도 몰라요.”

우물신은 처음 나타난 그 모습처럼 조금씩 공기방울로 변하며 물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세요. 아무리 멀고 험해도, 가야할 길은 언젠가는 도달하게 된답니다…..”

방울이 되어 사라지는 우물신이 남긴 그 말이 안개처럼 사그라졌습니다. 그러자 바리의 발 밑으로 무언가 굴러와 부딪혔습니다.

발 밑을 쳐다보았습니다. 이미 바리는 땅 위로 나와있었습니다. 우물을 지키는 나무를 꽁꽁 붙들어 매고 있던 측간신의 선물이 다시 검은 공으로 변하여 바리의 발 밑으로 또르르 굴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바리와 백호는 우물 바로 옆에 서있었지만, 나무는 더 이상 공격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성주신님의 숲에서 본 착한 나무님들처럼 그냥 가만히 서있었습니다.

바리는 그 나무에게 다가가 고개를 비비면서 말했습니다.

“저 우물을 잘 지켜주세요, 나무님.”

그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요.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나뭇가지가 파르르 떨렸습니다.

백호는 바리를 보며 말없이 고갯짓을 했습니다. 바리에게 우물에서 가지고 온 그 맑은 샘물을 얼른 땅에 내려놓자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바리가 굳은 표정으로 우물에서 가져온 얼음 조각들을 땅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데 그 얼음조각들은 그냥 녹아서는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물이 빨려 들어간 자리의 흙이 젖어들기 시작하더니 바리가 서있는 땅 위로 긴 줄을 그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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