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64

우물 속의 얼굴 4

등록 2004.08.26 04:16수정 2004.08.2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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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가 엄마와 아빠를 마지막 보았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리는 호랑이 우리 근처 나무 그늘에 서있었습니다.

나무에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앞에 부모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놀란 나머지 바리는 엄마 아빠를 향해 뛰어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순간 마음을 돌려야했습니다. 엄마 아빠의 옆에는 머리를 양쪽으로 따고 엄마의 팔을 잡고 서있는 조그만 바리의 모습이 보였거든요.

묘한 느낌이 바리를 감싸안았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던, 바리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엄마와 아빠만 바리의 눈 속에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때 여기 저기에서 터져나오던 미소와 이야기소리들이 바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히 다시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바리 아빠. 아이스크림을 그렇게 먹으면 어떻게 해요.?”


“왜요? 내가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먹었는데요?”

“지금 한번 봐요, 당신, 아이스크림이 콧속으로 들어가게 생겼어요.”


“허허… 저 기린이 나뭇잎 따먹는거 정신 없이 바라보다가 그런거에요. 흘리지 않을거에요.”

엄마 아빠가 어린 아이처럼 까르르 웃고 있었습니다.

바리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느낌이 솟아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뜨거운 느낌이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런 엄마 아빠를 보면서 혼자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입고 있는 저 청바지는 엄마와 시장에 갔을 때, 엄마가 아빠가 입으면 어울릴 것 같다면서 아빠 몰래 사다주신 옷이에요, 저 노란 티셔츠는….. 아빠가 회사에서 지리산으로 단합대회에 갔었는데, 그때 단체로 입고 갔던 옷이었어요.”

순간 아빠의 바지와 티셔츠가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

“엄마의 저 꽃무늬 블라우스는…. 제가 골라준 거에요. 엄마 생일 선물 사려고 아빠와 백화점에 갔었는데…. 저 파란 꽃무늬가 너무 고와서 내가 사자고 햇던 거에요.”

그 파란 꽃무늬가 다이아몬드처럼 빛났습니다.

“저 노란색 바지는……. 아….. 이모가 입던 바지였는데, 이모가 우리 엄마 입으시라고 놔두고 간거였어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가슴에서 터져나올듯한 뜨거운 느낌에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할 것 았습니다.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옛날의 추억들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은 기억들이 마치 바리 앞에 나와앉은 것처럼 선명해졌습니다.

동물원에 가기 위해서 머리를 따주시면 엄마와…… 피곤한 나머지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조시던 아버지의 모습까지…… 그런 모습들이 그 공기방울 속에 가득차 올라 끝내 아름다운 보석처럼 반짝이며 떠올랐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옛날의 추억들과 기억들…… 무언가 모르게 항상 그리워하긴 했지만, 정작 자기도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몰랐던 그 어떤 것…..

그 가슴 속의 뜨거운 기운과 함께 그 방울처럼 겉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그것은 슬픈 느낌도 아니었고, 아픈 느낌도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동화를 읽고 났을 때 그런 감동과, 보고 싶은 친구를 저 멀리서 보았을 때 같은 떨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바리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엄마 아빠를 너무 너무 사랑해요.”

그러고는 바리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려고 손을 얼굴에 갖다대고자 했습니다.

아…그런데...... 눈물은 나오자마자 바로 하얗게 얼어붙어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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