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에게 애 데리고 오라뇨?

얼굴이 닮은 외국인 노동자 형제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사연

등록 2004.08.29 20:03수정 2004.08.3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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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좀 데리고 와요!”
“네?”
“애 낳은 지 두 달도 더 된 것 같은데, 아이를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애 낳기 바로 전에 보고 처음이죠?”
“네?”


오랜만에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하고 외국인노동자의 집에 들른 자이얀트에게 왜 애를 데리고 오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이해를 못하는지 자꾸, “네? 네?" 하고 웃기만 한다.

자이얀트는 한국에 와서 외국인노동자의 집 도움으로 결혼식을 했던 사람이다. 그가 원체 말이 없는 사람인 걸 알고 있었지만, 내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간디가 무슨 일인지 눈치를 챘는지, “동생이예요”라고 말해준다.

“동생?”
“어, 얼굴이 똑같은데….”
“맞아요, 비지터가 동생이고, 자이얀트가 형이예요. 비지터는 결혼 안 했어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자, 랄이 옆에서 거들었다. 내가 자이얀트라고 생각하고 말을 걸었던 사람은 자이얀트가 아닌, 그의 동생 비지터였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얼마전에 애 낳았다는 자이얀트가 맞는데, 비지터라고 하니 둘이 쌍둥이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간혹 외국인노동자의 집에 오는 사람들 중에 외국인들의 얼굴이 비슷해서 헷갈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두 번 봐 온 얼굴도 아닌데, 내가 착각을 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리랑카인들 이십여 명이 한 바탕 웃는다. 그 가운데, 다시 랄이 “총각이 어떻게 애 만들어요?”라고 말한다.

예전에도 이들 형제가 그렇게 닮아 보였는지 언뜻 기억이 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웃고 있는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그건 그런데, 스리랑카 사람들은 애를 낳으면 언제까지 집에만 있어요?”라고 물었다.


“조금 오래 집에만 있어요. 삼(석) 달 정도 집에 있어요”라고 랄이 대답한다.
“그래요?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자이얀트 보고 일요일에 아기 데리고 나오라고 하세요. 그리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하자, 랄이 “예” 하고 말한다.

자이얀트와 랄은 같은 집에 살고 있는데, 지난 달에 도둑이 들어 갖고 있던 현금을 다 털리고, 자이얀트 부부는 결혼 예물마저 도둑맞았던 사실이 기억나 자이얀트 근황을 물었다.

랄이 전해 준 사실에 의하면, 7월부터 일이 없어 놀고 있는데, 그래도 좋은 사장님을 만나, 생활비는 지급받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애를 낳고 일도 없으면 맘고생이 심하겠다 싶어, “힘든 거 있으면 연락하라고 해요”라고 하자, 비지터와 랄은 마냥 웃으며, “지금까진 문제 없어요”한다. 천성 낙천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들에게 “둘은 언제 결혼하죠?”라고 묻자, 미리 입을 맞춘 듯 “결혼 안 해요!”라고 한다. 외국에 있을 동안 결혼하고, 애를 기른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자이얀트를 보면서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래요. 비지터, 어찌됐든 총각보고 애 데리고 오라고 해서 미안해요” 하며 돌아서는 나에게, “총각도 애 있어요”라고 무리 속에서 누군가의 엉뚱한 대답이 들려 왔다. 그 소리에 다들 호방하게 웃는 모습들이 아직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임을 알게 해 준다.

저들이 고향에 다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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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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